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작품인가, 상품인가

by 뤼도빅

제목에 끌려 하루키 책을 한 권 샀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를 떠올리면, 나는 종종 ‘작품’이라기보다 ‘상품’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장편소설이나 일부 단편과 달리 그의 에세이는 대체로 가볍다.

아직 이 책은 펼쳐보지 않았지만, 이전 에세이들에서도 특유의 “하루키식 가벼움”이 묻어난다.


그럼에도 하루키는 자신이 쌓아온 문학적 명성이 있기에,

그 가벼운 에세이조차 걸작처럼 평가되는 경우가 있다.

『먼 북소리』를 보면 작품을 쓰게 된 배경과 당시의 심정을 풀어내는데,

이 지점에서 에세이는 단순한 소비재를 넘어, 작품과 상품이 공생하는 형태로 자리 잡는다.

하루키라는 이름이 ‘작가 브랜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책을 읽으며 비슷한 경험을 했다.

예전에 읽었던 『파리와 생각』은 겉보기에 그럴듯했지만,

실제로는 내용이 비어 있어 깊이와 밀도가 부족했다.

결국 한 번 읽고 나면 굳이 다시 펼칠 필요가 없는, 그저 “상품”에 가까운 책이었다.

반대로 한강의 소설들은 내 서가에 오래 두고 싶은 “작품”이다.

시간이 흘러도 가치가 줄지 않고, 다시 읽을 때마다 다른 감각을 준다.


물론 언제나 이런 구분이 선명한 건 아니다.

어떤 책은 내용은 아쉬워도 표지가 예뻐서 오래 두기도 하고,

어떤 책은 『민들레 와인』처럼 끝내 읽어내지 못한 채 중고서점으로 보내버리기도 했다.


책은 작품이기도 하고 상품이기도 하다.

때로는 악세사리처럼 머물기도 하고, 애초에 독자의 흥미조차 붙잡지 못하기도 한다.


항상 상품만 찍어내는 작가와, 주로 작품을 쓰되 가끔 상품을 내는 작가는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다.

전자는 시장의 요구를 충족하는 생산자에 가깝고,

후자는 시장 속에서도 작품성을 유지하려는 예술가에 가깝다.

독자로서 내가 느낀 무게감의 차이도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내 서가를 돌아보면, 결국은 중고서점에 넘겨버린 책과 여전히 곁에 두고 있는 책이 나란히 있다.

언젠가는 이 두 무더기가 내가 책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지표가 될지도 모른다.

어떤 책은 “지금 이 순간의 소비”로 끝나고, 어떤 책은 “다시 펼칠 이유”를 남긴다.

책은 작품이기도 하고 상품이기도 하다.

그 무게를 가르는 것은 작가만이 아니라, 독자인 나의 선택과 태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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