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희 소설 『가만한 나날』
개인에 대한 담론이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90년대라고 볼 수 있다. 서구의 개인화가 1960년대부터 천천히 진행된 것과 달리 한국사회에서의 개인화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고 이에 따라 특수성을 띄게 된다. 군부독제의 급격한 산업화 아래 진행된 한국에서의 개인담론은 핵가족 형태를 보편화 하였으나, 그 속에서 권위주의적인 담론을 벗지 못하여 결국 ‘관계’속의 개인으로 그 양상이 좁혀진다. 김세희의 소설 『가만한 나날』속에는 아직 개인화가 진행 중인 한국 사회속의 다양한 개인의 양상을 ‘관계’속에서 풀어나가고 있으며 한국형 개인화를 가장 직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개인화’라는 것이 문자 그대로 개인이 되는 것이라면 ‘같이’라는 단어는 혼용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개인화의 문제는 결국 ‘관계’속에서 말해지며 ‘같이’를 혼용할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볼 수 있는 작품이 바로 『현기증』, 『우리가 물나들이에 갔을 때』이다.
원희와 상률은 동거중이다. 원희는 꿈을 위해 잠시 일을 쉬고 있고, 이런 원희가 사는 집에는 월세는 내주는 상률이 함께 산다. 원희는 세상 모든 걱정을 안고 사는 엄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자취를 하고 있지만 당장은 상률이 없이는 월세도 내기 힘든 형편이다. 그녀는 방이 2개인 집으로 이사가 자신의 잠을 방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상률이 서운하고, 또 이사가며 필요한 가구들을 낡은 것들로만 들여놔야 하는 이 상황이 속상하다. 그러나 본인이 돈 한 푼 보태지 못하며 상률에게 이런 말을 할 수는 없어 참고 맘에 안 드는 일들을 진행시키지만 그것은 현기증이 나는 일이다. 원희는 가족이라는 관계에서 벗어나 혼자 서울로 상경하여 자신만의 꿈을 위해 나아가지만 그 과정에서 결국 ‘같이’, ‘함께’가 수반된다. 상률이 그녀에게 정신적 지주일지, 금전적 지주일지 그것은 확정지을 수 없지만 그녀가 혼자가 되는 데에는 결국 다시 상률이 필요하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우리가 물나들이에 갔을 때』의 나와 루미도 역시 동거 중이다. 비록 이것이 신혼부부 저금리 대출을 위한 선 혼인신고 후 결혼이지만 말이다. 나는 요양병원에 있는 술주정뱅이 아버지의 존재를 알게 되고, 혼자 시골로 들어가서 살겠다는 아버지를 시골집에 모셔두었지만 마음이 불편하다. 차가운 방바닥에서 변변치 않은 생활을 하는 아버지를 보면 모시고 오고 싶지만 쉽사리 루미에게 그 말을 할 수는 없다. 그 과정에서 본인이 아버지처럼 아내와 자식에게 버려지는 것은 아닌지, 관계 속에서 버려져 혼자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자각하며 지독한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나는 관계 속에서 버려지는 아버지를 보며 자신을 투영하여 진정한 혼자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결국 ‘같이’에서 멀어져 ‘혼자’가 된다는 진정한 개인화를 지켜보며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루미에게 부침개를 뒤집는 법을 배우며 루미가 한 말은 이러한 맥락에서 의미심장하다.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묻는 나의 말에 루미는 “그게,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해.”라고 답한다. 이것은 아버지를 보며 혼자가 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나로 마무리 되는 이야기 속의 하나의 제안일 수 도 있다. 혼자가 되는 것이 두렵지만 결국 진정한 개인화는 ‘같이’에서 멀어져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믿을 때 실현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제안이다.
