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개인보다 가족이 먼저인 나라
오늘은 2월 14일이다. 달력으로는 분명 발렌타인 데이다. 분명 거리에, 매장에 사람들이 붐빌 것이라 생각했는데 너무 차분한 분위기에 시간을 다시 살펴볼 정도이다.
사실 오늘 거리에는 연인에게 선물할 꽃송이보다 복숭아꽃이 많고, 하트보다 붉은 등불이 더 많이 걸려 있다. 길거리 꽃 시장은 붐비고, 제사상에 올릴 멋드러지게 그림이나 글자를 새겨 놓은 수박들이 나란이 줄을 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사람들의 관심은 지금 연인이 아니라 가족에게 가 있는 것이다.
올 해는 발렌타인 데이가 설 기세에 눌려버렸다.
1. 서구의 기념일 vs 동아시아의 시간
발렌타인 데이는 개인의 감정을 기념하는 날이다. 사랑을 고백하고, 연인에게 선물을 건네고, 둘만의 시간을 만드는 날. 물론 그것도 베트남에선 가족간의 사랑을 함께 확인하는 날이지만.
하지만 설(Tết)은 완전히 다르다. 설은 개인의 감정보다 온전한 가족의 시간이고, 연인보다 조상을 먼저 생각하는 날이다. 개인보다 공동체가 앞선다.
2. 사랑은 잠시 미뤄지고, 관계가 먼저다
오늘 카페는 생각보다 한산했다. 연인들이 줄을 설 법도 한데, 사람들은 고향으로 이동하거나, 고향에서 올 가족을 맞을 준비에 더 바빠 보였다.
베트남의 설은 ‘한 해를 다시 시작할 자격’을 얻는 시간이다. 조상에게 인사하고, 부모에게 인사하고, 친척을 찾아다니며 관계를 확인한다. 연인의 자리는 그 뒤에 있다.
3. 그래도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사랑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이곳에서는 사랑도 가족의 구조 안에서 움직인다. 연인에게 꽃다발을 건네기 전에 먼저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는 나라. 서구의 기념일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조금 순서를 양보하는 것이다.
4. 기념일의 서열
이 나라에는 기념일에도 서열이 있다. 설은 최상위. 그 아래에 국가 기념일. 그 아래에 개인의 날.
그래서 발렌타인 데이는 그 구조 안에서 오늘 조금 작아진 듯 하다.
그래서 오늘은 썰렁하다. 하지만 그 썰렁함이 이 사회의 질서를 보여준다.
오늘은 발렌타인 데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올해의 2월 14일은 여전히 설의 시간 안에 있다. 사랑은 잠시 미뤄지고, 가족이 먼저다. 설 기세에 눌린 발렌타인 데이. 그 풍경 속에서 나는 이 나라가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지 다시 한 번 보게 된다.
그리고 그 모습이, 중년이 된 내 눈에는 이상하게도 따뜻하게 느껴진다.
[유난히 한적한 2026년 발렌타인데이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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