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저널리즘의 <다시, 을지로> 서평
정기적으로 매거진 리더십 코리아에 글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편집장님의 허락 하에 해당 글의 전문을 브런치에도 옮겨 둘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래 글은 매거진 리더십 코리아의 2020년 8월호에 실린 기사로 원문 링크의 출저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www.klschool.co.kr/mag1.php?mode=view&bid=560&page=1
오전 아홉 시 전부터 각양각색의 조명들이 불을 밝히고, 갖은 금속 자재와 인테리어 혹은 예술작품의 원자재가 도로 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곳. 삼륜차, 일명 ‘삼발이’가 좁은 골목길을 누비며 인쇄물을 나르고, 건물과 건물을 잇는 평평한 공중 다리 위에서 청계천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 서울의 동서남북 어디로든지 쉽게 이동이 가능해 이른바 대도시의 ‘노른자 땅’으로 불리는 곳, 바로 을지로다. 을지로는 최근 들어 ‘힙지로’라는 애칭과 단독 해쉬태그를 만들어내며 젊은이들의 관심을 사고 있다. 무엇이 을지로를 힙하게 만들었을까, 그에 앞서, 과연 을지로는 힙한 곳일까.
북저널리즘에서 출간한 <다시, 을지로>는 을지로를 비단 ‘힙지로’로만 소개하지 않는다. 사회학 전공자인 저자 김미경은 을지로를 ‘서울의 오래됨’과 ‘서울의 미래’가 한 데 합쳐진 곳으로 설명한다. 또한 을지로를 기술과 문화예술이 만나, ‘한국 근대화 및 발전에 관한 상반된 주장이 조화를 이루는 장소’이자 ‘세대간 취향을 만들어가는 장소’*로서 재조명하려고 한다. 저자는 끊임없이 을지로에 대한 해시태그가 힙지로만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을지로를 트렌드의 일부로만 해석해 버리면 그곳이 담고 있는 역사와 정신에 큰 실례를 범하는 모양새가 된다고 이야기한다.
한국 근현대사가 끊임없이 ‘고속 성장’과 ‘효율’을 외쳐오는 바람에, ‘더 빨리, 더 높게, 더 많이’와도 같은 외침은 수도 서울을 개발하는 과정에서도 고스란히 담겨왔다. 빼곡히 들어선 고층빌딩 숲은 탁 트인 서울 하늘 대신 화려한 조명과 역동적인 스카이라인을 선보이기 시작했고, 한 때 역사의 현장이었던 곳들은 대도시의 보도블록이나 간판 등으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았다. 좌우를 둘러보아도 이 건물이 저 건물 같고 저 건물이 이 건물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서울의 거리들은 서로를 닮아갔다. 그런데 (다행히도) 을지로는 극한 경쟁 체제가 만들어낸 도시의 천편일률적인 개발 풍경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을지로는 서울의 예스러운 모습들, 어떻게 보면 ‘불편할 수도 있었을 그 모습들’을 끌어안으며, 역사가 어린 모습(미로처럼 구불구불 나있는 골목들과 일제 강점기 적산가옥을 비롯해 해방 이후 지어진 건물들이 위태위태하게 자리하고 있는 풍경 등)을 을지로를 오랫동안 지킨 제조업 장인들의 뚝심과 함께 지켜내고자 한 것이다. 무한 경쟁의 메시지와 (한 박자 쉬어가더라도) 오래된 것을 고집하려는 마음, 을지로의 매력은 바로 이 두 극단의 대립에서 비롯된다.
‘made in 을지로’ 자부심의 근간을 이루는 금속, 기계, 조명 공업의 ‘장인’들은 을지로를 찾는 청년들과 소통하며 지낸다. 이 청년들은 이른바 사회가 ‘성공했다’고 칭송하는 영웅적 성과보다는 스스로의 (문화예술적) 가치를 붙들기 위해 여러모로 다채로운 을지로를 찾았다. 비록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과 서울시의 비 일관적인 을지로 재개발 정책에 가끔 곤욕을 치르긴 하지만, 그들에게 을지로는 나만의 취향을 고집할 수 있는 갖은 재료들(금속, 전기 원자재들)과 을지로를 공유하면서 쌓아 나갈 수 있는 관계들(장인들과의 교류)이 가득한 곳인 셈이다. 재료와 관계로 얽히고설킨 을지로 청년들은 ‘필요에 의한 공간’을 넘어선 ‘취향의 공간’을 함께 만들어 간다.
을지로가 물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존속해 온 것은
이 작은 사회에 아직까지도 건강한 생태계가 작동한다는 방증이다.
- <다시, 을지로> 101쪽 분문 중에서 -
이처럼 을지로는 제조업 장인들과 문화예술가들, 그리고 청년들이 모여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어 가고 있는 복합 공간이다. 힙지로로만 부르기에는 다소 아쉬운, 다채로운 장소다. 혹 을지로 방문을 앞두고 ‘을지로 카페,’ ‘을지로 맛집’만을 검색하고 있었다면, ‘을지로 서울 미래 유산’ 혹은 ‘을지로 청년 전시 공간’, ‘을지로 건축 답사’를 검색해 좀 더 풍성한 여행 계획을 꾸려 보는 건 어떨까. 노가리를 뜯으며 영화 속 흔한 아버지들의 퇴근길 풍경을 직접 체험해보다가도,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미술 전공자의 첫 전시를 신입 큐레이터의 설명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곳. 종묘가 내려다보이는 세운 상가의 데크에 서있다가도 한국 최초 주상복합건물을 직접 걸으며 한국의 근대 건축사를 공부할 수도 있는 곳. 바로, 을지로다.
* 책에서 저자는 이를 사회학적으로 ‘가장 보통의 생존주의’ 어바니즘(urbanism)이라 소개한다.
[을지로 묵상 포인트 1]
흔히 ‘대세’라고 불리는 정치와 경제, 사회문화 등 각 분야의 트렌드에 을지로는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 다만 지금껏 지켜온 을지로만의 역사를 고집하면서, 그 역사를 젊은 사람들과 함께 써나가고 있을 뿐이다. 주변 환경과 사람들이 어디론가 쉴 새 없이 달려가더라도, 무분별한 재개발을 응당 반기지 않듯이, 을지로는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끊임없이 경쟁하고 달려가기만 하는 데 익숙해진 청년들에게 ‘정지’ 표지판을 들이민다. 잠시 멈춰 섰을 때에야 비로소 둘러보게 되는 을지로 풍경 중에는 갖은 원자재들이 가득하다. 그 원자재들이 지닌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묵상하다 보면, 진흙을 고르고 어루만지는 토기장이의 마음가짐을 얼핏 엿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을지로 묵상 포인트 2]
도시 계획/개발에 종종 뒤따라오는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는 지역 사회를 대하는 개인의 태도, 또는 개인을 대하는 지역 사회의 태도 간의 마찰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누군가에겐 이득인 도시 계획/개발이 누군가에겐 생존의 문제로 비침에 따라 주변은 금세 승자와 패자로 구분 지어지기도 한다. 다행히 을지로는 지역 사회를 지켜온 사람들을 잊지 않으면서, 을지로의 오랜 가치를 존중하는 청년들과 교류를 이어나간다. 이전부터 을지로에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이웃으로 지내온 사람들을 붙드는 것에서 더 나아가, 울타리 바깥의 사람들을 안으로 초대함으로써 이웃의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을지로가 ‘레트로’뿐만 아니라 ‘뉴트로’로도 주목받고 있다는 점은 결국 이웃 사랑의 범위를 확장해가고 있기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 한계를 짓지 않는다면 이웃 사랑의 범위는 점점 넓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