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어제 아침 양말을 찾을 때와는 사뭇 다른 박자와 멜로디가 툭 튀어 나왔다.주변에 관객이라곤 방금 쓰고
던진 축축한 수건 한 장뿐이지만콧소리를 잔뜩 얹어 음색을 뽐낸다.
"오늘은 앵두맛이구나- 땡땡이를 신자꾸나-"
즉흥적으로 떠오른 가사를 멜로디로 부드러이 버무리는 수준이 혼자 듣기 아까울 정도다.목 늘어난 메리야스, 땡땡이 양말, 색 바랜 면바지까지 모든 의류가 내 몸에 거쳐질 때마다 짝 잃은 잉꼬 마냥 서리서리한 가락을 뿜어낸다. 확실히 기억컨대 태어날 때부터 이러지는 않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없던 습관들이 하나씩 생긴다.
고려장을 당할 위기에 처한 만큼 노약한 나이는 아니지만, 확실히 전에 없던 습관들이 늘어났다.
첫째, 외로움을 못 참는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외로움이 커지는 건 당연지사임에도, 그 혼자만의 시간이 뭐가 그리 싫은지 괴상한 멜로디에 가사를 섞어 스스로를 달랜다. 차가운 대학로 지하 소극장 무대에 올라선 50년 무명 뮤지컬 배우마냥 구슬프게 한 음절 뽑으며 몸을 움직이면 분명 외로움이 덜 한다. 물론 지나가던 누군가에게 그 장면을 목격당할 때의 남사스러움은 말할 수가 없다.
둘째, 엄마 안부가 그렇게도 궁금하다.
요새 참홍어가 제철이라는데 맛은 보셨는지, 늘 아픈 손목은 아직도 불편하신지, 밥은 챙기셨는지.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대는 통에, 엄마도 별로 반기지 않는 눈치다. 나이가 들면 뒤늦게서야 효자가 된다는 한심한 격언의 주인공이 바로 나였다.
마지막으로, 커피숍 앞에서 서성인다.
내 책상 서랍 열 듯 자연스럽게 드나들던 커피숍을 쉽사리 들어가지 못한다.뜨거운 여름 석탄 마냥 시커먼 흑당 커피 한 잔 시원하게 마시고 싶어도 메뉴판에 붙어있는 쉽지 않은 금액을 보고 있노라면 발길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어제 아들놈이 사달라고 조르던 요상한 장난감을 안 사준 게 맘에 걸렸는지, 내 목젖 하나 좋자고 저 돈을 내고 싶지가 않은 모양이다.
그래도 다행이다.
머리숱, 이두박근, 어린 시절 친구들, 총명한 눈빛, 같이 살던 강아지. 나이 들어가면서 온통 잃어가는 것 투성이었는데 늘어나는 것들도 있으니 말이다.젊은 날에는 없이 살던 습관들과 친숙해지는 것도 나이와 세월이 주는 기념품이라 생각하련다.퇴근길 양재역에서 마주친 수많은 어르신들의 둥글게 굽은 허리도 늘어나버린 습관의 무게에 꾸욱 눌려서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