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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in Mar 04. 2020

수명은 줄어드는데
습관은 늘어나네

나이가 드니 몸에서 멜로디가 절로 흐르나

"가만있어보자 어디 뒀더라- 그래 여기로구나-"

분명 어제 아침 양말을 찾을 때와는 사뭇 다른 박자와 멜로디가 툭 튀어 나왔다. 주변에 관객이라곤 방금 쓰고

던진 축축한 수건 한 장뿐이지만 콧소리를 잔뜩 얹어 음색을 뽐낸다.


"오늘은 앵두맛이구나- 땡땡이를 신자꾸나-"

즉흥적으로 떠오른 가사를 멜로디로 부드러이 버무리는 수준이 혼자 듣기 아까울 정도다. 목 늘어난 메리야스, 땡땡이 양말, 색 바랜 면바지까지 모든 의류가 내 몸에 거쳐질 때마다 짝 잃은 잉꼬 마냥 서리서리한 가락을 뿜어낸다. 확실히 기억컨대 태어날 때부터 이러지는 않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없던 습관들이 하나씩 생긴다.

고려장을 당할 위기에 처한 만큼 노약한 나이는 아니지만, 확실히 전에 없던 습관들이 늘어났다.


첫째, 외로움을 못 참는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외로움이 커지는 건 당연지사임에도, 그 혼자만의 시간이 뭐가 그리 싫은지 괴상한 멜로디에 가사를 섞어 스스로를 달랜다. 차가운 대학로 지하 소극장 무대에 올라선 50년 무명 뮤지컬 배우마냥 구슬프게 한 음절 뽑으며 몸을 움직이면 분명 외로움이 덜 한다. 물론 지나가던 누군가에게 그 장면을 목격당할 때의 남사스러움은 말할 수가 없다.


둘째, 엄마 안부가 그렇게도 궁금하다.

요새 참홍어가 제철이라는데 맛은 보셨는지, 늘 아픈 손목은 아직도 불편하신지, 밥은 챙기셨는지.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대는 통에, 엄마도 별로 반기지 않는 눈치다. 나이가 들면 뒤늦게서야 효자가 된다는 한심한 격언의 주인공이 바로 나였다.

마지막으로, 커피숍 앞에서 서성인다.

내 책상 서랍 열 듯 자연스럽게 드나들던 커피숍을 쉽사리 들어가지 못한다. 뜨거운 여름 석탄 마냥 시커먼 흑당 커피 한 잔 시원하게 마시고 싶어도 메뉴판에 붙어있는 쉽지 않은 금액을 보고 있노라면 발길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어제 아들놈이 사달라고 조르던 요상한 장난감을 안 사준 게 맘에 걸렸는지, 내 목젖 하나 좋자고 저 돈을 내고 싶지가 않은 모양이다.   


그래도 다행이다.


머리숱, 이두박근, 어린 시절 친구들, 총명한 눈빛, 같이 살던 강아지. 나이 들어가면서 온통 잃어가는 것 투성이었는데 늘어나는 것들도 있으니 말이다. 젊은 날에는 없이 살던 습관들과 친숙해지는 것도 나이와 세월이 주는 기념품이라 생각하련다. 퇴근길 양재역에서 마주친 수많은 어르신들의 둥글게 굽은 허리도 늘어나버린 습관의 무게에 꾸욱 눌려서인가 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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