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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호 May 26. 2024

베트남과 중국의 애증관계

중국을 괄시하는 베트남인들의 자존심

 인터넷에서 [인사이드 베트남] 박동휘 기자가 2020년 10월 9일에 쓴 '중국의 '경제 우산'에 종속되는 베트남'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박 기자의 글을 읽고 베트남과 중국의 애증관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일상에서는 그렇게 중국산을 싫어하고(혐오하는 듯한 표현을 하는 사람도 많이 보았다) 마치 중국산은 모두 불량품이나 저가 상품으로 취급하는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우습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1979년 2월17일 중국 인민군이 국경을 넘어 랑선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을 당시, 이제 막 베트남을 통일한 호찌민 정권은 모골이 송연했을 것이다. 중·월 전쟁이란 이름으로 역사에 기록된 두 공산주의 체제의 대립은 동남아시아 패권을 둘러싼 갈등이었다. 베트남은 기원전서부터 자신들을 억눌렀던 중화 민족을 생래적으로 증오하고 싫어했다. 공산주의 기치를 같이 들었을 뿐, 국경을 맞댄 두 나라의 갈등은 필연적이었다. 베트남이 당시 생존 필수품인 석유를 중국이 아니라 먼 길을 에둘러 소련으로부터 공급받았다는 사실이 양국의 관계를 증명한다. [인사이드 베트남] 박동휘 기자가 2020년 10월 9일자 일부 발췌 ]

1979년 중월 전쟁 당시 사진 중국여행 길라잡기 블로그 재인용

 중월 전쟁 이후에도 양국은 애증 관계를 이어 오면서 타협과 갈등을 반복했다. 중국의 굴기(屈起)에 의해 발생한 남중국해에서의 갈등은 지속되고 있는 반면 경제적 교류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박 기자는 베트남과 중국 국경선에 즐비한 카지노들을 예로 들며 양국간의 허물없는 듯한 경계와 교류를 설명하고 있었다. 

 수백㎞에 달하는 중·월 국경선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카지노들이 즐비하다. 정글이 우거진 국경도시에서부터 바닷가를 바라보며 즐길 수 있는 도박의 천국들도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전까지만 해도 이곳의 최대 고객은 중국인이었다. 중국의 지하 자금은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는 물론이고 베트남으로까지 흘러와 ‘세탁’되곤 했다. 중국과 베트남의 고위 정·재계 인사들의 ‘검은 돈’은 국경을 넘나들며 출처를 지웠다. [인사이드 베트남] 박동휘 기자가 2020년 10월 9일 

 미·중 무역갈등 이후 중국에 있던 많은 수의 공장들이 베트남으로 이전하였다. 그 전에도 중국 기업들은 이미 2010년대 초반부터 자국 인건비가 급등하자 베트남으로 눈을 돌렸다. 외국인직접투자(FDI)를 통해 신발, 의류, 가방 업체들이 베트남으로 이전 또는 진출하였고, 중국의 ICT 기업들도 상당수다. 

 1986년 도이머이(개혁 개방) 이후 30여 년이 흘렀지만, 베트남은 자신들만의 제조업 역량을 제대로 축적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 자본을 무기로 베트남으로 진출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몇 년 전 다낭의 한 해변의 대형 리조트들을 본 적이 있는데 새로 건설된 대형 리조트의 대부분은 투자자가 중국 회사라는 말을 듣고 놀란 적이 있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이 있다. 그렇게 싫어 하고 한편으론 괄시하면서도 중국의 자본과 상품과 기술을 가장 많이 애용하고 있다는 점이 바로 애증관계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이곳 푸미에도 중국인들의 모습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전에는 대만인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제는 중국인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양국의 시민들이 어떤 모습을 보일 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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