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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독특한 결혼 문화

한국의 결혼 문화와의 차이점을 중심으로

by 한정호

베트남의 독특한 결혼 문화 (youtube.com)


딸아이는 이미 와이프가 나와 결혼한 나이가 지났건만 지금도 결혼은 몇 년 더 있다가 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나마 결혼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한데 자식에 대해 물어보면 머리부터 절레절레 흔든다. 속으로 생각하곤 한다. '네 결혼은 꼭 바라는 것은 아닌데, 손주는 보고 싶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


베트남에서 직원의 결혼식과 지인분의 결혼식에 참석해 보았다. 현대식 식장에서 진행하는 결혼식도 참석해 보고, 시골 처갓집에서 진행하는 결혼식도 가보았지만, 내겐 현지에서 진행된 결혼식이 더 인상적인 것 같다. 물론 두 결혼식 모두 한국처럼 짜인 형식에 맞춰 의전행사를 하는 것과 같은 딱딱함이 없이 자유롭다. 시간도 한 시간이 늦건, 30분을 빠르게 오건 그냥 있는 사람들끼리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해 주며 즐긴다. '청첩장에 적혀 있는 시간에서 한 시간 정도 뒤에 가면 좋다'라고 한국 사람들끼리 말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외부적으로 보이는 예식과는 달리, 한국의 결혼문화와 다른 점들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베트남에서는 전통적으로 결혼식 비용을 신랑 측이 대부분 부담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한국 남성분이 베트남 여성분과 결혼하면 모든 비용을 다 지불해서 '돈 주고 사 온다'는 부정적 느낌을 갖는 경우도 있는데 이건 베트남에서 사실이다(뒤에 다시 설명하도록 하겠다). 한국 남성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신랑 측이 일부 비용을 부담하지만, 신부 측도 집이나 혼수 등에서 일정 부분을 준비하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베트남에서는 신랑 측이 전반적인 결혼 준비를 더 많이 책임지는 경향이 있다.


둘째, 베트남 결혼식은 한국보다 복잡하고 긴 여정이다. 보통 사흘에 걸쳐 진행되며, 전통적인 절차에 따라 신랑 측이 신부 측 집으로 가서 신부를 맞이하고, 결혼식을 올린 뒤 다시 신랑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거친다. 결혼식에서 가족들의 전통 의식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결혼식 전에 신랑 측이 신부 측 부모님께 결혼 허락을 받는 '레 티잉'(Lễ Thỉnh)이라는 의식도 있다.

레 티잉 의식은 베트남 전통 결혼 의식 중 하나로, 신랑이 결혼 전에 신부 가족에게 결혼 승낙을 공식적으로 요청하는 중요한 절차이다. 이 의식은 결혼 준비의 시작을 알리며, 양가 가족 간의 상호 존중을 보여주는 전통적인 관습이며, 이 의식을 통해 신랑 측이 결혼을 정식으로 요청하고, 신부 가족이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두 가정이 결혼을 인정하는 과정이 되는 것이다.

결국 이 의식은 베트남의 결혼 문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결혼이 단순히 두 사람 간의 결합이 아닌, 두 가문 간의 연결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결혼이 가족 간의 중요한 사회적 계약임을 강조하며, 두 가문이 함께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신랑과 신부의 존중과 책임감을 나타내는 전통인 것이다.


셋째, 한국에서 조선 후기 이후 '출가외인'이라 하여 신부에겐 결혼 후에 친정과는 헤어진 삶을 강요받았다. 하지만 베트남에서는 결혼 후에도 신부 측 가족과의 관계가 중요하게 여긴다. 결혼 후에도 신부 측 가족을 자주 방문하고, 특별한 날에는 신부의 가족에게 선물을 전달하거나 인사를 드리는 등 신부 가족에 대한 존중이 강조된다. 이러한 문화는 베트남의 전통적인 모계사회 성향과도 관련이 있다.

결혼 후 역할 분담에 있어서도 여성의 책무는 한국에 비하면 많이 줄어 둔다. 베트남에서는 결혼 후에도 여성이 집안일을 책임지고, 남성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이 전통적인 역할로 여겨져 왔다. 최근에는 남성과 여성이 함께 경제활동을 하고 가사를 분담하는 현대적인 결혼관이 점점 더 보편화되고 있는데 이 점은 나를 포함한, 한국의 기성세대 남편들이 가졌던 권력과 파워(?)를 모두 부정하는 것들이다.


넷째, 베트남에서는 결혼식 때 신랑 측이 신부 측에 금전적인 지참금을 주는 문화가 있다. 이 지참금은 결혼을 축하하는 의미로 주어지며, 신부의 가족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제공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이러한 지참금 문화는 거의 없지만, 베트남에서는 중요한 전통으로 간주된다. 결혼 지참금이나 기타 결혼 관련 금전적 교환은 과거 농경사회에서 가족 간의 노동력 교환이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보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런 전통은 한국의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고구려의 데릴사위제나 부여의 민며느리제가 그것이다. 농경사회에서 가족 단위는 중요한 경제 단위였고, 가족의 노동력이 매우 중요한 자산이니다. 결혼을 통해 신부는 자신의 가정을 떠나 신랑의 집안으로 합류하게 되는데, 이는 신부의 가족에게는 중요한 노동력을 잃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신랑 측에서 신부 측에 제공하는 지참금이나 결혼 비용은 신부 가족에게서 잃게 되는 노동력에 대한 일종의 보상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고구려에서는 결혼 후에도 일정 기간 동안 남성이 신부의 집에서 거주하며, 신부의 가족을 돕는 제도인 데릴사위제가 있었다. 이는 신부 측 가족이 결혼을 통해 노동력을 잃지 않도록 보호하는 장치였으며, 결혼을 통해 새로운 가정이 형성되기 전까지 신부의 가족에게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남성은 일정 기간 신부의 가정에서 생활하며 노동에 기여하다가, 이후 자신의 가정을 꾸리게 되는 것이다.

부여의 민며느리제는 결혼 전 신부가 신랑의 집에 먼저 와서 일정 기간 생활하는 제도로, 신부가 신랑의 가족과 함께 생활하며 결혼 준비를 한다. 이 제도는 신부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기간을 통해 가족 간의 경제적 역할이 균형을 이루도록 돕는 기능을 했다. 이 역시 경제적 교환이 결혼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결혼 지참금 제도는 농경사회의 경제적 필요성과 노동력 교환의 의미에서 비롯되었으며, 고구려와 부여의 제도들처럼 결혼을 통해 가족 간의 경제적 관계가 정리되고, 그 안에서 노동력과 자산의 교환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다섯째, 베트남 결혼식은 대규모로 치러지는 경우가 많으며, 마을이나 공동체 내에서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한국의 전통적인 결혼식에서도 볼 수 있었지만, 베트남에서는 결혼식이 마을 전체의 큰 축제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요소들은 베트남과 한국의 결혼 문화에서 나타나는 주요 차이점들이며, 특히 베트남의 전통적인 가족 중심 문화와 관련이 깊으며, 모계사회 중심의 관습과 문화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겠다.


한국에 시집을 온 여성이 서러운 이유도 조금은 이해가 가고, 거꾸로 한국 신랑이 베트남에 와서 친정을 수시로 방문하면서 느끼는 문화적 갈등이 이해가 되곤 한다.

'로마에선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과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라는 속담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문화차이'란 참 어렵고 극복하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또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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