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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호 May 25. 2024

베트남의 집단지도체제

상명하복이 아닌 수평적 집단지도체제로 운영되는 베트남 

 백화점 점포개발을 추진할 때, 몇몇 브로커들이 최고위급 간부와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을 들고와 자기 회사와 개발을 추진하자고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있었다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 

 한국도 군사 정권의 장기적인 집권과 정경 유착으로 상명하달식 문화가 아직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브로커들의 말에 귀가 솔깃하는 한국분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관계가 있는 윗 선이 있으면야 물론 일을 처리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업무처리 속도나 방해 요소들이 많이 배제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면서 한가지 명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 상명 하복이라는 개념이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과는 괴리가 심하다는 것이다. 

 

 베트남에서는 수평적 공동 책임이라는 ‘베트남 특색의 사회주의’ 체제가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기업에서 결재를 진행하는 경우 ‘회람’이라는 절차가 존재한다. 해당 업무에 대해 관련 부처에서 내용을 확인하고 동의를 표하거나 일부 제안사항이나 유의사항들을 기입하여 실행부서에서 참고하게 하는 절차이다. 만약 어느 부서에서 반대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그 결재안은 반대 의견이 반영되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실무자간 협의 및 조정을 통해 새로운 기안서를 올려 합의를 거쳐 최종 결정을 하게 된다. 회람의 경우는 서명이 없게 되면 무시하고 결재가 이루어져 업무가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베트남에서는 이런 상황이 불가능하다. 모든 관련 부서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결재 처리가 되어야 실행이 이루어지는 만장일치제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2009년 9월 30일. 호치민시 중심가에 금호아시아나 그룹이 투자한 금호 아시아나프라자의 준공식이 있었다. 이 자리에는 그룹의 박찬법 그룹 회장이 직접 참석했고, 호치민시에서는 '응우웬 쑤원' 푹투자기획부 장관, '레 훵' 호치민 시장, '임홍재' 주 베트남 대사 등 한·베트남 각계 인사들이 참석한 대형 프로젝트이며 행사였다. 당시로서는 호치민 시내 중심에 5성급 호텔, 아파트, 오피스, 상가 등의 최고급 복합시설 갖춰지는 최대 규모의 프로젝트 중의 하나였다. 그렇게 십 여년을 넘게 추진해 겨우 완성한, 양국의 대형 프로젝트 착공식을 하는데, 뒤에서는 한가지 에피소드가 있었다. 착공을 선언하기 위해 허가증이 발급되어야 하는데 착공식을 하기 하루 전날까지 한 부서에서 결재를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부서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한국같았으면 서명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 알려지면 바로 부서장이 짤릴 정도의 아무 힘도 없는 부서였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 부서장은 끝까지 이유 설명도 없이 결재를 하지 않았고, 그래서 금호 아시아나 그룹의 임원들이 그를 모시고 전날 오후부터 착공식이 있는 날 아침까지 술을 같이 하고 당일 아침에야 사인을 얻어 냈고 착공식이 무사히 진행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호치민시 금호아시아나 프라자 (현 M Plaza)

  베트남에서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윗선과의 꽌시(關係)가 중요하고, 일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실무자들과의 꽌시가 또 필요하다는 말을 한다. 소위 한국에서 말하는 "까라면 까지 뭔 말이 많아!"라고 윽박지른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주인은 인민이다’라는 말이 이런 때 생각나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 ‘양쪽에서 모두 너무 해 먹으려고 하는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베트남에서 “꽌시”를 내세우며 허세를 부리는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사람들에 동조해 사업이 잘 추진될 것처럼 생각하는 환상에 빠져서는 안 된다. 이렇게 생각하는 분일수록 투자를 생각하거나 최소한 자영업을 영위하시려고 하시는 분들이니 더욱 경계하시는 것이 좋을 듯 하다. 

 항상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위아래를 구분두지 않고 겸손하면서도, 경계하는 자세를 갖추는 것이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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