슬럼프, 번아웃은 '감기'같은 존재다.
회사를 경영하다보면 정말 멘탈도, 체력도 견디지 못하는 순간이 찾아오곤 한다. 그런데 누가 내 그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지 꼭 힘든 일들은 힘들 때 다 함께 찾아오더라. 세상이 너무 원망스럽고, 내가 뭘 잘못했길래 나에게 이런일이 생기나 싶었다. 그리고 '나보고 뭐 어쩌라고!!!!' 라는 악에 받친 내적 외침만이 가득한 괴로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화를 참는법', '번아웃 이겨내는 법', '멘탈 관리법' 등을 검색하면서 이것저것 시도하면서 운이 좋게도 나의 힘든 순간들을 이겨낼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힘든 순간에도 정신을 차리고 멘탈을 보호하고 다시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그래서 나만의 멘탈 관리법을 한번 정리해 보려 한다.
내용을 정리하기에 앞서 멘탈을 관리하는 법에는 (당연히) 정답이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싶다. 그리고 정답을 찾은것 같다가도 그 방법이 언제부턴가 더이상 먹히지 않을 수 도 있다.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항상 내 멘탈 상태를 체크하는 것과 그때그때 필요한 다양한 관리법을 평소에 기록해놓고 적재적소에 적용해 완전히 무기력해 지기 전에, 상황이 나를 집어 삼키기 전에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회사의 대표가 되고 친구들을 만나면 '그래 넌 왠지 사업을 할 것 같았어' 라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왠지 사업을 할 것 같다'에 담긴 의미는 내가 그만큼 외향적이라 그랬던 것 같다. 예전부터 주변에 친구도, 주변인도 늘 많았다. 예전에 나는 힘들면 주변사람들이나 친구들을 만나 힘든것에 대해 술과 이야기로 풀곤 했다. 그런데 스트레스 받고 힘든 순간들이 더 자주, 더 세게 오다보니 술을 먹고 사람을 만나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다. 그래서 어느순간부터 친구를 만나고 술한잔 하는 것이 나에게 더 독이 된다는 것을 직시하게 되었다.
이후 술을 빼고 친구만 만나서 얘기를 하는것도 시도해봤지만 소용없었다. 나에게 문제를 남에게 털어놓는 것이 해결책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러다보니 내 인생과 상황의 맥락을 잘 알지 못하는 제3자에게 모두 설명하는것 조차 힘들었고 설명 한다하더라도 명쾌한 해결책을 얻을수는 없는 일이었다.
술도 안마시고 친구를 만나도 소용이 없으니 내가 갖고있는 스트레스 해소법이 없어진것만 같아 멘탈이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것만 같았다. 그때 나를 살린것이 바로 '글쓰기'였다. 그렇게 외향적인 내가 혼자 앉아 글을 쓴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그닥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사업으로 인해 극도로 심한 스트레스에 처해 있었고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뭐든 닥치는대로 다 하던때였다. 그래서 나 자신과의 상담을 시작했다. 아래는 그때 당시 내가 직접 썼던 자문자답이다.
1) 네가 지금 힘든 이유는 무엇인가?
A: 모든게 다 힘들다. 회사가 내 전부인데 회사가 힘들다. 즉 내 모든것이 무너지고있다. 내가 대표가 되고부터 모든게 다 잘못되가고 있는것 같다. 매출은 떨어지고, 나는 최선을 다하고있는데 직원들은 내마음을 알아주긴 커녕 줄퇴사를 한다고 하고있다. 나는 조금이라도 일을 덜어주려고 설날, 추석도 못쉬어본지 몇년째다. 출근을 안해본 날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되는지도 모르겠다.
2) 회사가 좋아지면 지금의 힘든것이 나아지겠는가?
A: 그럴거 같다. 회사가 나빠지는 한 나는 그 어떤것도 할 수 없을거같다.
3) 회사는 어떻게 해야 좋아지는가?
A: 제품을 더 많이 팔아야한다. 고정비를 줄이고 수익을 높여야한다.
