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연락이 왔다

한 발짝 떨어져서 상황을 바라보기

by 강주피

오랜만에 마이클에게 카톡이 왔다. 캐나다 교환 학생 시절 알게 된 친구다. 종이로만 배운 영어가 훨씬 익숙했던 그때, 나는 캐나다로 떠났다. 그 시절만 해도 내게 미국은 무서운 나라였고, 싱가포르는 한 학기 동안 머물기에 좁다고 생각했으며, 일본은 영어 실력을 늘리기에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여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냥 일본어 공부를 확실히 해서 내 길을 개척하는 것이 좋았으려나 싶기도 하다. 결국 나는 지나간 일에 대해 곱씹고 종종 아쉬워하는 사람이다. 세 가지 선택지 다음으로 발견한 나라는 캐나다였다. 사실 전공하는 분야를 고려할 때, 다문화 국가로서 캐나다의 위상에 솔깃하기도 했다. 이에 더해 미국보다는 물가가 저렴하고 안전한 국가라는 인상이 강했다. 나는 1지망으로 캐나다의 한 대학을 지원했고, 그렇게 추운 겨울 에어 캐나다에 몸을 실었다.


출처는 알 수 없지만, 나의 교환 학교는 세계에서 살기 좋은 도시 1위로 꼽히는 지역에 위치해있었다. 바다와 산을 모두 품은 곳에서 사람들은 낭만적인 액티비티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직접 내가 발 디딘 그곳은 상상과 달랐다. 따사로운 햇살과 선선한 바람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몇 백 년만의 기상이변으로, 나는 도착하자마자 무릎까지 쌓인 눈을 만났다. 무거운 캐리어를 이고 지고 학교로 향하는 버스를 탔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나는 도착한 날부터 베트남 친구 한 명을 만나게 되어 기숙사에 대해 안내도 받고, 이후로도 종종 만나 함께 요리를 해 먹거나 하는 좋은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 친구는 기숙사에서도 인사이더여서, 덕분에 다른 이들과도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 안타까운 건, 소셜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나로 인해, 친구들과의 연락이 완전히 끊겼다는 점이다.


캐나다에서 만난 수많은 이들 중, 마이클은 지금까지 연결되어 있는 유일한 친구다. 그래 봤자 6개월에 한 번 정도 소통하지만. 녀석은 매번 뜬금없이 “Long time no see.”라며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낸다. 우리는 프랑스어 초급 수업 들으며 친구가 되었다. 20명 정도가 한 반이었던 수업에는 아시아계로 추정되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그중 나는 한국에서 온 교환학생이었고, 마이클은 홍콩에서 온 본교생이었다. 학기 초반, 나는 실감한 영어의 벽에 좌절해 종종 수업을 빠지면서 방에 스스로를 가둬둔 적도 많았다. 엄친딸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상태였다. 그래도 완전히 바닥은 칠 수 없는 관성에, 억지로 몸을 이끌고 프랑스어 수업에 나갔다. 학생들은 대부분 매주 같은 자리에 앉았다. 거의 수업이 시작할 때쯤 뛰쳐 들어간 나에게도 지정석 비슷한 게 있었던 것 같다. 교수님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대화 연습을 시켰다. 그렇게 서로의 프랑스어 연습 상대가 되어주며 나는 마이클과 친구가 되었다.


