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눈물이 날 뻔했다.
미국에 와서 종종 울고 싶은 순간이 있다고 친구들이 말한 적 있다. 그 기분을 아예 모르지는 않을 것 같은데, 한국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지금 만나러 갑니다'와 같은 고전 일본 영화를 찾아 틀고 이불속에 둘러 쌓여 점차 몰입하다가 눈물을 왈칵 쏟곤 했다. 정확한 단어인지는 모르지만, 그러고 나면 카타르시스라든가 마음의 정화 같은 게 찾아오곤 했다.
회상해보건대, 미국에 오기 전 그런 순간들이 종종 찾아올 거라 예상했던 것 같다. 찍어먹어 보기 전의 유학은 훨씬 더 두렵고 외로운 것이었다. 실제로 그렇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여기는 한국보다 오히려 사람을 만나기 쉽지만, 그래서 사람이 더 멀게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가끔 이런저런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질 때도 있지만, 그럴 땐 그냥 머리를 몇 번 가로젓고 생각의 먼지를 탈탈 털어내고 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순간순간의 만남과 친목에 충실하자면서. 이야기가 좀 돌아갔지만, 이렇게 생각보다 나는 어려운 문제들을 감히 어렵다고 꽁꽁 싸매지 않으면서 유학생활을 '잘' 나가고 있다. 그래서 생각보다 덜 두렵고, 덜 외롭다. 일부러 예민해지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는 나를 보며 가끔 짠할 때가 있지만, 예민해서 힘든 것보다는 나으니까!
그러다 얼마 전, 처음으로 눈물을 글썽일 뻔한 경험을 했다. 사건의 발단은 같은 연구팀에서 일하는 중국 친구가 학교 박물관에서 하는 Feel Good Friday 행사에 같이 가자고 제안한 것이다. 처음에는 오랜만에 문화생활이나 해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물론 마지막에 무거워진 건 아니다.) 그렇게 우리는 저녁에 만나 함께 식사를 하고, 수다를 떨고, 수다를 떨고, 계속 수다를 떨고, 박물관으로 향했다. 주제가 무엇인지도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았다. 가기 전에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니, Notorious Creek이라고 하는 단체가 원래 공연을 할 예정이었으나 이동 상의 문제로 POWWOW라는 이름의 다른 팀이 공연을 진행할 예정이라는 안내만 있었다. 아- 그렇구나.
오후 7시가 넘은 시간, 남들보다 빠르게 친구와 의자를 3면으로 둘러싸서 만든 작은 공연장에 앉았다. 공연장이라고 하기에는 그냥 박물관 로비 옆 공간에 의자를 깔아놓은 게 전부였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찾아온 문화생활은 나름 나를 들뜨게 했다. 시간이 흘러 흘러 8시가 넘어가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금세 공연장은 가득 찼다. 우리의 지혜로움을 증명하듯, 자리를 찾지 못해 서있는 사람들도, 발코니에서 내려다보는 사람들로 공연장은 꽉찼다. Native American Heritage Month, 그러니까 북미 원주민을 기리는 달을 맞아 행사의 주제는 Native American이었다. 그래서 공연을 위해 초대받은 그룹은 주에 뿌리내리고 살아온 한 부족의 후손인 가족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두 명의 딸과 그들의 이모, 총 다섯 명이 전통 복장을 입고 무대에 들어섰다. 그들은 차례차례 자기소개를 했다. 자신의 '이름'과 영어 이름을 함께 소개했으며 특유의 재치와 진중함으로 공연의 취지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는지 설명했다. 의상은 강렬했고 그들은 놀랄 만큼 차분했으며 때때로 관객들은 박수를 쳤다.
그냥 그 다섯 명의 가족이 무대에 나오는 순간부터, 내 눈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 그건 동정이라는 하찮은 감정이 아니었다. 감히 말하건대 그냥 그들에게서 나를 봤는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가족의 아버지가 이렇게 말했을 때 가장 마음이 쿵-하고 떨어졌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입은 건 코스튬이라고 부를 수 없어요.
이건 우리의 옷일 뿐이죠.
당신의 언어를 쓰고, 당신의 노래를 부르고,
기왕이면 당신의 춤을 추세요. 아주 신나게.
이 학교라는 버블 안에서 인종차별을 당하거나,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심각하게 회의를 가져본 적은 없다. 그래도 한구석에서 나는 계속해서 던지고 있었던 듯하다. '나는 누구일까'라는 그 촌스러운 질문을. 같이 간 중국 친구는, 지금 공학 교육(Engineering Education)에서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데 사실 캐나다에서 이미 화학공학(Chemical Engineering)으로 박사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박사과정을 하며 세상에 이바지하고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걸 돕고 싶은 만큼 그 마음을 실현할 수 없는 데에 큰 회의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다시 박사과정을 밟기로 택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지식이, 자신의 노력이 보다 더 실체 있게 변화를 일으키는 걸 바라면서. 그리고 그녀가 말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그런 것 같아.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바라는지 더 격하게 질문하도록 만드는 것 같아.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가족들이 추는 춤은 객관적으로 말해서 대단한 짜임이 있거나 무대 구성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스트릿 우먼 파이터 또는 스트릿 맨 파이터 같은 느낌의 공연은 분명히 아니었다. 그래도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이 동작의 단순함과 소리의 울림에서 느껴졌다. 그리고 내가 남기고 싶은 메시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증명하려 하기보다는, 가족의 아버지가 말했듯,
우린 여기 있어요. 그게 다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