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베트남의 병아리를 풀어 키울까?

닭을 보며 떠올린 한국과 베트남의 ‘키우는 방식’

by 한정호

며칠 전 아침, 집들 사이 작은 공터에서 흥미로운 장면을 보았다. 어미 닭 한 마리가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고, 그 뒤를 작은 병아리들이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다. 그것도 좁은 닭장이 아니라, 아무 제약 없는 바깥 공간에서 말이다. 마치 동네 전체가 그들의 놀이터인 것처럼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귀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영상으로 담았다.


Một khắc Việt Nam #Việt Nam #cuộc sống #đời thường #hôm nay #vietnamlife #vietnam #베트남 #베트남일상


그 모습을 보면서 문득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어릴 적 군대 관사에 살 때, 어머니도 닭을 키우셨다. 그 시절 우리는 닭장을 따로 만들어 그 안에서 닭을 길렀다. 먹이도 챙겨주고, 밤이면 엄마와 함께 후레시를 들고 논에 나가 개구리를 잡아 삶아 주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분명 그때의 닭들은 늘 ‘우리 안’에 있었다. 마당은 있어도, 마음대로 돌아다니게 두지는 않았다.


그래서 베트남에서 보는 이 풍경이 낯설었다.

‘저러다 길을 잃으면 어떡하지?’
‘누가 그냥 잡아가면 어떡하지?’
‘차에 치이거나 다른 동물에게 공격당하면 어떡하지?’

한국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떠올릴 법한 걱정이었다. 그런데 이 영상을 본 직원이 웃으며 말했다.

“베트남에서는 원래 다 저렇게 키워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왜냐하면 이 모습이 단순히 닭을 키우는 방식이 아니라, 한국과 베트남이 자식을 키우는 모습과도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1. 키우는 방식, 그리고 바라보는 방식

한국에서 무언가를 ‘잘 키운다’는 것은 대개 '관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해진 시간에 먹이고, 정해진 공간에서 생활하게 하고, 정해진 기준에 맞춰 성장하도록 만든다. 그래야 결과를 예측할 수 있고, 그래야 실패를 줄일 수 있으며, 그래야 효율이 높아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렇게 생각한다. '통제해야 잘 자란다.' 사실 자식을 두고도 우리는 ‘키운다’는 표현을 쓴다. 가끔은 그 말이 조금 어색하게 느껴질 만큼, 어딘가에는 ‘관리’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듯하다.


반면 베트남은 조금 다르다. 가두지 않는다. 완벽하게 통제하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 살아가게 둔다. 닭은 마당과 골목을 돌아다니고, 알아서 먹이를 찾고, 환경에 부딪히며 자란다.

처음엔 이런 방식이 비효율적으로 보인다.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 그렇게 자란 존재들은 생각보다 강하다. 그리고 생각보다 환경 변화에 잘 적응한다.


2. 베트남은 왜 그렇게 키울까?

이건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환경이 만든 방식이다. 베트남은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사회다. 갑작스러운 비 한 번에 하루 일정이 바뀌고, 약속은 쉽게 미뤄지며, 가족 행사나 집안 일이 계획보다 우선되는 경우도 흔하다. 행정과 물류도 언제나 예상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오늘 끝날 줄 알았던 일이 내일로 밀리고, 내일 될 줄 알았던 일이 다음 주가 되기도 한다. 즉, ‘정확히 계획하고 그대로 실행하는 것’보다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이 더 중요한 환경인 셈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하기보다, 변수 속에서 버티고 적응하는 능력이 더 가치 있게 평가된다.

그래서 베트남 사람들은 처음부터 완벽히 보호하기보다, 부딪히며 익히게 하는 방식에 더 익숙하다.


3. 그래서 사람도 그렇게 자란다

생각해 보면 베트남 아이들도 그렇다. 어릴 때부터 혼자 오토바이를 몰고 다니고, 어린 나이에 장사를 돕고, 학교 밖에서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일이 많다. 한국 기준으로 보면 위험해 보인다. 조금 더 보호해야 할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자라며 자연스럽게 현실 감각과 생존력을 익힌다.

물론 어느 방식이 더 좋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한국의 방식은 안정적이고 체계적이다. 반면 베트남의 방식은 거칠지만 강인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키우는 방식은 결국 그 사회가 살아가는 방식과 닮아간다는 점이다.


그날 나는 병아리들을 보며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그 작은 생명들이 골목을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모습이 처음엔 위험해 보였지만, 어쩌면 그것이 이 사회가 살아가는 방식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보호 속에서 키우고, 그들은 경험 속에서 키운다. 어느 쪽이 더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같은 ‘키운다’는 말 안에도 이렇게 다른 철학이 담겨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울 뿐이다.


어쩌면 이 차이는 단순히 닭을 키우는 방식에서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한국과 베트남의 직장 문화가 왜 다른지도 결국 같은 이유에서 설명될 수 있다. 왜 베트남에서는 부탁보다 지시가 더 잘 통하고, 왜 약속보다 상황이 우선되며, 왜 책임보다 관계가 먼저일까. 어쩌면 그 답도 이 ‘키우는 방식’ 안에 있을지 모른다.


명함 앞.jpg


매거진의 이전글'덜 쓰는 사회'와 '더 움직이는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