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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는 남쪽에서, 정유는 북쪽에서

베트남 석유 산업의 구조적 아이러니

by 한정호

베트남은 남중국해(동해) 해역에 풍부한 석유 자원을 보유한 산유국이다. 특히 붕따우(Vũng Tàu) 인근 해상은 오랜 기간 베트남 석유 산업의 심장부로 기능해 왔다. 박 호(Bạch Hổ), 띠 작 짱(Tê Giác Trắng), 랑 동(Rạng Đông)과 같은 유전들은 바로 이 해상에 위치해 있으며, 이 지역은 수십 년 동안 베트남 경제에 막대한 외화를 가져다주는 자원 수출 기지였다.

그런데 정작 정유공장은 멀리 떨어진 중부(둥꿧)와 북부(응이선)에 있다. 이처럼 원유를 생산하는 주요 해역은 남부에 집중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의 주요 정유시설은 중부와 북부에 위치해 있다. 더 이상한 건, 그 정유공장들이 베트남산 원유가 아니라 외국에서 들여온 원유를 쓰고 있다는 점이다.


솔직히 필자는 이 부분에 전문가도 아니기에 더 궁금해 졌다.

'석유가 나오는 나라에서, 왜 정유소도 있으면서 그 석유는 수출하고, 또 다른 나라에서 원유를 사 와서 정제할까?' '돈을 벌 기회를 스스로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석유는 붕따우에서 캐지만, 정제는 꽝응아이와 탄호아에서 한다. 현재 베트남에는 두 개의 핵심 정유공장이 있다.

- 둥꿧 정유공장 (Dung Quất Refinery)

위치 : 중부 꽝응아이성

운영 : 국영 Petrovietnam 계열사인 Binh Son Refining

특징 : 국산 원유(백호 등)를 정제하도록 설계됨.

- 응이선 정유공장 (Nghi Sơn Refinery)

위치 : 북부 탄호아성

운영 : 베트남-쿠웨이트-일본 합작회사

특징 : 쿠웨이트산 수입 원유 정제에 특화


남부 해역에서 생산된 원유는 오히려 국내 정유를 거치지 않고 외국으로 수출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국내 정유공장들은 대부분 해외에서 들여온 수입 원유를 정제해 제품화하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구조가 되었을까?

이 아이러니한 구조에는 몇 가지 배경이 있다:


1. 정치적 고려와 지역 균형 개발 정책

둥꿧 정유공장은 원래 붕따우 인근에 세워질 계획이었지만, 당시 정치권과 지역 균형 개발 논리에 따라 중부 지역으로 이전되었다. 이는 단순한 산업 입지 선정이 아니라, 중앙정부의 의도적 배분 정책이 작용한 결과였다.

2. 정유 설비의 기술적 한계

둥꿧 정유소는 국내산 원유를 처리하는 데는 적합하지만, 다양한 정제 제품을 생산하기엔 한계가 있다. 이에 따라 고도화된 정제 설비를 갖춘 응이선 정유소가 수입 원유를 처리하고 있다.

3. 국제 원유 시장과의 가격 차익

베트남산 경질 원유는 해외 시장에서 높은 가격에 판매할 수 있다. 반면, 수입 원유(중질유)는 비교적 저렴하게 도입할 수 있어 수출은 하고 수입은 정제하는 구조가 비용 면에서 유리한 경우도 있다.


석유 산업은 베트남의 산업화를 이끈 자금줄 역할을 해왔고, 여전히 국가 GDP의 주요 기여원이다. 하지만, 베트남은 고품질 경질유를 생산하는 산유국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정제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설비나 기술은 부족한 상황이다. 그래서 정유는 제한적으로만 이루어지고, 대부분의 국내산 원유는 외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한편, 수입 원유는 정유소 설비에 맞는 성분의 원유(주로 중질유)를 중심으로 들여와 정제해 내수용 연료나 산업용 제품으로 사용되고 있다.

기술력의 한계, 정치적 의사결정, 국제 시장과의 가격 구조 등 여러 요소가 얽힌 이 구조는 단순히 ‘비효율’이라고만 말하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자원이 있음에도 그 혜택을 끝까지 가져가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2000년대 초, 베트남엔 정유공장조차 없었고, '가난한 산유국'이라는 말이 실감나던 시절이 있었다. 2008년, 첫 정유소가 생기긴 했지만 여전히 그 기술은 부족하다. 과거 한국 기업이 정유소 건설을 추진했다는 이야기도 들은 기억이 있다. '국가 기간산업을 외국에 넘길 수 없다'는 논리로 무산되었다는 뒷이야기까지. (사실 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현실과 맞물려 떠오르는 이야기다.)


한편, 대한민국은 단 한 방울의 원유도 나지 않는 나라임에도 정유 기술 하나로 세계 시장에서 우뚝 선 국가가 되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 비결이 궁금해지는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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