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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ice Aug 05. 2024

04. 내가 내 감정을 믿지 못할 때 오는 극도의 혼란

흔히 양극성 장애라고 하면 기쁨과 슬픔이라는 감정이 널뛸 것으로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병의 증상은 이보다 복잡 미묘하다.   

   

나의 경우는 분노가 당혹스러울 만큼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모든 감각과 감정에 예민해졌으며, 스트레스에 극도로 취약해졌다. 상대방에게 티 내지 않더라도 감정은 수시로 요동쳤고, 대부분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느꼈다.       


초반에는 다양한 약 부작용에 시달리기도 했고, 증상이 급진적으로 나빠져 도움이 필요해 가까운 지인에게는 내가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명암이 따르는 법.      


병을 알고 도움을 주기도 했지만, 나의 모든 행동이 병과 결부되어 판단됐다. 실제로 무례한 일을 당해 상의를 하면 “네가 지금 예민해서 그래. 그러려니 하고 넘겨”라는 반응으로 돌아오곤 했다.

나를 아끼는 이들의 무심한 표현들은 나를 더욱더 외롭게 만들곤 했다. 하지만 그 때문에 힘들다는 표현을 직접 전하지는 못했다. 그럼, 상대방은 나를 더 예민하게 바라볼 테니 말이다. 


그리고 신뢰하는 이들에게 그런 말을 계속 듣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스스로의 감정을 믿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래서 납득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항상 이 말을 되뇌었던 것 같다. ‘이것도 내가 예민해서 그런 건가?’ 그리고 그런 순간이 반복될수록 자존감은 바닥으로 처박혔다.    


병마와 싸우는 것도 힘든데, 정신증이라는 이유로 세상의 편견과 마주해야 했고, 자신을 불신하는 마음과도 싸워야 하니 매사에 피곤했고... 사소한 결정에도 혼란스러웠으며, 흔들렸다. ‘이게 맞는 건가? 예민한 반응은 아닌가?’      


예전에는 자동으로 걸러졌던 필터가 이제는 버튼을 눌러야만 작동했다. 뭐.. 버튼을 누른다고 혼란스러움이 단번에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완충제가 생겼을 뿐. 나름 살아남는 법을 터득한 정도라고 할까... 나는 과연 이 혼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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