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여행기
지난 주말엔 부산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사실, 부산은 이런저런 이유로 종종 방문했었지만 희한하게도 ‘여행 왔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게, 참 매력 없는 도시라고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이번엔 부산의 원도심만 돌아보자고 생각하고 원도심의 이곳저곳을 다녀 봤네요. 부산에 와서 처음으로 여행다운 여행을 하고 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사실 어린 시절부터 여행을 좋아하셨던 부모님 덕분에 이곳저곳을 참 많이 다녔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어릴 적부터 다녔던,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했던 가족 여행은 온통 부모님 취향에 한껏 맞춰져 있었더군요. 부모님은 자연을 벗 삼아 돌아다니길 좋아하셨습니다. 당연히 어느 지역을 가도 풍광이 좋고 자연 그 자체로 아름다운 곳들을 많이 다녔네요. 덕분에 심신 모두 건강한 중년이 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싶습니다만, 이러한 여행이 주는 단점은 도시의 살아 숨 쉬는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이겠죠.
이제 중년이 된 제 또래 친구들은 공감하겠지만, 우린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추억을 만들고 도시에서 저물어 갈 테지요. 그렇기에 자연을 벗 삼는 부모님 세대와 다르게, 도시가 우리들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공간이 아닐까 합니다.
이번에 다녀온 부산 여행이 기억에 남았던 것은 어쩌면 부산의 원도심을 이곳저곳 돌아봤기 때문인 듯합니다. 여기저기 구석구석 오래된 건물들 사이로 젊은 사람들의 감각이 한껏 담긴 커피숍, 편집샵, 디저트바, 술집, 식당들이 들어선 것을 보며 서울의 성수동이나 해방촌 등을 떠올리게 합니다. 어쩌면 이게 요즘 젊은 친구들의 감각에 맞는 새롭게 뜨는 도시 재생 방법이겠죠? 거기 중년 커플도 한껏 편승해 봅니다.
(사진 1, 2) 몽벨쉘터 전포카페거리점,(사진 3) 나이브브류어스, (사진 4) 스트럿커피, (사진 5) 초량 1941
부산의 원도심은 산비탈을 빼곡히 채운 집들과 그 사이사이 거미줄처럼 얽힌 좁고 정신없는 도로들이 특징이죠.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몰려와 터전을 잡았던 그때 그 지형이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는데, 평지가 좁고 바로 바다가 붙어 있는 지형 덕분에 원도심은 지금과 같은 특색 있는 외관을 갖게 되었죠. 그래서인지 부산의 도시 개발 정책은 빠르게 결과를 보여줄 수 있고 상대적으로 개발이 편한 평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해운대 마린시티나 기장 부근의 개발이 대표적일 겁니다.(아무래도 제가 자신 없이 이야기하는 이유는 부산 사람도 아니고, 도시 정책 전문가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누구라도 첨언해주시면 정말 감사할 것 같아요! ^^)
검색해보니, 과거에 원도심을 중심으로 한 재개발 사업도 있었던 듯합니다. 산복도로 르네상스 프로젝트라고 했던 것 같네요. 하지만 결과가 어땠는지는 저는 체감하지 못했습니다. 중년 커플이 뚜벅이 여행자로 걸어 다니기엔 너무 비탈지고, 차를 끌고 가자니 주차를 할 곳이 없었거든요. 한때 서울에 버금가는 대한민국 제2의 도시였던 부산 이곳저곳을 돌아보고 있자니 명성만 믿고 도시정책을 추진한 결과는 이런 건가 싶은 생각이 들어 안타까웠습니다. 원도심 구석구석이 온통 “라떼는 말이야!” 하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거든요.
사람이든 도시든,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는 필연적으로 쇠퇴를 경험한다지만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시대 변화로 인한 격차를 느끼는 세대가 있을까 싶습니다. 빠르게 변화한다는 건 그만큼 새롭고 다양한 경험을 해 볼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가 너무 빠르게 뒤쳐지고 있거나, 뒤처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야 한다는 이야기도 되기 때문에 때론 슬프다는 생각도 드네요.
하지만 추락하는 것에도 날개는 있고, 쇠퇴하는 도시에도 그 자체로의 아름다움이 존재하죠. 산복도로 위쪽에서 바라본 부산항의 경치는 묘하게 아름다웠습니다. 서울의 한강이나 강원도 동해 바다와는 뭔가 다른 낭만이 있더군요. 구석구석 호기심을 자아내던 예쁘고 사랑스러운 공간들, 그리고 광안리 바닷가에서 만난 생동감은 부산 특유의 매력으로 보이기도 했습니다.
요즘 도시를 살피고 읽어보는 재미가 조금씩 늘어가는 중입니다. 다음엔 또 어딜 가볼까 고민하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