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시간'이 나에게 건넨 시선 (1)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의 시간'을 보았습니다.
13세 소년인 제이미는 같은 학교에 다니던 여학생을 살해한 혐을 받고 체포됩니다.
그리고 총 4편으로 구성된 이 드라마는 각각의 회차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한 가지의 이슈를 묵직하고 다각적으로 던집니다. 모든 회차가 생각할 문제를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밸런스 있게 다루고 있어서 너무 흥미로웠는데요, 그중에서 마지막 회차의 내용을 주제로 다뤄보고자 합니다.
4화는 제이미가 체포된 이후 13개월이 지난 이후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제이미의 아빠인 애디의 생일날, 가족들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생일을 축하하려 하죠. 하지만 그들에겐 예기치 않은 일들이 계속 일어납니다.
두 가지 이론으로 빌려와, 이 이야기를 풀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낙인 이론 (Stigma theory)
사회는 특정한 특성이나 행동을 가진 사람에게 낙인을 찍고, 이는 그 사람의 사회적 정체성을 오염된(spoiled identity) 것으로 만든다는 이론으로, 이 이론을 처음 주장한 어빙 고프만(Erving Goffman)은 세 가지 낙인 유형을 정의합니다. (1) 신체적 낙인으로 장애, 외모, 질병등으로 인한 낙인이죠. (2) 개인정 성격에 대한 낙인으로, 범죄 전력이 있거나, 정신 질환을 앓고 있거나, 중독 등의 어려움을 겪는 경우입니다. (3) 집단 소속에 따른 낙인으로, 인종, 성별, 종교 등에 따른 낙인이죠.
낙인이 찍히면, 개인은 수치심을 느끼게 됩니다. 고프만은 개인이 사회적 상황에 따라 여러 정체성을 연기(performance)한다고 보았는데, 낙인을 가진 사람은 정체성에 대한 연기를 방해받게 되죠. 결국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관계 맺는 게 어려워집니다.
낙인은 자신의 의지나 선택과 무관하게 철저하게 타인에 의해서, 외부로부터 찍히지만, 낙인이 찍히면 개인은 그 낙인을 내면화하게 됩니다. 자존감이 낮아지며 자기혐오, 고립 등으로 이어질 수 있죠.
낙인자들은 살아가기 위해 자신에게 낙인이 있음을 숨기려 하거나(정보통제, information control), 정상인인 척 행동하기도 하고(가면 쓰기, passing), 스스로를 부정하며 낙인을 정당화하려고 하거나(자기 낙인화, self-stigmatization), 적극적으로 자신의 낙인을 문제 삼고, 사회 구조를 비판하는 행동(저항과 거부, resistance &rejection)을 보인다고 합니다.
제이미의 가족들은 정보통제와 가면 쓰기를 모두 시도하고 있습니다. 사회와 이웃 들은 그들을 잠재적 공범자 혹은 방관자로 보는 듯해요. 특히 요즘과 같이 인터넷이 발달한 상황에서,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나를 알아본다면, 불특정 다수의 의견이나 판단이 어떻든 고립을 택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2. 도덕적 상처(Moral Injury)
도덕적 상처란, 사람이 자신의 도덕·윤리적 신념과 깊이 충돌하는 경험을 했을 때 생기는 심리적·영적 상처를 의미합니다. 본래는 전쟁에 참전했던 군인들의 상태 중, PTSD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고통을 임상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입니다. 이 개념을 처음 명시한 조나단 셰이(Jonathan shay)는 공포나 불안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죄책감이나 자기 파괴적 충동을 이 개념을 통해 설명하죠.
도덕적 상처의 핵심적인 감정들은 '내가 뭔가를 잘못했다'는 죄책감, '나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존재'라고 느끼는 수치심, '내가 믿었던 존재나 가치가 나를 저버렸다'는 배신감, '내 삶의 존재의 이유가 흔들린다'라고 느끼는 영적 고통입니다. 하지만, 단순한 감정 상태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에요. 예를 들어 특정 행동을 한 후에 행동을 후회하며 "내가 그 일을 하지 말았어야 했어"라고 느끼는 것은 단순한 죄책감이죠. 그렇지만, 도덕적 상채는 내가 그동안 믿고 살아왔던 세계, 나의 신념, 자아가 무너지는 경험이라고 합니다. 동일하게 죄책감이라는 감정 용어를 사용하지만, 감정적 요소와 심리적 반응이 전혀 다르다고 해요.
소년의 시간에 등장하는 제이미의 가족들은 조금씩 다른 반응을 보이긴 해도, 모두 도덕적 상처 반응을 보입니다. 제가 눈여겨보았던 것은, 제이미 엄마의 반응이었어요. 제 기준에서 제이미의 아빠는 자신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격정적인 감정들을 여가 없이 보여주는 듯합니다. 하지만 제이미의 엄마는 제이미에 대한 죄책감과 더불어 제이미 아빠에 대한 태도, 딸에 대한 모성 등이 다양하게 중첩되어 굉장히 미묘한 감정선이 흘러요. 개인적으로 매우 흥미로웠던 부분이었습니다.
미셸 푸코의 "광기의 탄생"이라는 책은 '광기'라는 것이 과학이 아닌 정치적인, 혹은 권력적인 이유로 규정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중세시대까지만 해도 광기는 신비롭고 자연적인 것으로, 미친 사람들은 '신의 목소리'를 듣는 사람이었죠. 하지만, 17세기부터 18세기 초, 사회는 광기를 가진 사람들을 병원이나 감옥등으로 격리하는 체계를 마련합니다. 과학적이고 의학적 차원에서의 치료가 목적이라기보다는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통제 수단으로 기능했죠. 푸코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결과라는 메시지를 줍니다.
동일한 맥락에서, 사회 내에 존재하는 여러 가치, 규범, 법, 질서 등은 절대적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자라온 환경을 떠올려봐도, 체벌이나 성 역할처럼, 한때는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지금은 용납되지 않는 경우가 많잖아요.
우리는 생각보다 너무 쉽게 타인에 대해 평가하고 프레임을 씌웁니다. 세대 간의 충돌이 일어나거나 최근 정치적으로 보이는 갈등, 연인 간 관계처럼 사소한 일상적 관계 속에서도, 개인이 갖고 있는 그 잣대와 기준은 꾀나 절대적인 듯합니다.
소년의 시간에서 처럼, 남겨진 사람들이 갖는 상처와 고통은 현재 진행형으로 존재합니다. 물론 저 역시 당사자처럼 느낄 수는 없어요. 하지만 그들이 살아내고 있는 매일의 침묵과 단절, 감정의 무게는 우리가 함께 바라봐야 할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안의 타인을 향한 프레임이 너무 단단한 것은 아닐까 돌아봅니다. 직접적이진 않아도 나도 모르게 '남겨진 사람'들을 무심코 외면한 것은 아닐까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덧,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각각의 에피소드가 컷 없이 원테이크로 만들어졌다고 하더군요. 여러 면에서 감탄이 나오는 드라마네요
[참고자료]
Goffman, E. (1963). Stigma: Notes on the management of spoiled identity. Prentice-Hall.
Shay, J. (1994). Achilles in Vietnam: Combat trauma and the undoing of character. Scribner.
Foucault, M. (2015). 광기의 역사 (이규현, Trans.). 나남출판. (Original work published 19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