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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현 Jun 23. 2020

포스트 모더니즘 건축

건축학도의 건축이야기


지난 학기 때 들었던 설계수업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때 교수님은 내가 설계한 건물이 너무 포스트 모던스럽다는 이야기를 했다. 칭찬인지 욕인지...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일단 칭찬은 아닌 것 같았다. 요약하자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철 지난 양식이므로 좀 더 지금 시대에 맞게 설계를 해보라는 식이었다. 대체 내 건물이 어디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건지, 그리고 그게 왜 구식이라는 건지, 이런 건 나 스스로 알아내야 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이해하려면 먼저 모더니즘이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었다.


모더니즘

모더니즘은 근대에 오면서 기존의 봉건적 사고에서 벗어나서 이성과 합리성, 효율성을 중시하는 사상이다. 여기서 ‘봉건적 사고’라는 것은 조선시대나 유럽의 중세시대와 같은 시대의 분위기를 떠올리면 된다.

모더니즘은 건축뿐만 아니라 예술과 철학, 과학 등 모든 영역에 있어 영향을 준, 일종의 시대정신이다. 모더니즘이 무엇인지는 건축을 예를 들어 설명하면 쉬울 것 같다.






건축

산업혁명 이후 재료와 기술의 발전은 기존과는 다른 개념의 건축을 탄생시켰다. 과거 건물은 하중을 지지하기 위해 두꺼운 벽을 가지고 있었고, 재료의 한계로 창문은 작았다. 하지만 철근콘크리트와 같은 새로운 기술의 발달은 두꺼운 벽 대신 기둥이 하중을 지지하게 했고, 건물에 가로로 긴 창을 두를 수 있도록 했다.


모더니즘은 이런 시대를 배경으로 등장한다. 모더니즘 건축의 개념을 정립한 르 꼬르뷔지에는 “주택은 살기 위한 기계이다”라는 말을 한다. 이 말은 모더니즘의 기능주의적인 특성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20세기 초 당시 기계에 대한 믿음과 기대가 얼마나 컸었는지를 알 수 있다.




17세기초 지어진 퀸즈하우스(왼쪽)와 20세기초 지어진 꼬르뷔지에 주택(오른쪽) 사진 party ingredients,architonic


르 꼬르뷔지에의 도시계획 1933년사진 archdaily

위 사진의 꼬르뷔지에의 도시계획을 보면 마치 회로기판처럼 도시가 철저하게 효율적으로 설계된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뭔가 그림이 익숙하다. 그렇다. 우리가 흔히 봐 왔던 아파트 단지랑 비슷하다. 아파트도 당시 생겨난 모더니즘 사상의 산물이었다. 이처럼 모더니즘은 현대에도 여전히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모더니즘의 한계

모더니즘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어서 가져와 보았다. 형광등의 등장이 가져온 건축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다.


형광등이 발명되면서 실내를 밝혀줄 빛이 생겼다. 이제 형광등이 있기 때문에 건축물은 과거처럼 자연광으로 실내를 밝히기 위해 고민해서 지어질 필요가 없어졌다. 환기도 창문 대신 공조시스템이 대신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창문을 통한 채광이나 조망은 고려되지 않고, 천장고도 2.3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 답답한 건물들이 생겨났다. 창문 없이 칸막이로 둘러싸인 답답한 사무실을 같은 건물을 떠올리면 적당할 것 같다. 이렇게 지어진 건물은 효율성은 최고지만 인간에게는 전혀 인간적이지 않은 환경이었다.



모더니즘 양식의 건물이 다 이렇지는 않지만, 모더니즘 사상의 한계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참고-유현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영화 인크레더블에서 등장하는 답답한 사무실장면




흔히 세계대전 이후를 모더니즘이 무너지는 시기라고 말한다. 효율적인 시스템과 기계들은 크고 작은 비극들을 만들어냈다. 이성이라는 무적의 논리로 무장한 모더니즘도 이제 흔들리게 된다. 또한 수학, 물리학, 철학 등의 영역들에서도 이성의 한계를 발견한다. 이런 배경에서 드디어 포스트모더니즘이 등장한 것이다.





포스트 모더니즘

간단히 말하자면 포스트 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이성중심주의에 반대한다. 효율성을 우선시한 시스템과 집단주의에 반대하고, 개별성과 자율성을 중시한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은 규칙이나 제도 같은 질서들에 얽매이지 않고, 이념과 이분법적인 사고에도 벗어나고자 한다.



