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와서야 비로소

사람을 만난다는 건 그 사람의 인생을 마주하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by 강주피

몇 주 전에 쓴 글이지만 이제야 공유.



얼마 전, 통계 수업 과제로 글을 읽었다. 부연설명을 잠깐 하자면, 내가 듣는 통계 수업은 굉장히 획기적인 시도를 하는데, 그건 통계 지식에 사회 정의(social justice)를 녹여내기 때문이다! 통계의 역사부터 구구절절 설명할 생각은 없지만, 내가 가진 통계에 대한 반감이 그랬다. 한 사람의 만족감과 행복, 우울과 불안함, 그리고 성장을 숫자로 계산해내는 게 나는 불편했다. 그래서 으레 통계에는 사람이 없고, 감정이 없고, 정의가 없어야 한다고 많이들 배워왔을 것이다. 그러나 도쿄 올림픽 메달리스트 딸을 둔 이 교수님은,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통계가 가정해온 ‘객관성’에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통계가 어떻게 사회정의를 더 ‘잘’ 설명해낼 수 있을지 고민해보자고 말한다. 그것이 ‘가려온’ 사회정의를 투명하게 드러내면서.


구구절절 말이 길어졌지만, 오늘 담고 싶은 말의 전체적인 맥락과 닿아있기에 잠깐 설명을 했고. 그래서 내가 읽었던 글로 돌아가면, 글쓴이는 한 사람이 순전히 머리에만 의존에서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의 수가 ‘과학적’으로 약 500명이라고 했다. 너무 놀라서 당황했는데, 순간 요즘의 나라면 500명도 채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미국에서 살아남으려면, 당황하더라도, 초인적인 능력으로 이름과 얼굴을 매치해 내야 한다고 종종 생각한다. 그리고 요즘 나는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나고 알아가고 있다. 버겁다고 느낄 때도 있는 건 사실이지만, 한국에서의 나는 상상도 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사람을 만나고 알아가고 있다.



그러다 문득 한 사람을 알게 된다는 것, 그건 그 사람의 인생을 마주하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 문장은 다양한 문맥적 의미를 포함하는데, 우선 한국에서는 사실 굉장히 비슷하게 살아온 친구들을 만나기가 쉬웠다. (물론 엄청나게 다른 삶이었지만.) 그래도 그들이 가지고 오는,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학창 시절과 대학교에서의 삶, 그래서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또는 직장에 취직하기까지의 여정을 어려움 없이 소화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여기서 어떻게 됐다고?"의 질문이 필요 없었던 거지. 다만 이 미국에서 만난 사람들은 계속해서 반복적인 질문이 필요한 인생의 이야기를 들고 온다. 할아버지가 카투사에서 태권도 선생님이셨다던가, 미국에 살다가 일본에서 대학을 갔다던가, 과학을 공부하다가 교육학 교수를 하고 있는 등. 상상치도 못한 이야기의 전환과 어느 정도 상상 가능하지만, 아주 현실적으로는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 누군가의 삶이 내게 (말 그대로)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사실 이렇게 많은 사람의 이야기에 접근할 수 있다는 건 대학원생이, 그것도 박사과정 대학생이 가진 특권이기도 하다. 석사와 박사 친구들이 모여있는 자리에서 “모든 박사과정생은 약간의 변태다.”라는 주제가 나왔을 때 갸우뚱하는 석사과정 친구들과 단번에 이해하는 박사과정 친구들을 봤다. 그들은 알아챘던 것이다. 전공과 프로그램에 관계없이 박사과정에 들어선다는 건, 약간의 '미치는 일'을 필요로 한다는 걸. 내가 좋아하고 흥미 있는 분야에 몇 년 이상의 시간을 투자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어쩌면 일상생활에서도 그런 모드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래서 나는 내 전공을 십분 살려 사람들의 삶에 접근한다. 나는 토크쇼의 MC가 된 마냥 “당신은 스스로를 bilingual이라 정의하나요?”라든가 “왜 누리혼지 나로혼지가 발사될 때는 통제실에 단 한 명의 여성 과학자가 없었던 거죠?”라든가 “교수로서 당신은 중산층인가요?” 등의 질문을 스스럼없이 던진다. 그리고 놀랍게도 모두가 진지하게 답해주고자 한다. 그럼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는 질문을 끝없이 던진다.


유학이라는 건,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교에 다닌다는 것, 질 좋은 펀딩 패키지를 받는 것과, 그리고 영어 실력을 늘리는 것만큼이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는 데에 그 가치가 있다는 걸 알아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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