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짹짹 Jan 01. 2023

서른 살의 아침을 무사히 맞이했다.

‘서른 살까지만 살고 죽으려고요.’



나는 늘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다들 매번 농담으로 웃어넘겼지만, 나는 항상 진심이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삶에 큰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왜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도 모르면서 다들 왜 그렇게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지, 왜 삶을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하는지. 어느 것 하나 이유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른 살까지도 이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한다면, 구태여 그 이후까지 삶을 연명하지 말자고. 나는 꽤 어린 나이에 스스로와 다짐했다.






내게 삶은 형벌처럼 보였다. 죽을 때까지 ‘삶’이라는 과업을 짊어지고 끝나지 않는 고통의 관문을 넘어야 하는 형벌. 애써 힘들게 하나를 넘어도 더 거대한 관문이 끝없이 기다리고 있는, 벗어날 수 없는 무한한 고통의 쳇바퀴 같았다. 그곳에서 기쁨과 행복은 찰나였고, 고통과 괴로움은 영원했다. 제대로 된 삶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채 그저 삶을 연명하는 것은 그 고통과 괴로움을 연장하는 어리석은 행위처럼 느껴졌다. 남들은 철없이 뛰어놀 나이에, 나는 그런 생각에 골몰하느라 바빴다. 나는 태생적으로 내면이 복잡한 아이였다. 그래서 삶의 밝은 단면을 그대로 믿기보다 그 이면의 어두움에 의구심을 품었고, 행복한 사람보다 불행한 이들에게 더 눈길이 갔다. 그리고 그런 환경은 나를 스스로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아이로 만들었다.


점점 더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는 의문들에 속 시원히 대답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 미성숙한 언어로는 그 의문들을 다 표현할 수 없었을뿐더러, 그런 어설픈 질문에 어른들은 진지하게 답해주지 않았다. 너는 아직 몰라도 돼 다들 그렇게 말했다. 그럼 언제부터 알아도 되는 거냐고, 때가 지나면 자연히 알게 되는 거냐고, 그게 아니라면 어디를 가야 알 수 있는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이 아프게 변해있던 탓이었다. 그것은 때로 귀찮음이나 불편함 정도의 얕은 예기를 띄고 있었지만, 종종 무시와 적대감, 경멸로 변해 나를 깊이 상처 입혔다. 언제부턴가 나는 ‘조숙한 아이’, ‘어른스러운 아이’를 넘어, ‘애어른’ 따위로 불리고 있었다. 그럴수록 나는 애와 어른,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흉물스러운 존재가 되어갔다.


그 어떤 것도 될 수 없었던 나는 결국 그들의 말대로 고민을 멈췄다. 그러면 적어도 애는 될 수 있었으니까. 모든 생각을 비우고, 일단 남들이 말하는 정답을 따라, 사회의 ‘정도(正道)’를 따라 열심히 달렸다. 많은 이들이 ‘정답’이라 말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적어도 이곳에 답을 찾을 실마리 정도는 있겠지 하며 불쑥 쳐드는 고민들을 애써 외면했다. 그러나 그 끝은 허무(虛無), 그 자체였다. 그 ‘정답’에는 실체가 없었다. 그건 특정한 절댓값이 아닌, 허상의 평균치에 불과했다. 무수한 개인과 현실의 타협을 통해 만들어진 평균의 정도. 그 공통된 규격과 패턴이 사회가 말하는 ‘정도(正道)’의 실체였다. 그것은 옳고, 합당하기에 선택된 답이 아니었다. 시장 경제의 균형가격처럼, 앞서 살아간 개인과 한 시대가 타협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 단지 그곳에서 균형을 이뤘을 뿐이었다.





28살의 겨울.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고 나서야, 나는 그것을 깨달았다. 또다시 답을 잃은 나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렸다. 이전까지 나를 지탱하고 있던 여러 믿음이 덧없이 부서지고, 모든 기준이 연쇄적으로 붕괴했다.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 내가 지금까지 해 온 것들은 무엇이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하루의 무게가 온전히 나를 짓눌러 숨을 쉴 수 없었고, 눈덩이처럼 불어난 의문들에 압사당할 것 같았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너무 고통스럽고, 이런 꼴을 하고도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사실에 끔찍한 죄책감이 들었다. 무력하게 시간이 흘러갈수록 삶과 죽음의 경계는 점차 희미해져 갔다. 예정된 끝이 멀지 않았음을 매일, 매 순간 온몸으로 실감했다.


역설적이게도 그때의 나를 살게 한 것은 그 끝을 향한 집착이었다. 어차피 망한 거, 끝이라도 내가 원하는 대로 되길 바랐다. 그래서 당장이라도 모든 걸 끝내고 싶었지만, 남은 2년의 시간을 살아내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러는 동안 나는 의도치 않게 ‘사는 법’을 연습하게 되었고, 그 대가로 작은 삶의 비법을 얻었다.

 

그 비법은 진부하게도 ‘삶의 의미는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세상에는 살아 있는 생명의 숫자만큼 수많은 삶이 존재하고, 그만큼 무한한 답이 존재한다. 애초에 나의 삶은 유일하기에, 타인에게서 구한 답은 어떤 것도 내 삶에 100% 맞아떨어지는 답이 될 수 없었다. 또한 태생적으로 내면이 복잡한 나에게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을 구하는 그 과정 자체가 ‘삶’이었다. 다른 이들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살 수 있지만, 나는 아니었다. 스스로 만족할 만한 답을 찾지 못하는 삶은 나에게 죽음과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나의 삶이 괴로웠던 진짜 이유는 스스로 답을 찾는 것을 포기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이번엔 제대로 ‘나의 삶’을 진지하게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나는 아직도 삶이 아름답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는 내 노력 여하에 따라 삶을 아름답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 정도는 안다.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해보지도 않고, 스스로 답을 찾고자 절박하게 매달려 보지도 않고, 삶과 죽음을 논하는 것은 미련하고 비겁한 짓이다. 따라서 이번에는 치열하게 고민해보기로 했다. 삶이 던지는 질문들을 회피하지 않고, 힘이 닿는 데까지 스스로 만족할 만한 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오랜 방황을 거쳐, 드디어 나는 내 삶의 출발점에 섰다.

이제는 더 이상 삶 앞에 무너져, 죽음으로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지난 30년을 대가로, 한 가지 확실한 해답을 얻었기 때문이다.


삶의 의미는 살아서 찾아야 한다.


그것이 무사히 서른 살을 맞이한 기념으로 얻은 나의 첫 번째 답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