미술로 예를 들자면 현대미술의 작품들이 이런 포스트모더니즘에 속한다. 우리는 현대미술을 보게 된다면 도무지 뭐가 아름다운지 이해하기 힘든 게 대부분이다. 이런 현대미술 작품들은 기존과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작품을 바라봐야 한다. 전통적으로 생각했던 ‘예술’이라는 관점도 포함해서 말이다.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A thousand year’ 의 소 머리 부분사진 artspace


여기까지가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에 대한 설명이었다. 이제 드디어 건축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시작하기 앞서,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은 현재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약간은 혼란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이 용어를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로 분리해서 사용하려고 한다.







포스트모더니즘 건축

1. 넓은 의미

넓은 의미는 지금까지 말해왔던 말 그대로 모더니즘에서 탈피한 건축을 의미한다. 이것은 해체주의나 브루탈리즘 같은 모더니즘 이후 탄생한 많은 양식들을 모두 포함한다.



해체주의적 성격이 강한 리베스킨트의 온타리오 박물관 사진 libeskind.com




2. 좁은 의미

좁은 의미의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이란 필립 존슨, 로버트 벤추리등으로 유명한 양식(style)을 말한다. 시대로 따지면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사이에 유행한 양식이다. 건축에서 넓은 의미의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를 벗어난 현대적인 개념으로 사용되지만, 좁은 의미의 포스트 모더니즘은 아르누보처럼 한때 유행했던 양식이다.


이번 글에서는 내 교수님이 말한, 바로 이 좁은 의미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포스트모던의 시작이라고 불린 벤츄리의 벤츄리하우스 사진 veranda.com





포스트모더니즘 건축물

이제 예시들을 보면서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특성을 알아보려고 한다. 이제부터 좁은 의미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을 이야기한다. 1960~1990년 사이에 생겨난,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좋은 예시들을 가져왔다.



1. AT&T 빌딩


뉴욕의 AT&T 빌딩 사진 Archdaily


필립 존슨의 AT&T 빌딩은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으로 유명하다. 이 건물은 고층빌딩이지만 그리스 신전에서 가져온 모티브를 사용했다. 건물의 형태는 높이를 늘려놓은 그리스 신전을 연상케 한다. 외부 마감 또한 당시 흔히 쓰이던 금속과 유리가 아닌 화강암을 사용하여 이런 건물의 컨셉을 부각한다.



2. 로버트 벤츄리 Vanna Venturi House


포스트모던의 시작이라고 불린 벤츄리의 벤츄리하우스 사진 veranda.com

마치 과거 그리스 시대 사람들이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비율을 따져가며 건축을 했던 것 처럼, 벤츄리하우스 또한 어딘가 기하학적이고 내재된 규칙을 따라 지어진 듯 한 형태를 보인다. 재료와 기술의 발전으로 형식으로부터 자유분방해진 현대의 다른 건축물들과 달리 상징적 형태들을 가지고 있다.



3. 도쿄 시청사


도쿄 시청사와 프랑스의 노트르담 성당 사진Alina Rossoshanska


도쿄 시청사 건물이다. 현대적인 건물에 프랑스 고딕 성당의 비율을 적용한 것이 인상적이다. 그리스가 아닌 중세시대의 건물을 모티브로 한 것이 앞 건물들과의 차이이다.  



인용과 형상화

위 세 가지 건축물의 공통점은 과거의 건물들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건물들을 직접적으로 혹은 은유적으로 상징하는 요소들을 담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은 인간 중심의 시대의 건축을 인용하고자 하는 경우가 많았다. 영혼이 없는 것 같이 차가운 느낌의 모더니즘에서 변화를 시도하는 하나의 방법인 것이다. 그래서 서양문화의 뿌리가 되는 그리스의 건축이 모티브로 자주 등장한다. 마치 르네상스 시대처럼 말이다.








이번엔 마이클 그레이브스와 마리오 보타의 건물들을 가져와보았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말로 어떤 건축가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이점을 염두하고 이 글을 읽었으면 한다.




마이클 그레이브스 (Michael Graves)

마이클 그레이브스의 건물은 포틀랜드 빌딩, 디즈니월드 스완&돌핀 리조트 등이 있다. 이 건물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의 기하학적인 형태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기존 모더니즘 건축에서 흔히 쓰였던 무채색에서 벗어나 다양한 유채색들을 사용하였다.


