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전시 및 큐레이션, 코로나 위기 중 다시금 심판대에 오르나
정기적으로 매거진 리더십 코리아에 글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때마침 편집장님의 허락 하에 해당 글의 전문을 브런치에도 옮겨 둘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래 글은 매거진 리더십 코리아의 2020년 6월호에 실린 기사로 원문 링크의 출저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www.klschool.co.kr/mag2.php?mode=view&bid=549&page=1
오디세우스가 항해를 떠나는 한편, 자신의 이름을 ‘이슈마엘이라고 해두자’ 던 한 남자가 바다에서 살아 돌아왔다. ‘꽃청춘’이라는 명분 하에 한국에서 조금은 유명하다 하는 젊은이 넷이 짐 꾸러미 하나 챙기지 못하고 아이슬란드행 비행기에 냅다 올랐고, 옆 동네 친구 L은 공휴일 사이에 낀 샌드위치 일자를 휴가로 바꾸고 나서는 인천공항으로 캐리어를 끌었다. 고대 그리스 때부터 지금까지, 어디론가로 훌쩍 떠나버리곤 하는 이 움직임은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꾸준히 지속되어 왔고, 꽤나 사랑받아 왔다. 지난해 큰 인기몰이를 했던 에세이 <여행의 이유>에서 김영하 작가가 적고 있듯이, 역사적으로 보든 심리적으로 보든, 어쩌면 인간은 수고를 들여서라도 여행하고자 하는 존재가 아닐까.
코로나 위기는 개인과 사회 공동체, 국가가 얼마나 촘촘히 얽히고설켜 있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론적으로만 접했던 ‘초연결 사회’라는 개념은 확진자의 이동 경로를 비롯한 역학 조사를 하는 과정 중에서 더 확실히 이해됐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각 국가들이 세계화가 완연히 진행된 이 시점에도 국경을 걸어 잠그고 여행을 비롯한 사람들의 이동을 통제했지만, ‘우리가 얼마나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었는가!’ 하는 감각은 더더욱 또렷해졌다. ‘여행하는 자’나 다름없는 사람들에게는 심각한 일이었다. 그런데 웬걸, 전화위복이라고 했던가! 전 세계 각지의 유명 문화예술기관들과 각 나라의 관광청에서 자유롭게 여행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로 인해 ‘코로나 블루’를 경험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색다른 서비스를 제안했다. 이전에는 오프라인으로만 생생히 경험할 수 있었던 전시와 공연 그리고 관광이 온라인 상에서 ‘(비대면) 인터넷 전시 및 큐레이션(e-exhibition & e-curation)’이라는 타이틀 하에 평상시처럼 진행되기 시작한 것이다.
해당 서비스를 시작한 계기는 각 기관마다 달랐지만, 전반적으로 연대와 응원의 메시지를 담아 해당 서비스를 시작한 경우가 많았다.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느라 이동을 최소화하면서까지 자기 자신과 남들을 배려하는 행동을 보여주는 문화인들과 여행가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는 ‘집안/실내(indoor) 문화 경험’을 선물해 주고 싶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관련 서비스를 좀처럼 무료로 공개하지 않던 콧대 높은 문화예술기관들(베를린 필하모니,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 등)도 온라인 문화 서비스에 동참했고, 그러자 응원의 메시지에는 더더욱 힘이 실렸다. 덕분에 거실의 소파 한편에서 파리의 어느 미술관을 찾아 전시를 관람하다가도, 클릭 한 번으로 영국의 극장에서 상영하는 연극 <햄릿>의 실황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온라인으로 즐기는 문화생활은 과연 어떨까. 오르세 미술관의 온라인 전시를 직접 경험해보았다(1). ‘자가격리/봉쇄 기간 동안, 매일 오르세의 아름다운 풍경 하나를(Chaque jour durant le confinement, l’un des plus beaux paysages d’Orsay)!’ 코로나 위기로 미술관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기자, 코로나 대응을 위한 연대의 캠페인이라도 벌이는 듯, 오르세 미술관은 위 문장을 시작으로 소장작품들의 큐레이션 시리즈를 선보였다. 붐비는 관광객들 사이에선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던 작품들에 도슨트의 친절한 설명이 프랑스어뿐만 아니라 영어로도 뒤따라왔고, 가상 전시실의 관객이 된 나는 미술관 현장에서는 좀처럼 들을 수 없던 (동료) 관객들의 감상평까지 댓글로 확인해가며 훨씬 더 풍부한 문화 체험을 할 수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온라인 전시/큐레이션 서비스들이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며, 심지어 꽤 오랫동안 관련 업계 종사자들과 문화예술 분야 학자들로부터 ‘미래의 문화예술산업’의 모습으로는 오답 취급을 받아왔었다는 것이다. 