『얕은 잠』은 홀로서기를 시작하는 주인공을 몽환적인 시각으로 보여준다. 마치 제목처럼 꿈을 꾼 듯한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 미려는 처음으로 정운 없이 혼자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을 마주하고, 혼자의 힘으로 무거운 물건을 끌고 걸어가고 도움을 청한다. 미려는 그 과정이 힘들고 무섭고 계속해서 정운을 찾게 되었지만, 결국 그 과정의 끝에서 미려는 홀로 낯선 사람들을 다시 찾아가며 진정한 홀로서기를 하게 된다. 미려가 서핑보드를 배우며 처음엔 할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이내 힘을 주고 보드를 잡고 일어서며 유유히 물의 흐름을 타게 되는 모습은 미려의 홀로서기 모습을 그대로 빗대어 보여주고 있다.
불안한 과정을 딛고 올라서는 홀로서기의 모습이 미려의 홀로서기였다면, 일상생활속의 눈치
채지 못할 만큼의 불안이 계속 됨을 보여주는 홀로서기는 『감정연습』에 드러난다. 주인공 상미의 일상 속 불안은 사소한 것들이다. 김정은의 죽음과 다소 가까운 북한과 자신의 거주지, 신경질 적인 회사 경비 아저씨 그리고 마냥 편하지 만은 않은 상사까지. 상미는 인턴생활을 할 때 경쟁했던 태영에 대한 기억이 자주 떠오른다. 혼자의 삶이 더 어울렸던 태영은, 사람들 속에서 잘 어울리지도, 오는 전화를 말주변 있게 받아내진 못했지만 자신이 느끼는 환멸에 가까운 경쟁심을 느끼는 것 같지 않았다. 결국 정직원이 된 것은 상미였지만 상미는 태영에게 알 수 없는 패배감을 느낀다. 관계라는 틀에 더 어울렸던 건 상미인데 오히려 혼자 하는 일이 맞아보였던 태영은 자신 보다 더 편안해 보인다. 자신의 원룸에 돌아온 상미는 잠에 들기 직전, 문 밖 소방대원의 출동을 듣고 불안을 느낀다. “상미는 그 여자가 자기에게 뭔가 더 따뜻한 말을 해 주길, 심지어 가벼운 포옹을 해 주기를 기대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255p.)의 대목에서는 상미의 홀로서기 한 삶이 낙천적이기만 한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이는 관계 속에서 진행될 수밖에 없는 한국의 개인화를 관통하고 있는 이야기로써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남을 증오하면서까지 혼자가 되었고, 직장과 좀 더 가까워지기 위해 친구들과 멀리 떨어진 곳에 집을 구했지만 다시 따듯한 관계를 갈망하며 관계와 멀어질 수 없는 개인화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개인화되어가는 사회에서 도덕성은 어떻게 이야기 될까? 개인화는 개인에 대한 자각으로 인해 점점 대의를 위한 거대담론 보다는 개인에게 집중하는 미시담론의 분야이다. 이때 개인화가 진행됨에 따라 거대담론에서 주장한 대의가 개인의 범주에서는 어디까지 통용 될 수 있는지를 말하면서 도덕성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개인화가 심각해지고 잘못 발현되면 그것이 결국 개인주의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경쟁적인 한국사회에서 개인화 되는 개인이 어떠한 양상을 보이는 지는 『가만한 나날』, 『드림팀』에 잘 드러난다.