4) 어떻게 하면 제품을 더 많이 팔수있나? 어떻게 해야 고정비를 줄이고 수익을 높일 수 있나?
A: 영업을 더 적극적으로 해야한다. 제품을 더 저렴하게 만들어서 고객들이 구매하기 쉽도록 해야한다. 수익성 좋은 제품을 개발해야한다. 업무 효율을 높여 고정비를 줄여야한다. 고정비에 도움이 되는 지원사업을 수주해야 한다.
5) 정답을 알면 하나씩 해가면 되지 않는가?
A: 혼자서 하는데 한계가 있다. 직원들이 함께 해야하는데 전부 나름대로 바쁘다고 한다. 매출은 예전보다 낮은데 일은 여전히 많다.
6) 그러면 뭘 해보면 좋겠는가?
A: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보고 싶다. 그럴려면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할 시간을 확보하는게 필요하다.
7) 그 시간은 어떻게 확보할 수 있나?
A: 내 시간을 더 분석해서 효율을 극대화 함으로써 만들거나, 사람을 영입할 수 있다.
8) 이미 너는 지칠대로 지쳐서 더 열심히 하는건 의미가 없지 않나? 사람을 영입해보는건 어떤가?
A: 안그래도 어려운데 어떻게 사람을 영입할 수가 있나? 돈이 없는데 돈을 쓸 수는 없다.
9) 이대로 가면 더 나쁜 상황으로 가게 될텐데? 지금의 상황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얼마를 투자할 수 있는겠는가?
A: 진짜 벼랑끝이라 생각한다면, 1억원 정도 투자할 수 있다.
10) 그 비용을 정말 괜찮은 사람을 뽑는데 투자해 보는게 어떤가? 그렇게 하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이후로도 몇번의 자문자답을 거쳐 나는 매출이 떨어지는 와중에 다시 또 '투자'라는 선택을 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 되었다. 그 투자는 훌륭한 투자였고, 당시의 어려움을 극복해 낼 수 있었다.
'글쓰기'를 통한 나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진짜 문제'와 '진짜 필요한 해결방안'을 파악할 수 있었다. 당시의 나에게 '술마시기', '친구만나기', '여행가기' 와 같은 것들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목적성이 뚜렷한 투자를 위한 '의사결정'이 필요했고 그이후에는 힘든 상황에서 너무 가혹할지도 모르겠지만 '또 다른 실천'이 필요했다. 뭔가 멘탈도 체력도 바스라지는 상황에 더 극단으로 몰아가는 것 같지만,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내가 해야할 것은 그것이었고, 신기하게도 나는 체력적으로 더 많은 소비를 하고 있었으나 상황이 근본적으로 조금씩 나아지는걸 보니 그 소비를 뛰어넘는 회복이 가능했다.
회사=나 로 동치하던 나에게 '부캐(부 캐릭터)'를 키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또 그럴 시간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한 '글쓰기'를 통해 내 부캐가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처음에는 단순히 자문자답에서 시작한 글쓰기 였으나 글을 쓰다 보니 내 속내를 누군가에게 말로 표현하는것 보다 온라인에 쓰는것이 때로는 더 좋았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진짜 내가 말하고싶은게 무엇인지 더 명확해지고, 글로 한번 쓴 후 그것을 타인에게 얘기하니 내가 말하고자 하는것을 더 명확히 말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글쓰기를 시작하게 되었고 글을 계속 쓰다보니 내가 쓴 글이 포털의 메인에 올라가거나, 1,300회가 넘게 공유가 되기도하고, 20만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는 일이 생겼다. 이런 일이 생기다 보니 태어나서 내 일 외에 '재미'를 느낀적이 잘 없었는데 글쓰는게 너무 재밌는 것이 아닌가? 전에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글을 쓰다보니 '글쓰는 사람'이라는 부캐가 자연스럽게 생겼고, 내 글을 보고 여기저기서 제안이 들어왔다. 작가 제안도 들어오고 (바빠서 책을 쓰진 못했다), 강연 제안도 들어와 강연도 하고, 겸임교수 제안이 들어와 현재는 지방의 4년제 대학에서 겸임교수까지 하는 오피셜한 부캐가 생겨났다.