마이클을 떠올릴 때, 내 기억에 진하게 남은 한 장면이 있다. 프랑스어를 연습하며 제법 친해진 우리는 맛있는 저녁을 함께 먹기로 약속했다. 겁이 많은 성격에 학교 밖에도 잘 안 나가던 나였지만 현지인 친구는 든든했다. 우리는 식당에서 맛있는 피자와 파스타를 먹었다. 그리고 늘 그렇듯, 그날도 나는 음식을 먹다가 흘렸다. 인터내셔널 프라이빗 미팅은 처음이라 긴장했던 것도 틀림없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내게 그가 휴지를 건넸다. 웨이터를 따로 불러 영어로 말할 필요가 없어 특히 감동받았던 나는, 고맙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가 물었다. “Do you think I’m a gay?”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쓰지 않고 듣지 않은 문장이었다. 당황했지만 최대한 민첩하게 반응했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고 답했다. 자세한 사정을 물어볼 필요도 없이 마이클은 설명했다. 필수품을 챙기고 다니는 자신의 성적 지향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말이었던 것 같다. 당황했고 또 부족한 영어 실력 때문에 완벽하게 그의 말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나는 알아들은 척했고, 많은 질문이 내 안에서 생겨났지만 애써 무시했다. 무사히 식사를 마치고 버블티 집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치 쪽을 전공하던 마이클은, 한국의 정치 상황에도 해박해서 나도 잘 모르는 정치인의 이야기를 물어봤다. 사실 처음에는 Mr. Moon과 Mr. Hwang이 누구인지 알아듣지도 못했다.



오랜만에 온 마이클의 연락에 거의 읽자마자 답장을 남겼다. 오픽 시험을 보러 가던 길이어서 그런지, 영어 문자로 준비 운동을 하는 즐거움도 있었다. 나는 마이클이 홍콩에서 취업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고 들었는데, 그는 어느새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있었다. 그도 나의 근황을 물었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아마 우리가 친해지는 초기 단계에서 맞았던 직격탄, 그 당황스러움이 오히려 녀석과 나의 거리를 줄인 듯했다. 나는 설명했다. 유학을 준비했지만 다른 진로를 선택하게 될 것 같다. 대학원에 세계에 머무는 일이 참 쉽지 않다. 그는 불과 1년 전에 자신이 나와 같은 처지였다며 메시지를 남겨주었다. “I dun really have a tip for that tbh. Just try to pursue a healthy lifestyle while waiting? It can definitely shift ur focus.” 그가 전수해준 팁은 간단했다. 기다리는 동안 그저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라는 것. 그 사소한 일상의 구축이 나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려줄 것이라 덧붙였다.


그 이후로도 나는 마이클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브런치에 털어놓았던 그 이야기들을 간결하게 전달했다. 마이클은 지금 써둔 논문을 작은 해외 학술지에 내보면 어떻게냐고 물었고, 나는 준비하고 있지만 혼자만의 힘으로는 쉽지 않다고 답했다. 그는 나의 이 지난한 과정이 얼마나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잡아먹는지 (time-consuming) 이해한다고 말했다.


기능적으로 접근할 때 그와의 대화는 아무런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래서 사실 이 글을 왜 쓰기 시작했는지도 알 수 없고, 어떻게 마무리할지도 잘 모르겠다. 서류가 통과했다는 한 기업의 인성검사를 치면서 오늘도 나는 나 자신을 강하게 의심했다. 가끔 사람들과 일하는 게 좋지만 혼자 있는 게 좋은 나. 긍정적일 때도 있지만 한 없이 부정적일 때도 있는 나. 법과 규칙을 잘 지키려고 하지만, 그것의 수행적 의미를 강하게 의심하는 나. 경계에 있는 나를 애써 특정 영역에 있는 듯 꾸며내며 다시 나는 내가 누구인지 도통 모르는 상태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래도 마이클로부터의 연락을 남기고 싶었던 건, 다들 그렇게 산다는 걸 조금 느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태어났든, 홍콩에서 태어났든, 한국 대학을 졸업했든, 캐나다 대학을 졸업했든 다들 그렇게 기다림의 시간을 버틴다. 그러다 도달한 곳에서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 하고, 그러다 문득 과거의 추억에 젖어 오랜 친구에게 메시지를 남기곤 한다. 한 발자국 떨어져서 내 상황을 바라볼 때, 지금 마이클과 나는 그저 5화나 6화쯤 되는 드라마의 한 에피소드를 지나고 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