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과 지도의 차이에 대하여
해외 생활을 하시는 분들의 가장 큰 고민 중의 하나는 자녀의 교육 문제이고 어떤 국제학교를 보내는가일 것이다. 베트남에서 국제학교를 다닌 우리 아이들의 경험을 중심으로 해외 국제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해외에 나와 있는 분들의 자녀들은 학교의 선택에 있어서도 많은 고민과 준비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자기가 원한다고 마음대로 들어가는 것도 쉽지는 않다. 돈을 기부하고 들어갈 수 있을 정도면 모르겠지만.
중국과 베트남 큰 도시에는 각각 많은 국제학교들이 있는데, 베트남 호찌민시의 경우에는 한국학교를 포함하여 미국(SSIS), 영국(BIS, RISS, ABC), 호주(ISHCMC) 등 국제 기준에 맞춰 교육을 진행하는 여러 국제학교들이 있다. 그중에서 SSIS와 BIS와 IS 등의 국제학교는 학비도 다른 학교보다 비싸고 무엇보다 자녀의 개인 학업능력(영어능력과 이전학교의 학업성적)과 부모의 직업 등도 고려조건이 되어 보통 1년 정도 대기를 해야 하고 또 입학전형도 까다롭다. 그래서 처음 베트남에 온 자녀들은 한국학교나 다른 국제학교에 등록을 하고 다니다가 전학을 하는 경우도 있다.
큰 딸 재현이는 3살 때 중국에 들어와 2년간 국제학교급 유치원에 다녔기 때문에 5살에 베트남에 와 바로 SSIS 유치원 과정에 등록을 했는데 해외에서 살았던 경험을 인정받아 바로 입학이 허가되었다. 우리 재현이에겐 다행인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빠 잘 못 만나 어려서부터 외지생활에 익숙해졌다는 점을 인정받은, 어찌 보면 불쌍한 인정인 셈이다.
2년 후 베트남에서 태어난 상진이는 한 해라도 먼저 학생을 받아주는 영국계 RISS에 입학을 시켰다. 1년 후 SSIS로부터 입학통보를 받았지만 그대로 1년을 더 RISS에서 공부하게 하였다. 그때의 결정이 상진이에겐 정말 다행인 결과이긴 했다. 왜냐하면 1년 후에 내가 하노이로 이동 발령이 났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의 욕심에 상진이가 1년에 한 번씩 학교를 옮겨 친구를 새로 만들고 적응하려 했으면 더 힘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그 당시, 상진이를 RISS에 계속 다니게 한 결정은 상진이를 배려한 결정이 아니었다. RISS는 영국계 학교이고 재현이가 다니는 SISS는 미국계 학교인데 학교에서의 생활방식과 교육방식이 확연히 차이가 난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물론 두학교는 모두 우리 한국에서 생각하는 학교와는 달리 자율적이고 자유롭다는 점은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매일 숙제를 하고 부모님의 사인을 받아와야 하는데 두 학교의 숙제는 모두 읽고 싶은 책을 읽고, 그것을 부모님이 확인해 주는 것이 전부이다. 상진이는 어렸기 때문에 숙제가 아닌 알림장 같은 것으로 부모님이 매일매일 선생님과 대화를 하는 형식이었다.
RISS는 영국계 학교인데 자유로운 것 같지만 알림장에 선생님이 보내온 글이나 상진이의 행동을 보면 규율이 있다는 것도 그것은 미국계 학교와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느 날 선생님의 글에선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장난을 쳐서 교실뒤에 서서 수업을 듣게 했습니다. 가정에서도 지도 부탁합니다” “상진이가 오늘 수업시간에 앉아있는 자세가 똑바르지 않아 지도하였습니다” “상진이가 받아간 밥을 다 먹지 않고 남기고 있습니다.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설명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등등의 다소 규제를 하는 듯하지만, 세심함이 묻어 있는 메시지들이다.
한 번은 학교에서 상진이가 친구와 싸움이 있었다고 해서 면담을 하러 오라는 통보를 받고 갔는데 심하게 누가 다치게 한 정도도 아니어서 ‘뭘 이런 걸 갖고 학부모까지 부르고 하나’ 싶었는데 선생님은 이런 일이 한두 번 묵과되면 상진이가 편하게 폭력을 쓸 수 있게 되고, 다른 아이들도 보고 따라 할 수 있으니 교육이 필요하다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점심시간에 밥을 먹고 나면 아이들은 자기 식판과 수저를 씻는데, 그전에 선생님의 검사를 받는 것이 식사를 깨끗이 잘했는가였다. 지금도 재현이와 상진이의 식사 후 자리를 보면 분명 차이가 난다. 상진이는 밥을 다 먹고는 물로 그릇을 헹거 먹어 그릇이 반들반들하다. 반면 재현이 밥그릇은 밥풀이 여기저기 묻어 있고 뒷정리도 하나도 하지 않는다. 가끔 상진이가 밥을 지저분하게 남기면 “상진이 영국학교에서 배운 거 벌써 까먹었어?”하면 바로 숟가락을 들고 그릇을 정리하곤 한다.
어찌 이런 걸로 영국식과 미국식을 비교할 수 있겠냐마는 그래도 중요한 것은 어려서부터 배운 습관이나 생활방식은 교육의 기본 원칙에서 나오는 것이고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런 고민들은 어른들의 고민일 뿐 일지 모른다. 우리 재현이는 호찌민에서 SSIS를 다니다가 하노이로 발령을 받고 이동하면서 베트남에서 최고 중의 하나인 UNIS(유엔 국제학교)를 다녔다. 아빠 생각엔 두 곳을 바로 서류 심사에 붙어 대기하지도 않고 입학한 것에 대해 뿌듯함을 느꼈고 재현이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으로 귀국한 후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딸과 베트남 생활을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자기는 하노이의 UNIS 생활이 제일 끔찍했었다고 털어놓는 것이었다. 서양 애들과 나뉘어 있다는 느낌, 한국 학생들끼리의 과도한 경쟁 등 그래서 친구도 별로 없고 지금도 호찌민의 SSIS 친구들은 연락을 하고 있지만 하노이의 UNIS 친구들은 거의 연락도 하지 않는다면서 얼굴이 붉게 변하고 있었다.
당시 내겐 커다란 충격이었고, 무엇보다 그 당시 그런 것도 모르고 으스대던 아빠의 모습이 미안하기만 하다. 그래서 상진이를 중간에 학교를 안 옮기고 친구들을 유지하게 했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가끔 집사람과 아이들의 진로에 대해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집사람은 애들을 지도하고 길을 만들어 주는 것이 부모의 의무이자 역할이라고 한다. 하지만 난 애들이 지금 하고 싶은 것을 알아서 찾고 해 보는 것이 중요하고 그걸 지켜봐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면서. 누구의 말이 정답은 아니겠지만 엄마 아빠 둘 다 너희들에게 관심 갖고 지켜봐 주고 있으니 두 사람을 그렇게만 이해해 주면 고맙겠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