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양심은 또 한 번 버려집니다.
2004년 1월 베트남 파견 발령을 받았다. 아버님께 중국보다도 20~30년은 경제적으로 뒤쳐진 나라로 파견을 간다 말씀 드렸는데 아버님은 내게 "거기는 괜찮다."라고 무덤덤하게 말씀을 하셨다. 3년전 중국의 베이징으로 파견을 나갈 때는 김포공항까지 나오셔서 눈물을 참으시면서 "그 못 사는, 오지나라에 가서 괜찮겠냐? 조심해라"라고 말씀하셨던 분이다.
아버님은 베트남전에 육군 정찰대 조종사로 참전하셨었다. 그래서인가? 베트남에 대해서는 살가운 인상을 갖고 계신 듯하다. 호치민으로 떠나오기 전, 온 가족이 모여 저녁 식사를 하는데 어머님께서 우스개 소리를 하셨다. "거기가서 너 닮은 여자나 남자 있으면 나이 물어봐라! 정호 네 누나. 형일지 모른다" 라이따이한을 얘기하신 듯 하다. 베트남에 와서 아무런 의식없이 지인들과 얘기하다가 이 이야기를 하며 웃기도 했었다.
"라이따이한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였던 한국인과 베트남인 사이에서 태어난 2세를 말하는 말이다.
1955년부터 1975년까지 베트남 전쟁이 일어났다. 북베트남에서는 사회주의 정책이 추진되었고
남베트남에서는 정권이 몇 차례 바뀌었지만 부정부패와 반복되는 쿠데타로 민심을 잃었다. 이에
베트콩으로 알려진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이 결성되면서 남베트남에서 내전이 본격화되었다.
냉전으로 사회주의 진영과 자유주의 진영의 대립이 심화되었을 때, 미국은 남베트남이 공산화되면
사회주의 세력이 동남아시아까지 확산될 것이라고 우려하여 베트남 전쟁에 직접 개입하였다.
미국은 우리나라 박정희 정부에 베트남 파병을 조건으로 경제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기로 하였다.
이에 한국군도 베트남에 파견되었고, 이들과 베트남인 사이에 태어난 2세를 라이따이한이라고 한다."
[ 다음 백과사전 용어 해설 인용 ]
아는 형님 한 분과 운동을 하러 가는 차안에서 갑자기 우리 식당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 얘기를 꺼내셨다. 그 아줌마 불쌍한 사람이니 챙겨주라고. 그 아주머니의 딸은 매장에서 서빙을 같이 하고 있다. 형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남편은 한국 사람이었고, 얼마전에 한국으로 도망을 가버려 지금 마음이 많이 힘든 상황이라고 한다. 남편인 사람은 형님이 전에 다니던 회사의 직원이었는데 그 아주머니와 사귀고 결혼을 해서 딸을 낳고 살았다. 문제는 남편이 베트남에서는 결혼식도 하고 결혼신고까지 했지만 한국에는 일부러 신고를 하지 않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다가 마음이 바뀌어 가족을 놓고 한국으로 도망을 가버린 것이다.
'둘이 좋아서 결혼하고 살다 헤어지는 것이야 누가 뭐라 하겠나!' 하지만 자식까지 만들어 놓고 저렇게 무책임하게 놓고 도망가버리면 어떡하라는 것인가! 그것도 자기는 한국 돌아가서 싱글인 척 살겠다고 일부러 결혼신고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화가 치밀기까지 했다.
나 같으면 한국 사람은 쳐다 보기도 싫어 우리 식당에서 일하기 싫어할텐데 와서 성실히 일을 하는 걸 보면 심성이 착하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돈이 필요한가 보다'라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더 찡하다. 게다가 딸까지 같이 일을 하다니. 올해에 고등학교를 갓 졸업했는데 결혼 생활 때도 '딸 공부에 신경을 안 써줬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형님은 지금 '베트남에 라이따이한 들을 챙겨주기 위한 단체가 있다' 하시면서 그 여자 아이를 한국에서 조그마한 혜택이라도 받을 수 있게 챙겨보려 알아보고 있다고 하신다. 베트남 전쟁때 생긴 라이따이한 말고 제 2의 라이따이한도 많이 있다고 하시는 말씀을 듣자 부끄러운 마음마저 생겼다.
이젠 다른 자리에서 장난으로라도 "나 닮은 형님이나 누님을 찾아봐야겠다"는 말을 하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