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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호 Jul 09. 2024

인류에게 남녀평등이 가능할까?

힘과 재력이 불평등한 사회에선 영원히 불가하지 않을까?

 계급이란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사전에 따르면 '경제적, 사회 문화적 자산 및 생산 수단의 소유 여부 등 삶의 물적 조건상의 불평등에 기초한 사회적 관계에서의 대립적 지위'이다. 

 역사에서 청동기 시대부터 계급이 발생하였다고 가르친다. 농사가 시작되고 도구를 사용하면서 더 많은 재산을 가지거나 힘이 센 사람에게 권력이 모아지게 되면서 계급이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신석기시대까지 남성은 수렵 여성은 채집, 농경 생활을 하면서 생존을 위한 식량을 마련하였고, 남성의 수렵을 통한 생산량이 여성의 채집과 농경을 통한 생산량보다 많지 않았고 획득한 것은 모두 공동 섭취로 마무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청동기 시대 이후 잉여생산물이 생겨나면서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잉여물을 지키려 했고 나아가 전쟁을 통해 남의 것을 취해오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적의 우두머리나 상류 계급의 남성들은 처단되었고 일반 남성 와 여성은 노예가 되었다. 이때부터 여성은 힘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 저급으로 분류되기 시작한 것이다. 


 선사시대를 넘어 역사시대로 오면서 남녀의 불평등은 고착되었다. 이 문제는 동양, 서양의 문제도 아니었고, 종교적인 문제도 아니었다. 그저 재물과 힘이 불균형화 되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다. 


서양사의 여성

 고대 그리스에서 여자는 외국인, 노예와 더불어 시민에서 제외되었다. 당시 동성애가 발달한 이유는 여자와는 영혼의 교감을 나눌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로마에서도 여자에게는 참정권이 없었으며 가부장제 사회였다. 중세 가톨릭의 유럽에서도 여자는 남자의 보호 아래 있었다는 점에서 그리스, 로마와 다를 바 없었다.  

 이슬람 세계의 여인들도 집안에 갇혀 있어야만 했다. 유럽에서 중세 말기인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 여성들은 마녀사냥으로 수십만 명에서 수백만 명이 희생됐다.

 근대 계몽주의와 시민혁명의 시대에도 여전히 여성은 이성의 주체도, 인권의 주체도 아니었다.  

 미국에서는 1920년 21세 이상의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을 획득하였고, 영국에서는 1918년 30세 이상의 여성에게만 참정권이 인정되고 1928년 모든 여성에게 남성과 똑같은 참정권이 주어졌으며, 프랑스에서는 1946년에야 여성의 참정권이 보장되었다.

 오늘날 이슬람 세계에서 여성은 여전히 참정권과 사회활동에 많은 제약이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일부다처제를 취하는 나라가 있고, 파키스탄처럼 아내에게 3번의 이혼 통보(‘Triple talaq’)만으로 이혼 성립을 인정하는 나라도 있다.


 엘리자베스 여왕 재위 시 잉글랜드는 유럽 최강국으로 부상했고, 빅토리아 여왕은 대영제국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다. 오스트리아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는 왕위계승전쟁의 국난을 잘 극복하였고,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여제는 영토를 확대하고, 학예와 교육에 관심을 쏟아 계몽군주로 평판을 얻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왕들은 왕위 후계자로 아들이 없는 상황에서 일시적, 우연적으로 왕이 되어 남자 신하들에 둘러싸여 있었고 남성 위주의 정치질서를 바꾸지는 못하였다.


 동양사의 여성

 중국은 철저한 가부장제 사회였다. 每(매양 매)는 비녀를 하나 꽂은 어머니(母)는 항상 변하지 않는 꿋꿋한 존재라 하여 매양이란 뜻이 나왔고, 毐(음란할 애)는 비녀가 둘이라서 음란하다는 뜻이며, 毒(독 독)은 비녀가 셋이라서 독하다는 뜻이 나왔다.

 청나라에서는 여성에게 미용 등 목적으로 전족을 강요했는데 전족은 엄지발가락을 제외한 나머지 발가락 모두를 발바닥 쪽으로 구부리고 꽉 졸라매 발가락이 모두 부러지고 살점이 썩을 정도였다.

 일본에서도 여성의 지위나 사정은 중국과 다르지 않았다. 적당한 아들이 없을 때 여성 천황이 10회 정도 등장하였으나, 일시적이었으며 실권도 없었다.

 

 한국의 여성도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불평등은 동일하였다. 

 신라에서는 선덕여왕, 진덕여왕, 진성여왕 등 3명의 여왕이 있긴 했지만, 골품제에 따라 성골 남자가 없는 경우에 한정적으로 성골 여성이 왕위를 계승한 것이었다. 

