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강했습니다
한동일 변호사의 <라틴어 수업>을 읽고서
지난 몇 주간 한동일 변호사님의 <라틴어 수업>을 읽었다.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한 변호사님의 목소리가 떠오를 정도로 변호사님과 정서적으로 가까워졌다(어느 사람을 떠올리는 제1의 신호로 나는 종종 목소리를 꼽는데, 간혹 만나보지도 못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물론 그 경우, 직접 들어본 목소리가 내가 상상한 목소리와 다를 때가 대부분이지만, 상상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건 내가 그만큼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신호 중의 신호다). 변호사님의 책을 읽는 건 변호사님을 교수님으로 모신 라틴어 교양 강좌를 수강하는 것과도 같았다. 그런 의미에서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어제는 라틴어 수업의 종강일이었다.
한 변호사님은 '라틴어의 오랜 역사를 닮으신 분이 아니실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세월과 역사 앞에서의 인간은 때로는 허망함과 덧없음으로 때로는 경외감과 감탄으로 한없이 겸손해지기 마련인데, 변호사님의 문장과 메시지가 배움 앞에 선 인간의 겸손한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기가 오랜 시간을 들여 공부한 것들을 닮는다'라는 나의 생각에 한 변호사님께서 이렇게 또 힘을 실어주신다.
언어는 용량 제한이 없는 큰 광주리와 같아서 언어 사용자들의 가치관과 생활양식이 고스란히 그리고 끊임없이 담기기 마련이다. 그런 광주리의 내용물을 하나씩 꺼내서 이야기로 엮어내는 작업이 쉬운 작업은 아니었을 텐데 한 변호사님은 이를 라틴어 문장들과 함께 차분히 설명해 주셨다. 책에 수없이 많은 밑줄을 쳤다. 그 내용들을 하나씩 되짚어볼 수도 있겠지만, 책을 덮고서도 생각나는 몇 지점들만을 아래 적어두려고 한다.
- 제 아무리 편지를 쓸 당시에는 현재 진행형인 사건도 편지의 수신인이 받아보았을 때는 과거가 되어 있다. 모두가 알고서도 무시하곤 하는 이 사실을 로마인들은 굳이 고려하고서 '서간체 시제'라는 말이 등장할 만큼 편지 위에서 다른 시간 개념을 사용했다고 한다. 얼마나 듣는 이를 배려하고 안부를 나누는 사람을 존중했으면 그런 언어 습관을 들인 걸까. 이웃 사랑의 흔적이 편지 한 장에 빼곡히 담겨 있다.
- '모든 동물은 성교 후에 우울하다'라는 속담은 절실히 바라고 열중하던 것을 이루고 난 뒤의 감정이 허무함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그 허무함은 놀랍게도 신과 종교를 찾게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는데, 이 모든 과정의 이유로 저자는 인간이 이성적 존재이기 전에 영적인 존재라는 점을 적고 있다.
- 인간은 영원으로부터 와서 유한을 살다 다시 영원으로 돌아가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영원을 사는 것처럼 오늘을 산다. 그런데 또 아이러니하게도 오늘을 산다고 하는 내내 꽤나 많은 시간을 과거에 사로잡혀 보낸다.
- 한 개인이 윤리적으로 살려고 몸부림을 치더라도 사회 구조가 이를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 미래 세대를 생각하자만 이런 사회를 그대로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주장이 뒤를 잇는다. 지금의 나는 이른바 미래 세대(의 일부로 그루핑(grouping)을 당하곤 하여서 그에 관한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당장 내 일이기도 한 문제이니까 더더욱 관심이 가는 주제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내가 미래 세대에 속하지 않는 때가 되더라도 미래 세대 교육과 사회 구조 개혁에 대해 관심을 놓지 않을 수 있을까. 성숙한 어른의 모습 중에는 이처럼 '잘 늙는 것'을 빼놓을 수 없다.
- 이 책의 모든 메시지들은 하나같이 사랑이라는 이름의 도착지를 향해 걸어간다. 이런 맥락에서 매 챕터는 사랑으로 향하는 순례자의 발걸음 같달까. 한계와 고난 등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면서' 공부하고 인생을 마주하고 자신의 존재를 격려하라는 메시지가 책의 분위기를 결정짓는다. 매일의 한계치를 갖고 있는 우리들을 해방시켜 줄 최고의 힘은 역시나, 사랑이다.
Si vales bene est, ego valeo.
당신이 잘 계신다면, 잘 되었네요. 나는 잘 지냅니다.
로마인들의 삶과 말, 그리고 그들을 공부한 한 변호사님으로부터,
한국의 어느 한 독자가 2020년 11월 22일에 씀.
올해 스물네 권. <라틴어 수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