그렇게 생긴 부캐는 내 본캐와 서로를 도왔다. 본캐가 성과가 부족할땐 부캐로써의 일이 재미있어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고, 그렇게 얻은 에너지는 내 본업에 다시 투자가 되었다. 부캐는 사실 일시적인것이고 내 본업이 아니라 성과가 많이 들쑥날쑥한데 그럴때는 또 본캐가 살아나 부캐를 보완해주었다. 본캐로써의 나와 부캐로써의 나 모두 똑같은 나인데 한쪽에 올인하지 않으니 상황에 따라 필요한 쪽으로 더 많은 에너지를 쏟으며 멘탈을 관리할 수 있었다.
결혼생활을 하고있는 나는 평소 와이프와 대화를 즐기고 많이 한다. 그래서 내가 처한 문제, 어려움을 늘 얘기하고 어떻게 해야 좋겠는지 나눈다. 그리고 그 어려움을 벗어나기 위해 하고있는 노력(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다보면 다섯가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첫번째는 남에게 말하는것 자체가 좀 후련하다. 두번째는 나의 문제를 남에게 얘기하다 보면 그 문제에 대해 좀더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세번째는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의외의 해결책을 얻을때도 있다. 네번째는 내가 하고있는 노력을 얘기하고나면 그 노력을 더 열심히 하게된다. 다섯번째는 모든게 뜻대로 되지 않아도 응원을 얻을 수 있다.
이때, 나의 문제와 노력을 알리는 사람이 충분히 가까워야하며 나를 진심으로 위해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겠다.
'슬럼프'나 '번아웃'을 '누구나 겪는 것'으로 말하면서 자연스럽게 괜찮아 질거라 얘기하는 경우가 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이런 슬럼프나 번아웃을 '감기'처럼 치료해야하는 존재로 여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슬럼프, 번아웃은 '감기'와 비슷한 점이 많다. 감기는 나도 모르게 조금 으슬으슬하다가 말고 지나갈 수도 있지만 독감의 경우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기도 한다. 또 감기는 약을 먹지 않아도 괜찮을때가 있지만 약을 먹으면 덜 아프고 견뎌낼 수 있다. 감기가 걸려도 무시하고 일상생활을 할 수도 있지만 휴식을 취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도 있다. 감기는 한번 걸려 항체가 생겨도 계속해서 변이되어 새로운 감기 바이러스가 찾아온다.
슬럼프나 번아웃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슬럼프나 번아웃을 너무 심각하게 여기기도 또 반대로 누구나 겪는 아무것도 아닌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런데 감기가 그러하듯 사람마다 다르다. 또 동일한 사람에게도 지나가는 슬럼프일 수도 있고, 나를 집어삼키는 무서운 번아웃일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이러한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슬럼프나 번아웃을 그런 존재로 여기는 순간부터 나를 지키기 위한 다양한 백신을 스스로 개발하게 된다. 크게 노래를 부름으로써 스트레스도 풀어보고, 여행을 가서 기분전환을 하기도 하고, 친구을 만나 수다를 떨기도 하고, 때로는 냉정하게 각잡고 쌓인 일을 다 해결해버리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하고, 운동을 하기도 한다. 슬럼프나 번아웃이 감기처럼 그 형태를 다양하게 바꾸듯, 나 역시 나름대로의 슬럼프, 번아웃에 대처하는 백신을 다양하게 개발해나가고 있다.
슬럼프나 번아웃은 내가 어떤 직업을 갖든, 어떤 직위에 있든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그리고 또 그 모습을 계속해서 바꿔나간다. 때로는 심각하게 여기는게 맞고, 때로는 무덤덤하게 넘어가는게 맞다. 정답은 없다. 슬럼프와 번아웃은 평생에 걸쳐 찾아올텐데 모두가 나름대로의 대응 방법을 갖고 해쳐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