포틀랜드빌딩 사진 city lab
디즈니월드 스완&돌핀 리조트 사진 traveling mom
덴버 공공도서관 사진 failedarchitecture




마리오 보타 (Mario Botta)

마리오 보타는 강남 교보타워나 리움미술관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건축가이다. 그의 건물은 벽돌을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에브리 성당,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등 그의 작품 몇 개를 가져와 보았다. 그의 작품들은 특유의 순수한 도형들을 사용하는 디자인과 정확히 대칭적인 형태가 인상적이다. 이런 정확한 대칭성은 그의 주택 작품에서도 여전하다.


에브리 성당(Évry Cathedral) 사진 archinect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 사진 dezeen
스타비오 주택 사진 kobe-du.ac



기하학적 형태와 대칭성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에서 원이나 삼각형 같은 도형들을 자주 볼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이런 도형들을 안정적이고 ’ 이상적인’ 형태로 보았기 때문이다. 마치 그리스 신전이 황금비를 따라 만들어졌다는 것처럼 그들도 어떤 이상적인 세계를 추구했다. 포스트모던 건물이 대칭적인 형태가 많은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그래서인지 포스트모더니즘 양식의 건물은 권위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경우가 많다.


성을 연상케 하는 영국의 SIS 빌딩 사진 위키백과





한국의 포스트모더니즘 건축

70~80년대 한국은 전통을 인용한다는 점과 상징성을 지닌다는 점 때문인지 많은 포스트모더니즘 스타일의 건물들을 지었었다. 한국이 독재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던 시기, 건축물들은 어떠한 상징물이 되어야 했었다. 당시 우리나라의 현대화된 모습을 과시해야 하면서도 우리가 그토록 자랑했던 전통도 담아야 했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세종문화회관과 예술의 전당이다.





세종문화회관


개관당시 사진 사진 한겨레

세종문화회관은 박정희 정권 때 세워졌다. 당시 박정희는 기와를 올려서 전통건축의 양식을 살리기를 바랐지만, 건축가는 이것을 포스트모던의 방식으로 좀 더 현대적으로 표현했다. 그래서 지금의 세종문화회관이 탄생한 것이다. 상당히 비대하고 과시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전통건축을 현대적으로 나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예술의 전당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 사진 예술의 전당

예술의 전당은 오페라 하우스를 선비의 갓을 형상화하여 만들었다는 이야기로 유명하다. 전두환 때 계획된 이 건물도 역시 전통을 담아야 한다는 정치인들의 강박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현대적인 건물에 전통양식을 접목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건물의 경우 그 조화가 상당히 억지스럽게 보인다는 평이 많다. 현대적인 건물에 갓을 올리고 서까래를 넣는다고 해서 성공적인 컬래버레이션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튼 두 건물 모두 중요한 것은 그래서 결과물이 좋냐는 것이다. 건물에 아무리 긴 이야기를 담고 숭고한 형상화를 했다고 말해도 결과물이 좋지 않으면 쓸데없는 이야기일 뿐이다. 좋은 건물은 설명이 길 필요가 없다. 간단히 말해서 “그래서 넌 저게 예뻐?”라고 묻고 싶다.

이게 나만의 생각은 아니다. 실제로도 국내외에서 최악의 건물을 선정하면 언제나 포스트모더니즘 건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예술의 전당이나 국회의사당처럼 정치인들이 설계를 헤집어놓은 건물들도 있지만 사실문제는 포스트모더니즘 자체에 있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한계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벗어나라고 말한 교수님은 나한테 해체주의 같은 현대건축을 찾아보라고 하셨다. 현대건축을 많이 보다 보니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에 대해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원래 포스트모더니즘의 취지는 인간성을 상실한 설계에서 벗어나서 감성적이고 자유로운 디자인을 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 건축물들을 보면 결과물이 영 시원찮았다. 나는 포스트 모더니즘 건축이 새로운 건물을 짓는데 왜 자꾸 옛날 건축물을 인용하는지, 그리고  꼭 그래야만 인간적인 건축이 되는 건지 딴지를 걸고 싶었다. 그리고 포스트모던의 기하학적이고 대칭적인 형태는 건물을 딱딱하고 지루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그리고 건물이 갓을 형상화했느니 부채를 형상화했느니 하는 이야기들은 유치하고 경박하게 느껴졌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나쁜 극단이라고 생각하는 건물들 사진 dezeen, RT.com

이런 점에서 추상적인 현대건축들이 더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과거 모더니즘의 형식과 기계주의에서 벗어나려 했던 포스트모더니즘도 지금의 관점에서는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고 일종의 경직된 형식을 만들어낸 것으로 보였다.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과 같은 사상들은 시대의 흐름을 따른다. 그렇다면 지금 유행하는 양식은 뭘까? 이것은 다음 편에서 다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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