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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여성 지위와 남아 선호사상의 상호작용

여성의 힘이 강한 나라, 그러나 여전히 남아 선호가 존재하는 현실

by 한정호

베트남은 전통적으로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은 국가 중 하나로 평가된다. 베트남 여성들은 역사적으로 경제 활동과 가정 내 의사 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으며, 과거부터 농업과 상업, 심지어 정치 분야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또한, 여성 영웅들이 국가 독립운동과 전쟁에서 활약한 사례가 많아, 여성의 능력과 사회적 기여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인 편이다.


베트남의 대표적인 여성 독립운동가와 전쟁 영웅으로는 쯩 자매(Trưng Sisters)와 보 티 사우( Võ Thị Sáu)가 있다. 쯩 자매는 1세기 초 중국 한나라의 지배에 맞서 싸우며 독립을 위해 봉기한 인물들로, 베트남 역사에서 중요한 여성 지도자로 평가된다. 보 티 사우는 프랑스 식민 통치에 저항한 독립운동가로, 용기와 희생정신의 상징이 되었다. 이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베트남의 여러 도시에 이들의 이름을 딴 거리와 학교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호찌민시와 하노이에는 ‘쯩 부 자매 거리(Đường Hai Bà Trưng)’가 있으며, 보 티 사우의 이름을 딴 ‘보 티 사우 거리(Đường Võ Thị Sáu)’도 존재하여, 이들이 국가적 영웅으로 존경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응우옌 티 딘은 베트남 전쟁 당시 남베트남 해방군의 지도자로 활약한 여성으로, 베트남에서 여성 군 지도자로서의 상징적 존재가 되었다. 하노이와 호찌민시에는 그녀의 이름을 딴 거리와 학교가 있으며, 이는 베트남에서 여성 지도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그러나 베트남 사회에는 여전히 유교적 전통이 남아 있어, 남아 선호사상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유교의 영향으로 가문의 계승과 제사를 잇는 역할이 남성에게 주어졌으며, 이에 따라 아들을 선호하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특히, 농촌 지역에서는 아들이 가문을 잇고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 성비 불균형 문제를 초래하기도 했다. 또한, 상속 문제에서도 남성이 우선적으로 재산을 물려받는 경우가 많아 여성의 경제적 독립이 제한되는 경우가 있다.


베트남에서 남아 선호 사상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구체적인 증거들을 찾아보면,

1. 출생 성비 불균형 : 정상적인 출생 성비는 여아 100명당 남아 105명 정도이지만, 베트남에서는 2020년 기준 여아 100명당 남아 111~115명으로 보고되었다. 이는 남아 선호로 인해 성비 불균형이 심화되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농촌 지역에서는 초음파 검사 후 여아를 선택적으로 낙태하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2. 상속 및 재산 분배 차별 : 법적으로는 남녀 평등한 상속권이 보장되지만, 많은 가정에서 남성이 우선적으로 재산을 상속받고 있으며, 특히 부모의 재산이 주택이나 농지인 경우, 남성(특히 장남)이 상속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3. 결혼 및 가족 구조에서의 불평등 : 결혼 후 여성이 남성의 집으로 들어가는 ‘가부장적 가족 구조’가 일반적이며, 여성은 시부모를 돌보는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반면 남성은 자신의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다.

4. 취업 및 임금 격차 :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율은 높지만, 일부 직종에서는 여전히 남성이 우선적으로 채용됨. 2022년 기준으로 베트남 여성의 평균임금은 남성의 약 85~90% 수준으로 보고되었다.

5. 사회적 인식과 교육 기회 차이 : 일부 지역에서는 남아를 교육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여전히 존재하며, 농촌 지역에서는 여성이 중등 교육 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는 조기 결혼과 연결되기도 한다.


베트남의 기업 및 공직 내 여성 임원 비율 또한 성별 격차를 보여준다. 2023년 기준 베트남 기업의 여성 고위 임원 비율은 33%로, 세계 평균인 29%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또한, 베트남 기업의 95%는 최소 한 명 이상의 여성 고위 임원을 두고 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하자면, 태국의 여성 임원 비율은 32%로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이며, 말레이시아는 2017년 기준 이사회 내 여성 임원 비율이 16.6%로 나타났다. 싱가포르는 2023년 기준 상위 100대 상장기업의 여성 이사 비율이 23.7%로 증가했다. 반면, 한국의 경우 2023년 기준 100대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약 5%에 불과하며, 2021년 1분기 기준으로 상장법인 2,246개의 전체 임원 32,005명 중 여성은 1,668명(5.2%)에 그쳤다.


베트남 2023년 기준 국회 여성 의원 비율이 약 30%로, 동남아시아 평균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014년 기준 아시아 지역의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18.4%였다. 한국의 경우, 2024년 1월 기준으로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19.2%로, 전체 300명 중 57명이 여성 의원이다. 이는 OECD 가입국 38개국 중 36위에 해당하며, 전 세계 평균인 26.5%보다 낮은 수준이다.

이는 베트남 정부가 법적 성평등 강화와 함께 여성의 정치 참여를 확대하려는 정책적 노력이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남성이 정책 결정의 핵심 역할을 맡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베트남 사회에서 여성의 경제적 기여도가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사결정권이 남성 중심으로 유지되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베트남은 동남아시아 국가들 중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은 국가이지만, 유교적 전통의 영향으로 남성 선호사상이 여전히 강하게 자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전통적 가치관과 현대적 성평등 의식이 충돌하면서 사회적 내적 갈등이 존재한다. 경제적·정치적·사회적 분야에서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한 양적 성장뿐만 아니라, 여성의 정책 결정 참여 확대, 기업 내 성별 격차 해소를 위한 법적 개혁, 사회 인식 개선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확대 등의 실질적인 질적 변화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점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된다. 한국 역시 유교적 전통 속에서 남성 중심의 가족 구조와 상속 문화가 강하게 남아 있으며, 여성의 경제·정치적 참여율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특히 여성의 경력 단절 문제, 기업 내 성별 격차, 정치권에서의 여성 대표성 부족 등은 베트남과 유사한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한국은 베트남과 비교하여 경제적 발전 수준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성평등 지수에서는 여전히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따라서 여성의 실질적인 지위 향상을 위해 법적 개혁뿐만 아니라 사회적 인식의 변화와 지속적인 정책적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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