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기념관에서

반성과 외면 사이에서

by 한정호

지난주, 전쟁기념관을 찾았다. 사실 오래전부터 '다시 한 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곳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늘 뒤로 미뤄두고 있었다. 굳이 지금 가지 않아도 되는 곳. 마음이 편할 때 가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곳. 호치민을 찾은 지인들에게 소개해도 '굳이 뭘 거길...'이라는 답변을 듣던 곳이다. 아마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곳이 어떤 공간인지.


입구를 지나 조금 걷다 보니, 익숙한 비행기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정찰기였다. 어렸을 때 아버님의 동료분이 조종해 주셔서 몇 번 타 본 경험이 있는 그런 류의 정찰기이다. (규정상 조종사 군인의 가족이 함께 비행기를 탈 수 없었다. 북으로 넘어 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아버지가 떠올랐다.

20260327_120339.jpg 호치민시 전쟁기념관내 전시된 정찰기
20250523_222623.jpg 월남전 참전 당시 정찰기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계신 아버님 모습

군복을 입고, 조종석에 앞에서 포즈를 취하시던 젊은 시절의 사진들. 내가 몇 번이나 꺼내보았던 그 사진들.

나는 그 비행기 앞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저 안에 앉아 어떤 풍경을 내려다보셨을까?'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그 시간을 제대로 물어본 적이 없었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갔다. 좁은 철창으로 만들어진 감옥 모형이 있었다. 사람이 제대로 서 있을 수도 없는 공간. 몸을 제대로 펼 수도 없는 구조. 설명문을 읽지 않아도 그곳이 어떤 공간이었는지는 충분히 느껴졌다.

그 안에 갇혀 있었을 사람들. 고통으로 흘러갔을 시간.

나는 잠시 그 앞에 서 있다가, 시선을 돌렸다.

더 이상 상상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20260327_120253.jpg 감옥에서 옥사한 사람들을 기리는 사진 모형

밖으로 나오니, 거대한 폭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사람 키를 훨씬 넘는 크기. 그 앞에 서 있으니 ‘무기’라는 단어보다 먼저 ‘공포’라는 감정이 올라왔다. 저것이 떨어지는 순간, 그 아래에 있었던 사람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생각이 길어지지 않게 발걸음을 옮겼다.

20260327_120806.jpg 월남전 실제 사용되었던 폭탄 전시물

그리고 전시관 안으로 들어갔다. 사진들이 이어졌다.

전쟁. 부상. 죽음 그리고 고엽제.

아이들의 모습이 있었다. 몸이 온전하지 않은 채 태어난 아이들. 유리병 안에 담겨 있는 작은 생명들. 그 앞에서는 ‘본다’는 표현이 맞지 않았다. 그건 견디는 것이었다.

20260327_130011.jpg 고엽제 피해로 기형적으로 태어난 아이의 모습

이곳은 보고 싶은 것들로 채워진 공간이 아니다. 보고 싶지 않은 것들로 가득한 공간이다.


전시장을 돌면서 내 눈에 가장 오래 남은 장면은, 전시물이 아니라 ‘사람들’이었다. 서양인들이 많았다. 전시장 관람객의 대부분이 그들이었다. 그들은 한 곳에 오래 머물렀다. 사진을 보고, 설명을 읽고, 천천히 걸으며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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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7_125407.jpg 사진과 설명에 진지한 서양인들의 모습


그리고 동시에 또 하나의 사실이 더 크게 다가왔다. 한국인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이상한 감정이 올라왔다. 이 전쟁에는 우리도 있었다. 이곳에는 아버지 세대의 시간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공간에 거의 없다.

'왜일까?'

'우리는 이 전쟁을 몰라서 외면하는 걸까?' 아니면

'알고도 굳이 마주하지 않으려 하는 걸까?'


아버지에게 이 전쟁은 부끄러운 기억이 아닐 것이다. 그분들에게 그것은 주어진 시대 속에서 살아낸 시간이다. 그런데 나는 그 시간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래서 더 모르고 있었다.

이곳을 다녀온 뒤 생각이 달라졌다. 이 이야기는 누군가의 잘못을 따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함께 마주봐야 할 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우리는 너무 쉽게 이 전쟁을 ‘남의 이야기’로 밀어두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나는 이 전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 이야기를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래서 아버지에게도 꼭 여쭤보고 싶다.

“그때, 어떤 시간이셨나요?”

"아버님이 기억하시는 그 전쟁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이 글은 이 질문들을 꺼내기 위한 첫 번째 기록이다. 이 이야기를 영상으로도 정리해보려 한다.


명함 앞.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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