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단어, 전혀 다른 장면
어제 저녁,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시간은 11시가 조금 넘었고, 내 기준에서는 이미 하루가 끝난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잠들어 있어야 하고, 거리는 조용해져야 하는 시간.'
그런데 길가의 한 대중 바에서 전혀 다른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어른들은 맥주잔을 들고 앉아 있었고, 가라오케 기계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누군가는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누군가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흔들고 있었다. 그 바로 옆에서 아주 어린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그 장면을 처음 보는 순간, 마음 속에선 일종의 '화'가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 아이들 벌써 자야 할 시간인데.’
‘왜 굳이 이런 데를 데리고 와서 이 시간까지 잠도 안 재우고 있을까.’
'지들끼리 놀면되지, 왜 애꿋은 아이들을 힘들게 만들어!' 라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머릿속에 하나의 단어가 떠올랐다. ‘밤문화’
내가 알고 있던 ‘밤문화’
이 단어를 떠올리면 한국에서의 장면이 먼저 겹쳐진다. 술, 늦은 시간, 어른들만의 공간. 아이와는 분리된 세계, 일상과는 조금 떨어진 영역. 그래서 ‘밤문화’라는 단어에는 어딘가 경계해야 할 느낌이 조심스럽게 따라붙는다. 적어도 내가 알고 있던 의미는 그랬다.
그런데 눈앞의 장면은 전혀 달랐다. 아이들이 있었다. 부모와 같은 공간 안에 앉아 있었고, 같은 시간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맥주를 마시고 있었고, 누군가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지만 그 분위기는 내가 떠올리던 ‘밤문화’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도 어르신의 제사날이나 특별한 날이면 친지들이 모두 모였다. 내 또래의 사촌들도 모두 모여 한 곳에서 놀곤 했던 기억이 있다. 한쪽에서는 고스톱 소리가 들렸고, 갑자기 웃음이 터지기도, 때로는 험악한 분위기가 흐르기도 했다.
하지만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 장면에는 어떤 선이 있었다.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춤을 추고, 어른들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일은 어딘가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보이더라도 창피한 일이고, 감춰야 할 것처럼 배웠던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눈앞의 장면은 단순히 낯선 정도가 아니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기준 자체가 그대로 흔들리는 느낌에 가까웠다.
같은 단어, 다른 구조
나는 이 장면을 단순히 ‘이상하다’고 넘기지 않게 되었다. 대신 질문이 하나 생겼다.
‘같은 밤문화라는 단어를 우리는 전혀 다르게 쓰고 있는 건 아닐까?’
한국에서의 밤은 하루가 끝난 뒤의 시간이다. 역할이 정리되고, 공간이 나뉘고, 사람도 자연스럽게 구분된다.
그래서 밤은 어딘가 ‘따로 떼어놓은 시간’처럼 느껴진다.
반면 이곳에서의 밤은 하루가 끝난 시간이 아니라, 사람들이 다시 모이는 시간에 가깝다. 낮에 나뉘어 있던 것들이 밤이 되면 다시 한 공간으로 모인다. 가족, 식사, 대화 그리고 술. 그 안에 아이가 함께 있는 것도 그 흐름 속에서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내가 본 것은 ‘밤문화’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어제 밤 내가 본 장면은 내 기준에서는 분명 ‘밤문화’였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저 하루의 한 장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늦은 저녁, 조금 길어진 식사, 조금 더 이어진 대화. 그리고 그 안에 아이도 함께 있었을 뿐이다.
어찌보면 가라오케 그 기기 하나가 나의 '밤문화'라는 인식을 그 장면위에 그대로 덧씌워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분명해진 것이 하나 있다. 같은 단어를 쓰고 있지만, 우리가 떠올리는 장면은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차이는 설명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마주했을 때 비로소 느껴진다는 것.
돌아보면 그 장면은 그리 밉지 않다. 오히려 어린 시절 대가족이 모여 함께 시간을 보내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어쩌면 조금은 낯설지만 어딘가 닮아 있는 풍경이었다.
이제 나는 ‘밤문화’라는 단어를 조금 다르게 기억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