 특히 조선 후기 각종 전란과 기근으로 살림이 궁색해지고 유교질서가 강화되면서 장자상속이 일반화되고 남존여비 사상이 강화되었다. 또한, 정치는 물론 사회생활에 대해서도 여성은 나서지 않는 게 법도이자 관습이었다. 양반 가옥에서 남자들이 머무는 사랑채와 여자들이 머무는 안채를 구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근현대에 이르러서도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거의 나아지지 않았다. 1948년 정부가 수립되면서 여성에게 참정권이 인정되었지만, 여성의 정치적 진출은 미미했고, 결혼, 상속, 이혼, 교육, 취업, 임금, 지위, 해고 등 가정과 사회 곳곳에서 여성은 차별을 받아야 했다.  

  

 <세상의 절반, 여성차별의 역사> 임관혁검사장(서울동부지방검찰청) 2023.05.31 법률신문기사 인용, 정리


 가톨릭에서는 성직자와 수도자 그리고 평신도로 구분을 한다. 신부님은 성직자이고 남성 수도자는 수사, 여성 수도자는 수녀라고 호칭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수녀님은 성직자가 아니고 수도자이다. 그리고 수녀들은 아직까지 서품을 받을 수가 없다. 즉 성직자는 남성만 가능한 것이다. 


 불교는 남녀평등을 강조한 종교로 유명하다. 이 장점을 통해 고대 인도종교와 차별화되어 급성장할 수 있는 있었다. 

 최초 석가모니께서는 여성은 그 본성상 결코 열반을 얻을 수 없다든가, 남성과는 달리 아라한이 될 수 없다든가 하는 말을 한 일이 없다. 도기(道器)로서의 여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부처님 당시와 입멸 직후에는 아라한이 되어 해탈의 노래를 거침없이 부른 여성들이 있었고, 비구들이 ‘여래의 아들 ’이라는 자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이 비구니들도 ‘여래의 딸’이라는 자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초기불교에서 부파불교를 거쳐 대승불교에 이르는 사이 여성관이 변천하였다. 

 불멸 후 1백 년 경부터 불교 교단이 약 20개의 부파로 갈라졌던 부파불교의 시대에 오면 불교 내에서의 여성의 지위는 하락하여 여자에게는 다섯 가지 장애가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여자는 부처가 될 수 없다는 여성불성불설이다. 서기 1세기 전후에 일어난 대승불교의 초기에는 여자가 남자로 변해야 부처가 된다는 변성남자성불설이 나타났고, 중기 대승불교에서는 여성이 여성 그대로 부처가 된다는 여성성불설이 나타났다.

 이와 아울러 여성을 교단에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비구니에게 팔경법이 주어졌는데 이는 비구니가 비구를 공경해야 할 8가지 계를 말하는 것이다. 즉 비구니를 확실하게 비구의 하위에 두었던 팔경법은 여성을 차별하는 근거로서 오랫동안 존재해 온 것이다.    < 불교에서 여성은 열등한가 >  불교평론, 2012.06.26 정리 인용

 결국 불교에서도 비구(남성 불승자)와 비구니(여성 불승자)에서도 차별이 이뤄지고 있던 것이었다. 실제 전국비구니회가 전국의 비구니 스님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에 따르면 비구니의 위상이 낮다는 응답이 65.2%인 반면, 높다는 응답은 불과 6.7%에 불과하다는 결과도 있었다.   < 불교신문 > 2003.03.08 발췌


 이슬람에서는 다른 종교들과는 달리, 인간과 신 사이에 어떠한 영적 중간 매개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무슬림들은 누구나 중간 매개체를 거치지 않고 언제나 신과 직접 대화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무슬림들은 성장 과정에서 이슬람을 체계적으로 배우며, 이를 바탕으로 누구나 선교사나 종교 교육자로 활동할 수 있는 자질을 터득하게 된다. 즉 모든 무슬림들은 누구나 종교 교육자이며 선교사인 것이다. 

 이맘은 예배할 때 맨 앞에서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을 일컫는데, 모든 무슬림들은 예배를 인도하는 이맘이 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남성만이 예배의식을 집전할 수 있다는 이슬람교의 율법이 있다는 사실은 성직자로서의 권리마저 박탈당하는 차별을 갖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을 듯하다. 


 힌두교의 대표국가인 인도의 경우,  정결도에 따라 다양한 카스트로 엄격하게 위계화된 사회체계를 유지해 온 인도사회에서는 카스트 체계가 정교화되면서 여성의 지위는 최하계급인 수드라와 동일시될 만큼 낮아지기도 했다. 즉 힌두교에서 남녀평등은 언급 자체가 어렵다고 할 수 있겠다. 


 결국 역사적으로나, 종교적으로 그리고 사회적 측면에서 여성이 남성과 평등하게 된다는 것은 영원히 불가할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베트남의 하이바쯩[쯩짝(Trung Trac)과 쯩니(Trung Nhi)] 자매처럼 군대를 조직해 적국 한무제를 물리치고 독립 국가를 이뤄 내거나, 자본으로 여성의 대부분이 남성을 압도할 있는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쉽지만 슬픈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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