온라인 전시/큐레이션 서비스를 운영할 기술적 기반과 아이디어는 충분했다. 하지만 ‘여행하는 자’라는 사람들의 정체성이 해당 서비스 운영을 가장 크게 방해했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이 가장 보고 싶어 한다는 명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로 예를 들어보자. <모나리자>의 전시관은 정신없기 그지없다. 그림은 예상외로 작은데, 보안상의 이유로 액자 위에 유리가 덮여 있고, 그림 가까이로는 진입을 금하는 관람선이 쳐져 있으며, 그 주변에는 카메라를 들이대는 관람객들이 우르르 몰려 있다. 현장 분위기만으로는 <모나리자>의 미소가 정말로 인자한지, 다빈치 특유의 섬세한 그림체가 어떤 식으로 연출이 되어있는지 좀처럼 가늠하기 힘들다. 한편, 온라인 전시실의 상황은 정반대였다. 온라인 전시 및 큐레이션 서비스를 이용하면 <모나리자>의 세세한 부분들을 고화질 확대 기능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그림과 관련된 설명 또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파리까지 굳이 가지 않더라도 검색어 입력과 클릭 몇 번만으로 유명한 회화 작품을 눈 앞에서 면밀히 분석 가능하며, 작품의 새로운 연출을 경험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모나리자> 앞은 여전히 붐볐다. 사람들은 해마다 어딘가를 향해 그렇게들 비행기에 올랐고, 여행지에서 자신의 일부를 되찾고 나서는 일상을 살아낼 동기 또는 에너지를 얻어서 돌아왔다. 인터넷으로 보는 전시와 유튜브로 보는 연극에서는 드러나지 못하던 것들, 결코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 온라인 전시 및 큐레이션 서비스의 발목을 잡았다. 이를테면 도슨트의 목소리를 울리게 만드는 전시관의 높은 천장과 그로부터 형성되는 공간감(그리고 그 공간감에 압도되고 나서야 느낄 수 있는 경외감)이나, 연극 도중 관객을 향해 익살스러운 대사를 던진 배우와 교감이라도 하는 듯 던져 보는 환호성과 박수는 온라인 상에서 절대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모나리자>를 보러 가기까지, 그리고 보고 난 이후의 에피소드들 중에, (-그러니까, 여행 중 걷다가, 멈춰 섰다가, 고개를 위로 젖히기도 했다가, 눈을 찌푸리기도 했다가, 하는 중에-) 오로지 여행이라는 ‘직접 경험’을 통해서만 채워지는 것들이 있었다. 제아무리 고화질로 회화 작품과 연극 실황을 감상 한다한들, e-관객들(온라인 전시/큐레이션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마음 한편에는 허전함이 남을 수밖에 없던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사람들이 수고를 들여서라도 여행을 하려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지 않았을까. 이런 짐작을 지지하기라도 하려는 듯, 한국리서치에서 실시한 코로나 인식조사 시리즈에서는 ‘‘코로나 위기로 여행이 줄어들었지만, 위기가 사그라진 다음에는 이전처럼 여행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라는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2).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덕분인지, 코로나 탓인지) 문화예술계는 온라인 전시 및 공연 연출을 다시 한번 심판대에 올려 보기로 했다. 기존의 관행, 비판대로라면, 코로나 위기 후에도 <모나리자> 앞은 다시 예전처럼 붐빌 것이다. 문화예술계의 재도전에도 불구하고, 위기 이후의 사람들은 본연의 옷(여행자의 옷)을 입고서 초연결 사회를 입증이라도 하듯 또다시 짐을 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위기가 장기화됨에 따라 온라인 전시 및 공연 기획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수도 있다. 혹여나 위기 중에 발이 묶인 여행자들이 온라인 전시 및 공연으로부터 조금의 위로라도 받는다면, 포스트 코로나(Post-COVID-19) 땐 <모나리자>를 모니터로 접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수도 있지 않을까? 불확실의 연속인 코로나 위기 중,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은 물론, 어쩌면 의지, 본능까지도 바뀌고 있을지도 모른다.
(1) 오르세 미술관 온라인 전시 체험하기 링크: https://www.musee-orsay.fr/fr/collections/oeuvres-commentees/accueil.html
(2) 한국리서치 정기조사 여론 속의 여론 코로나에 관한 인식조사 시리즈: https://hrcopinion.co.kr/archives/15498?fbclid=IwAR1QHlr5iPiGnUTaQoFq851sx7aXSMtESDJT41wMRw6ZnShkZAZdqcDW_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