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시간'이 나에게 건넨 시선(2)
(*스포경고* 글의 내용이 '소년의 시간' 2화 내용 일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소년의 시간' 2화에서는 제이미가 체포된 이후,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경찰의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담당 형사인 베스컴 경위와 프랭크 경사는 제이미가 다니는 학교에 가서 학생들에게 협조를 구하며 살해 증거를 찾기 위해 심문을 하죠. 하지만 베스컴 경위는 아무 소득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학교엔 베스컴 경위의 아들도 재학 중이었고, 아빠와의 사이가 소원했던 아들이지만, 아빠에게 중요한 내용을 알려주죠.
"아빠, 잘 안될 거야. 아빠는 이해를 못 하고 있으니까"
아담은 아빠에게 10대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암호화된 커뮤니케이션(coded communication)'을 알려줍니다. 이 과정에서 사건의 진실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게 돼요. 사실, 청소년의 소통은 또래집단과 상호작용을 통해 사회성을 키우고 자아를 형성하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청소년들은 자신들만의 언어문화를 형성하고, 사회적 의미를 담은 청소년 단어를 사용하죠. 신조어, 줄임말, 은어, 비속어 등을 사용하거나 이모티콘 등에 의미를 부여하며 기호화하기도 합니다. 즉, 청소년들의 언어는 단순한 유행이나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그들의 심리적, 사회적 욕구를 반영하는 중요한 문화적 표현이죠.
문득, SNS가 등장한 이후에 이런 소통방식이 더욱 강화되었나?라는 생각을 해보면, 막상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다이얼 전화기부터 지금의 스마트폰까지 모든 통신 수단의 변화를 직접 경험해 본 세대인데요, 전화기를 쓰던 시절에도, 무선호출기를 쓰던 시절에도, 문자만 보내던 시절에도... 우리는 늘 새로운 방식으로 '암호화된 커뮤니케이션'을 해 왔던 것 같아요. 단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디지털 환경으로 인해 자아 개념을 조금 다르게 형성하는 것 같다는 것이죠.
선행연구들을 살펴보면, 디지털 환경은 청소년 자아 정체성 형성에 있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한편, 위기의 요인으로도 작용할 수 있습니다. 먼저, 긍정적인 측면을 살펴보면, 청소년들은 디지털 환경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자신의 관심사와 가치관을 자유롭게 탐색할 수 있습니다. SNS에서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공유하며,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타인과의 소통을 통해 자아를 발견하고 발전시킬 기회를 얻습니다. 또한, 공통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한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은 소속감을 높이고 사회적 지지 기반을 마련해 줍니다. 이처럼 다양한 디지털 경험은 청소년의 비판적 사고 능력 향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측면도 존재합니다. 온라인상의 익명성은 청소년의 자아 정체성에 혼란을 줄 수 있으며, SNS에서는 상대적 박탈감이나 열등감을 경험해 부정적인 자아 형성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더불어, 사이버 공간에서의 비난, 악성 댓글, 루머 등은 청소년을 사이버 폭력에 노출시키며, 이로 인해 우울감이나 불안 등 정서적 어려움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런 식의 자아형성 방식은 그들의 관계 맺기 방식에도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소년의 시간'을 보며 제가 관심 있게 본 부분이 바로 제이미를 둘러싼 SNS 내용들이었는데요, 요즘의 청소년들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여러 형태의 코드언어를 통해 더 은밀하고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이 부분을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 나눠보고 싶어요.
10대들이 사용하는 'SNS 은어' 즉, 암호화된 커뮤니케이션은 은밀하고 애매합니다. 직접적인 말보다 이모지, 밈, 줄임말 등을 통해 의사를 전달하고, 때로는 감정을 감추죠. 이러한 이유로 청소년은 자신이 행하고 있는 것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저 '모두가 하니까', '장난이니까', '웃자고 한 말이니까'라고 여기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분명하게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죠.
과거에도 청소년기의 반항은 어느 정도의 공격성과 부정성을 동반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청소년 문화는 과거의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방식과는 다르게 그 공격성과 폭력성이 '콘텐츠' 형태로 "가볍게" 소비되며 재생산된다는 특징을 보입니다. 이 지점을 두 가지 개념을 통해 이해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인지하지 못하는 무비판적 행위를 통해 쉬워지는 공격: 악의 평범성 (Banality of Evil)
한나 아렌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나치 전범인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Eichmann in Jerusalem)"이라는 책을 냅니다. 해당 책의 부제는'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였죠. 이 책에서는 아이히만이 재판과정을 기술하고 있는데, 아이히만은 몇 번의 질의응답에도 "나는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에 자신의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 여긴 적이 없는지 물었으나, "내가 잘못된 행동을 한 것이었다면 누군가는 나를 질책했겠지만, 아무도 나를 나무라는 사람은 없었다"라고 언급하기도 하죠. 한나 아렌트는 이 책을 통해 개인의 비판적 사고 없이, 체제에 순응하고 명령에 복종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거대한 악을 가능하게 하는지 지적합니다.
