Ⅴ.흰 아오자이는 왜 첫사랑의 색이 되었을까?

통념과 현실 사이에서 탄생한 한 가지 이미지

by 한정호

이제 거리에서 흰 아오자이를 입고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거리에서 보기는 어렵다. 대신 오토바이 뒤에 앉아 학교로 향하는 모습이 더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흰 아오자이는 여전히 자전거와 함께 움직이는 장면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 기억 속 장면에는 언제나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흰색’이다.

그래서인지, 베트남을 처음 방문한 외국인 여행객들은 거리에서 흰 아오자이를 입은 학생들을 보면 종종 이런 질문을 던진다.

“왜 다 흰색이지?”

“미혼이라서 그런 건가?”

“결혼하면 색이 달라지나?”


어디선가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미혼은 흰색, 기혼은 컬러.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다.


1. 흰색은 ‘미혼 규칙’이 아니다

베트남에는 조선시대의 쪽진 머리처럼 결혼 여부를 색으로 구분하는 공식 규범은 없다. 기혼 여성도 흰 아오자이를 입는다. 미혼 여성도 붉은색이나 파란색을 입는다. 그럼 왜 이런 통념이 생겼을까?


2. 학교 교복이 만든 이미지

베트남 여러 고등학교에서 여학생 교복은 흰 아오자이다. 이 장면은 20년, 30년 동안 반복되어, 하나의 문화적 기억이 되었다.

흰색은 순수함, 젊음, 시작, 아직 열리지 않은 가능성을 상징하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흰 아오자이를 ‘미혼의 색’이라고 받아들였다. 사실은 ‘학생의 색’이었는데 말이다.


3. 첫사랑의 이미지가 덧씌워지다

영화, 드라마, 광고 속의 하얀 아오자이를 입은 여학생은 첫사랑의 아이콘이 되었다.

햇빛 아래에서 살짝 비치는 흰 천, 수줍은 표정, 길게 흩날리는 머리.

pexels-soldiervip-8405957.jpg '첫사랑'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르는 아오자이를 입은 학생

이 이미지가 반복되면서 흰 아오자이는 ‘첫사랑의 색’으로 고정되었다. 이는 전통이라기보다는 미디어가 만든 감성이다.


4. 결혼식의 색과 혼동되다

결혼식에서는 보통 붉은색이나 금색 아오자이를 입는다. 붉은색은 길상과 번영의 의미가 강하다. 이 장면이

‘결혼 = 컬러’라는 인상을 강화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연결한다.

pexels-tr-n-long-3093985-14581435.jpg 베트남 결혼식 장면

'흰색 = 미혼' '컬러 = 기혼'

하지만 그건 상징의 단순화다. 일상에는 그런 규칙이 없다.


5. 그렇다면 흰 아오자이는 무엇인가

흰 아오자이는 법이 정한 색도 아니고, 전통 문헌에 명시된 규범도 아니다. 그건 세대가 반복해 만든 하나의 감정이다. 베트남 사람에게 흰 아오자이는 학창 시절의 기억이고, 풋풋한 시간의 상징이다.

외국인에게는 베트남 여성성의 이미지가 된다. 통념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현실과 상징이 겹치면서.


6. 흰 아오자이는 어떻게 하나의 상징이 되었을까

흰 아오자이는 오래된 전통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처음부터 당연하게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이 관습은 20세기 중반, 남부 사이공의 여학교들에서 여학생 교복으로 아오자이를 채택하면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때 색은 흰색으로 통일되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흰색은 장식이 없고, 계층의 차이를 드러내지 않으며, 학생이라는 신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이었기 때문이다. 화려함 대신 단정함을, 개성 대신 공통된 정체성을 보여주는 색이었다.

기후도 영향을 주었다. 더운 햇빛 아래에서 흰색은 열을 덜 흡수했고, 긴 옷 형태의 아오자이를 조금 더 편하게 입을 수 있게 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점이 있다. 아오자이는 어린아이의 옷이 아니라, 성숙한 여성의 복식 계보에 속한 옷이었다. 그래서 베트남에서 여학생들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처음으로 흰 아오자이를 입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교복이 아니라, 한 시절의 시작을 알리는 옷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흰 아오자이는 학교를 넘어, 학창 시절 그 자체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자리 잡게 되었다.


7. 흰 아오자이는 베트남 사람들의 시간이다

처음 베트남에 왔을 때, 흰 아오자이를 입은 여학생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이미지는 외국인의 눈에만 특별하게 보이는 것일까?’

혹은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면, 이런 의문도 스쳤다.

‘혹시 외국인이 좋아할 만한 이미지이기 때문에, 일부러 흰 아오자이를 입는 것일까?’

관광지에서 또는 가라오케와 같은 공간에서라면 그런 해석이 가능할 수도 있다. 외부의 시선을 의식해 만들어진 이미지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교 앞, 골목길, 아침 출근 시간 속에서 마주치는 흰 아오자이는 그런 맥락과는 전혀 다른 장소에 존재한다. 그것은 보여주기 위한 옷이 아니라, 그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나가는 시간의 일부다.

사실 나는 이 감정이 외국인의 시선에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곤 적잖이 놀랐다.


베트남 사람들 자신도 흰 아오자이에 대해 매우 유사한 기억과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

베트남 남성들에게 흰 아오자이는 흔히 ‘학창 시절’ 그 자체를 의미한다. 그들이 기억하는 첫사랑은 특정한 얼굴이라기보다, 교문 앞에 서 있던 흰 아오자이의 뒷모습, 바람에 흔들리던 옷자락, 그리고 그 시절의 공기와 함께 남아 있다. 그래서 많은 베트남 남성들은 흰 아오자이를 떠올릴 때, 누군가 한 사람을 떠올리기보다 자신이 지나온 시간 전체를 떠올린다.

베트남 여성들에게도 이 옷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다만 그 감정은 타인에 대한 기억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기억에 가깝다. 흰 아오자이를 입던 시절은 아직 사회의 책임을 지기 전, 미래가 열려 있던 시기였다. 많은 여성들에게 흰 아오자이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옷이 아니라, 자신이 가장 순수한 시간 속에 존재했던 시절을 증명하는 옷이다.

실제로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흰색 아오자이를 입을 일은 거의 사라진다. 일부 직업이나 행사에서 아오자이를 입는 경우는 있지만, 교복으로 입던 ‘흰 아오자이’는 그 시절과 함께 멈춰 있는 옷이 된다. 그래서 이 옷은 현재의 일상이 아니라, 지나간 시간의 표식으로 남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 감정이 개인의 경험을 넘어 사회 전체의 기억으로 공유된다는 것이다. 베트남의 영화, 음악, 사진 속에서 흰 아오자이는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졸업식 장면, 첫 고백의 순간, 그리고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 속에는 언제나 흰 아오자이가 있다. 이 반복은 하나의 이미지를 개인의 기억에서 사회의 기억으로 확장시켰다.


그래서 흰 아오자이는 외국인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이미지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이 이미지는 베트남 사회 내부에서 먼저 형성되었고, 외국인은 그 위에 이미 존재하던 기억을 뒤늦게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흰 아오자이는 누군가를 사랑했던 기억이라기보다,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었던 시절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왜, 같은 아오자이임에도 남성의 아오자이는 이런 상징으로 남지 못했을까? 다음 편에 살펴보려 한다.


☞ 아오자이 이야기 전체 시리즈 영상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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