책의 표제작이기도 한 『가만한 나날』에서 주인공은 가만하지만 가만하지 않은 나날은 보낸다. 바이럴 마케팅 회사에 입사한 나는 채털리 부인 컨셉을 잡은 블로그를 운영하며 의뢰가 들어온 상품을 마치 직접 사용해 보고 적은 후기 인 것처럼 포스팅을 한다. 이후 상사로부터 실력을 인정받으며 입사동기들을 제치고 굳건히 자리를 지키게 된다. 본인 보다 먼저 퇴사한 동기를 한편으로는 실력부족이라고 업신여기며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는 가만한 나날을 보낸다. 어느 날 자신이 포스팅한 가습기 살균제가 문제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다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본인의 블로그를 보고 구매한 사람이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모습을 보며 엄청난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주인공은 이내 자신은 그저 주어진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이라고 합리화 하여 채털리 부인 블로그를 닫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더 나아가서는 자신에게 이런 일을 시키고도 많은 피해자가 발생한 것에 대해 모른 척 하는 상사를 탓하며 주인공의 머릿속에서 듬직하고 말이 없던 상사는 한순간에 비열한 인간이 된다. 주인공의 블로그 포스팅으로 인해 가만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소비자는 가만하지 못한 나날을 보내게 된다. 주인공이 의도치 않았더라도 행동에 대한 비난을 피해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자신의 가만한 나날을 위해서 양심을 외면하게 된다. 무한 경쟁이 심화된 한국사회에서 개인화가 급속히 진행되었을 때의 부작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 바로 『가만한 나날』이다. 이것을 읽는 독자조차도 무능력한 동료를 속으로 업신여기고, 문제를 상사의 탓으로 돌리며 자신을 위안 삼는 주인공이 못났다는 것을 알지만 한편으로는 주인공의 선택이 이해가 되기도 할 것이다. 이 지점에서 독자들은 개인화가 진행된 우리사회의 어두운 면에 대한 비판과 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개인화가 진행된 사회에서 가장 보편적인 가족 형태는 ‘핵가족화’이다. 가족 구성원의 규모가 줄어들고 따라서 울타리 안에 있는 가족의수는 줄어드는 것이다. 개인화는 진행되었지만 결국 ‘관계’속에서 존재하는 개인은 핵가족화가 되어도 마찬가지 이며 이것은 가정 내에서 만의 모습은 아니다. 우리사회에서 종종 쓰이는 ‘오피스와이프’라는 단어, 즉 회사 내에서 마음을 두고 의지하는 아내 같은 존재가 따로 있다는 뜻을 가진 단어가 등장한 것이 우리가 관계를 추구한다는 부정적 증거가 될 것이다. 『드림팀』에서 선화는 입사하자마자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에게 이것저것 알려준 팀장을 처음에는 선망한다. 그러나 자신을 챙겨줌으로서 울타리를 만들고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가혹하리만큼 못되게 구는 팀장에게 조금씩 반감이 생기고 결국 퇴사를 하게 된다. 선화는 이러한 팀장의 모습에 환멸을 느끼고 퇴사한다. 어느 날 팀장의 연락으로 팀장을 만나게 되지만 다시 만난 자리에서도 팀장에게 환멸을 느끼고 박차고 일어난다. 그러나 과연 선화라면 어떤 대안이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 “꼭 이렇게 해야만 할까? 이해되지 않는 일들은 많았다.”(145p.)라고 말하는 대목은 팀장의 행동에 대한 의문을 가지지는 모습이지만 선화에게도 어떤 대안이 있는 것은 아니다. 팀장은 회사라는 공동체 내에서 선화를 자신의 울타리 안으로 넣으며 일종의 ‘관계’를 형성한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모습은 한국에서 진행되는 개인화, 다시 말해 관계 속에서 진행되는 개인화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 속의 개인은 어쩌면 그 관계를 완전히 벗어나고 싶을 수 도 있지만 그러한 개인이라고 하여 완전한 만족을 추구할 수 있는가? “난 지금도 하루에도 몇 번씩 내 안에 있는 팀장님 목소리랑 싸워요”(155p.) 선화는 퇴사 후에도 팀장의 모습을 지우려고 노력하며 경멸하지만 선화에게 있어서 사회생활의 초석을 만들어 주고 노력하며 잊고 싶은 게 많은 만큼 많은 것을 배운 것 또한 팀장이다. 관계를 동반한 개인화가 부정적인 양상으로 흘러가고 그 속의 개인에게 부정적 영향을 줄 수도 있음은 기정사실이며 그것을 선화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선화에게 그리고 팀장에게는 어떠한 대안이 있었는지, 또 어쩌면 팀장을 계속 증오하면서도 자신 또한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을 수 없음을 알기에 분노하고 있는 주인공이 아닌지, 선화를 지키기 위한 팀장의 개인주의는 과연 무조건적인 비도덕적인 모습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이다.