디지털 공간에서 일어나는 조롱과 혐오, 따돌림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자신의 행동을 비판적으로 살피지 않고, 폭력에 대해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누구나 손쉽게 폭력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죠. 여기에 청소년들의 집단적 문화는 이런 구조를 더욱 공고하게 합니다.
'소년의 시간' 2화에 등장하는 학생들은 거의 대부분 스마트폰 화면 속에 몰입해 있습니다. 그들은 SNS에서 끊임없이 '소통'하죠. 하지만 그들은 그 모든 것을 '소통'으로 인지할 뿐, 그 소통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그들에게 명백한 악의조차 없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무사유의 평범함' 속에서 누군가의 고통이 조용히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2. 무감각해지는 현실 인지에 따른 비자발적 공격: 타인의 고통 (Regarding the Pain of Others)
수전손택(Susan Sontag)의 "타인의 고통"이라는 저서를 통해 이미지로 전달되는 고통이 우리의 감각을 무뎌지게 만든다고 지적합니다. 그녀는 이 책에서 전쟁의 참상을 전하는 사진을 예로 들며, 참혹한 현실의 장면은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도록 하지만, 우리를 감동시키기는커녕 오히려 피로감을 키우고 결국 고통을 '이미지'로 소비하며 공감의 깊이를 얕게 만든다고 지적합니다.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것이죠.
디지털 세상에서 타인의 고통은 스크롤로 넘기는 하나의 순간이 될 뿐입니다. 수전 손택이 이야기했던 "직접적이지 않은" 고통의 경험은 익명성과 물리적 거리감이 있는 디지털 공간에서 더욱 극대화될 수 있습니다.
'소년의 시간' 2화를 통해 케이티는 제이미와 전혀 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죠. 하지만 케이티는 SNS상에서 제이미를 은밀하게 공격합니다. 학생들은 '좋아요'를 누르며 이를 동의하죠.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관망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인스타 안에서 벌어진 일을 아빠인 베스컴 경위에게 설명하는 아담도 그중 한 명입니다. 물리적으로 닿지 않는 상황에서 타인의 고통은 잠시 스쳐가는 '이슈'가 될 뿐이며, 누군가가 고통받는다 하더라도 개개인은 이것에 윤리적 책임을 느끼지 않게 됩니다. 현실감 없는 타인의 고통은 더욱 쉽게 다뤄지고, 더욱 쉽게 소비될 수 있게 됩니다.
지금까지 디지털 공간 안에서 청소년들의 문화가 어떤 행태를 보이며, 그들이 폭력성을 가볍게 소비할 수 있는 이유를 이론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글을 작성하며 초점을 맞추고 싶었던 부분은 어른들은 모르는 아이들의 세상이 디지털 공간 안에서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지를 조금 더 세심하게 들여다보는 일이었습니다. 그곳은 단지 기술이 작동하는 공간이 아니라, 10대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밀어내고, 소속되며, 때로는 상처를 주고받는 복잡한 감정의 장이자 하나의 사회적 실험의 장이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이 보기에 가볍고 일시적으로 보이는 말 한마디, 이모티콘 하나가 그들 사이에서는 정체성과 관계를 구축하고 위태롭게 균형을 맞추는 사회적 신호가 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들의 언어와 관계 속에 숨어있는 정서와 갈등을 먼저 이해하려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디지털 공간 안에서 청소년들의 폭력성이 가볍게 다뤄지며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고 해서, 디지털 없는 세상으로 돌아가야 할까요? 과거 '러다이트 운동'처럼 기술을 파괴해야만 할까요?
디지털 기술 기반의 변화는 이제 역행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입니다. 현실을 부정하기보다는 이러한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속에서 어떻게 인간적인 관계를 회복하고 바람직한 인간성을 정립할 수 있는지 논의하는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고 봅니다. 현재 미국이나 유럽 등을 중심으로 청소년들의 SNS 활동을 금지하는 법안에 대한 논의가 있습니다. SNS 기업들도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한 여러 기술적 지원을 검토하고 도입하고 있죠. 하지만 법과 기술은 분명 일정한 한계를 지닙니다. 결국, 아이들 스스로 타인의 고통을 감각할 수 있고, 폭력을 비판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경험을 기르도록 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지금 가지 살펴본 이야기들이 청소년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어른들인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현상이라고 봅니다. 디지털 공간 안에서, 우리는 지금 어떤 태도로 타인과 관계를 맺고 있을까요? 어떤 기준에 따라 살고 있으며, 또 어떤 인간성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을까요?
이번 글은 '가볍게 소비되는 폭력성'에 초점을 맞춰 글을 썼지만, 사실 '소년의 시간' 2화에는 우리가 논의할만한 이야기가 정말 많았습니다. 부모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청소년, 무너진 교권과 학교라는 기관이 현시점에 갖는 의미, 가해자 중심의 문제 접근 방식 등, 시대의 변화 과정에 우리는 참 많은 것들을 끊임없이 논의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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