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을 두 달이 넘게 읽는 이유

'배움의 발견' 독후감이 아닌, 독중감

by 강주피

마음의 파도는 쉽게 요동치다 가라앉는다. 마음의 파도는 고요함을 유지하다 어느 순간 급변한다. 어쩌면 존버 하라는 많은 사람들의 말은, 시간도 금전적인 상태도 관계도 아닌 마음의 상태를 버티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결국 다 거기서 시작되니까.


유명한 타라 웨스트오버의 ‘배움의 발견(Educated)'을 거의 두 달이 다 되어가도록 읽고 있다. 사실 얼른 책을 끝내고 독후감을 글로 남기고 싶었는데, 한 권의 책을 이렇게 오래 붙잡는 이유가 어쩌면 지금의 내가 더 많은 말을 하고 싶게 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애써 책을 다 읽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기로 결정했다. 지지부진한 독서가 곧 요즘 내 상태이기 때문이다. 원서로 읽어서 속도가 더딘 것도 있겠지만, 사실 이렇게 한 권의 책을 오래 읽는 데에는 명확한 나름의 이유가 있다. 우선 책 전반부에 걸쳐서 등장하는 작가의 과거 이야기가 좀 지루했다. 자극을 살아가는 MZ세대에게 급변하지 않는 상황을 버티기란 때때로 더 힘들다. 그래도 반쯤 정신을 놓은 상태로 무사히 첫 번째 퀘스트는 통과할 수 있었다.


^이 책에 관해서는 또 다른 기회에 구구절절 이야기할 수 있기를.


후반부에 갈수록 책을 더 더디게 읽고 있다. 책을 들었다 읽었다, 다시 내려놓는다. 며칠이 지나서 약간의 의무감에 책을 다시 든다. 들었다 읽었다, 다시 내려놓는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지만, 책은 후반부로 갈수록 독자를 굉장한 흥미의 소용돌이로 끌어당기는데, 그 이유는 작가가 종교적 이유로 학교와 같이 공기관의 힘을 거부했던 아버지를 거스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와의 대립 속에 작가는 대학에 가기로 결정하고 독학으로 입학에 성공한다. 대학 진학 이후, 그녀의 세계에서 끊임없이 충돌하는 세속 됨과 신실함의 가치는 이 책의 묘미다. 아마도 각종 기술과 인터넷 때문에 고립되기 어려운 오늘날, 그녀가 (비자발적으로) 구축해온, 모든 것을 향한 외부자로서의 시선 덕분에 책이 더 유명해진 것이 틀림없다. 다시 돌아가서, 작가는 BYU라고 하는 대학 진학에 성공하고 그 뒤로 일이 잘 풀린다. 일이 잘 풀린다는 표현은, 아마도 나의 기준에서 특히 더 그럴 것이다. 그녀는 내가 소망하던 삶을 이뤄나가고 있었다. 다소 지루하게 전개되는 전반부와는 완전히 반대로, 후반부에 가서 작가의 이야기는 압축적으로 전개된다. 그녀는 자신의 에세이와 삶에 관심 가져주는 교수를 만나게 되고 교수의 추천으로 옥스퍼드인지 케임브리지인지 유명한 대학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으며 “돈이 없어서 어렵다.”는 거절에도 불구하고 그 교수의 추천으로 장학금까지 받게 된다. 얼핏 찾아봤을 때, 지금은 계속해서 하-버드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녀가 지금까지 수행해온 고난과 노력이 매 문장, 그리고 문장 사이마다 느껴진다. 병원에 대한 거부감으로 아픈 몸을 붙잡고 장학금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면은 감히 머릿속에 그려지기도 한다. 작가의 노력을 가치 절하할 필요도 없고, 모든 결과를 운으로 돌리고 싶지 않다. 하지만 책 읽기가 점점 더뎌지는 건, 부럽기 때문이다. 쪽팔리게도 나는 그녀가 굉장히 부럽다. 발돋움판이 되어주었을 그의 재능과 - 글쓰기 재능이든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볼 수 있는 재능이든 - 다음 단계로 나아갈 기회를 주는 사람과의 만남, 그리고 영어가 모국어인 것까지. 물론 작가가 의도했듯 그의 삶을 멀리서 조망할 때, 성과가 모든 경험을 보상할 만큼 대단하지 않을 수 있다. 자신의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어도 어릴 적 형제에게 당해온 물리적·신체적 폭력과 그 기억은 자리에 남아있을 수 있다. 그래도 난 그녀가 부럽다. 재능과 운, 그것을 더 절묘하게 연결해주는 노력의 과정까지. 그래서 계속 대학에 남아있을 수 있는 운명이 부럽다.



요새 나는 적극적으로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숨 가쁘게 살아온 만큼 내 포트폴리오는 대외활동, 봉사와 리더십 경험, 각종 자격증과 어학 실력으로 꼼꼼히 채워진다. 일련의 경험을 하나로 엮어낼 때, 그럴듯한 직무 연관성도 생긴다. 그래서 나는 인턴과 신입 정규직으로 서류를 제출하고, 필요한 영어 시험이나 온라인 학습 과정 등을 계속해서 찾아나가고 있다. 집중할 때의 나는 아주 평온하다. 내 소박하고도 애매한 장점 중 하나인 높은 집중력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몰입할 때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 걷힌 채로, 일단 자기소개서를 쓰고 포트폴리오를 고치다 보면 시간이 훌쩍 간다. 준비하는 시간 속 내 마음의 파도는 아주 침착하다.


그러다 몰두의 시간이 끝나면, 파도는 다시 물결을 만들기 시작한다. 한 번 물에 빠진 생각은 쉬지 않고 파도에 파도를 만든다. 그러다가는 종내 묵혀둔 논문에 다다르게 되는데, 석사과정생 둘이서 쓴 이 영어 논문을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면 막막해진다. 버릴 수도 없고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는, 계륵과 같은 26장짜리의 이 글. 대학원이라는 좁디좁은 세계에서 나는 이 논문과 같다. 어딘가에 들어가긴 애매하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닌 존재. 관련성 있는 저널을 검색하다 보면 어느 하나의 이유로 자신감이 바닥을 친다. 그 하나의 이유는 다시금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 작품의 단점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궁극에는 외롭다. 혼자만의 힘으로 땅 짚고 서서 헤엄치려 하는 내가 외롭고 짠하다. 내가 유일하게 구독하는 브런치 작가 헤일리 님의 글을 읽으며 아주 공감한 문장이 있다.

부모님의 정서적, 경제적 지원과 지도교수님의 따뜻하고 도움이 되는
학문적 가르침이 뒷받침되어도 힘든 것이 박사과정이었다.


이 사실을 조금 더 빨리 알았더라면 좋았을까. 나는 아직도 책을 다 읽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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