개인화가 진행된 사회 속에서의 사랑은 다양한 양상을 띤다. 먼저 취업과 꿈 그리고 현실의 기로에 놓인 장수 커플의 모습이 바로 『그건 정말로 슬픈 일일거야』이다. 진아와 연승은 오래 사귄 커플이다. 연승은 감독의 꿈을 포기하지 못해, 감독 일을 하고 있는 대학선배를 진아와 함께 찾아가고자 한다. 아내와 아들을 키우며 영상작업을 하는 대학선배 ‘소중한’을 만나며 진아와 연승은 다른 것을 느낀다. 진아는 연승보다 어른스럽고 여유가 있는 소중한을 연승과 은연중에 비교하게 된다. 연승은 꿈에 대한 밝은 미래 대신 현실을 말해주는 소중한이 한편으로는 불편하게 느껴진다. 결혼을 위해 안정적인 직장을 가졌으면 하는 진아의 바램과 이제는 가슴 설레는 일을 하고 싶은 열정으로 가득 찬 연승은 이제는 서로 다른 길을 바라보게 된다. 개인화 된 사회에서 현실을 무시할 만큼의 사랑이라는 것은 쉽게 얘기될 수 없는 분야이다. 한때 서로의 특정 모습에 반해 오랜 세월 만났지만 서로 바라보는 현실이 달라 오늘은 또 낯설게 느껴지는 상대 그리고 이러한 사랑의 양태는 어떻게 보면 이 시대의 보통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말과 키스』의 주인공은 유부남 H와 만나고 있다. 매력적인 여성 ‘현진’을 보며 느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나는 헷갈린다. 그런 현진과 연인도 아닌 친구도 아닌 관계로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어떠한 말로 관계를 정의해야 할지 본인들도 모르지만 “그리고 한순간, 어떤 느낌이 찾아왔다. 아랫배 깊은 곳에서부터 파동이 퍼져 몸을 가득 채웠다. 질투와는 다른 어떤 것. 깊게 찔린 듯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나는 혼돈 속에서 눈을 감았다. 그것은 강렬한 끌림이었다. 자석처럼 몸 전체가 강하게 이끌렸다. 현진이 내게 입을 맞춰 주었으면 하고 바란다는 걸 깨달았다.”(272p.) 결국 나가 현진에게 매우 이끌렸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의아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며 나는 나에 대해 고민한다. “나는 세상 속에 있고, 세상과 접촉한다. 나의 눈, 나의 몸으로. 그렇지만 스르르 미끄러져 들어오는 것들, 나와 세상에서 어른거리는 것들, 그것들은 또 한 겹의 피부처럼 나와 세상 사이에 분명히 자리하고 있었다. 어떤 때는 그것들이 전부 내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내 안에서 목소리들이 자루에 갇힌 유령들처럼 와글거리며 서로 자기주장을 하고 힘을 겨루었다. 마치 내가 한 사람이 아닌 것처럼.”(278p,) 나는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며 접촉하는 모든 것들을 생각하고 의심하며 나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현진에 대한 열망은 나로 하여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에서 출발하여 자신이 가진 다양한 모습에 대한 깨달음에 도달한다. 개인화는 결국 개인에 대한 관심과 고민과 맞닿아있다. 개인화 담론과 함께 등장한 운동인 페미니즘, 성소수자 운동은 이러한 개인에 대한 관심과 고민이 가시화되고 덩치가 커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말과 키스』는 개인화 담론이 부상하며 개인에게 집중하게 됨에 따라 관계의 정의를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여지가 생겼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김세희의 소설 『가만한 나날』은 역설적이게도 가만해 보이지만 가만하지 않은 나날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개인’으로서 ‘나’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헷갈리며, 방황할 수밖에 없다. 특히 그러한 고민들은 온전한 ‘개인’으로서 보다 ‘관계’속에서 출발되고 시작되며 원인이 된다. 개인에게 너무나 심오하고 평범하지 않은 일련의 일들과 고민 그리고 문제들이 ‘가만한 나날’인 것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누구나 겪고 있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