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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

글을 쓰는 이유

by 월하



평소 좋아하거나 낯선 단어들을 메모장에 모아 두곤 했다. 좋아하는 단어들을 활용해 편지나 시를 쓰는 습관은 있었지만 글쓰기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뛰어난 글재주나 특별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다만 한 문장 한 문장 최대한 꾸밈없이 진심을 담으려 했기에 그 글들은 당시의 나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래서일까, 남들에게 쉽게 내보일 수 없는 일기처럼 느껴져 오랫동안 메모장 한편에 조용히 묻혀 있었다. 내 글은 그저 당시의 내가 갖고 있었던 감정을 추억하기에 충분했다.


글을 쓰는 일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그 시간만큼은 외롭지 않다는 점이다. 혼자이면서도 온전히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치유되는 것을 느낀다. 글을 쓰는 동안 내 안의 상처와 결핍은 조금씩 옅어지고, 잊고 있던 온전한 나를 다시 기억하게 된다. 슬픔이 지나간 자리에는 이해와 수용이 남고, 아쉬움과 두려움은 조금씩 가벼워진다. 글을 쓰면서 나는 내 마음의 결을 따라 걷는다. 마치 가벼운 산책을 하듯 조급함과 혼란이 섞인 순간에도, 한 줄 한 줄 마음을 기울여 써 내려가며 나는 나 자신을 품는다. 그렇게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조금씩 내 삶과 화해하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힘겨운 시간을 견디고 있을 누군가에게 나의 글이 따뜻한 위로와 작은 격려가 된다면 그것이 곧 나의 소명이라 믿고 용기 내어 글을 쓴다. 이것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다.


감당하기 힘들었던 아픔을 겪고 더 이상 내려갈 곳 없을 만큼 바닥에 내던져졌을 때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내 안에서 일어난 놀라운 변화와 감정들을 기록하고 싶었다. 삶은 순간의 연속이었고, 나는 그 속에서 방향을 잃고, 많이도 방황해 왔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나는 비로소 내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고 이제는 그것들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이제는 나의 존재 이유와 소명을 생각하고,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글을 통로 삼아 비록 한 줌의 작은 빛일지라도 전하고 싶다. 그 빛이 누군가의 마음을 잠시라도 덮어주는 따스한 불씨가 되고, 혼란 속에서는 안정을, 갈등 속에서는 화해를 이끌어내며, 사랑을 찾는 이에게는 따뜻한 사랑으로 다가서기를 바란다.


성취가 삶의 목적은 아니며, 존재 자체만으로 이미 충분히 의미 있다. 우리는 사랑하고, 그 사랑을 나누어야 한다. 그리고 나는 글을 통해 그 사랑의 한 조각을 세상에 전하고자 한다. 나는 이곳 브런치스토리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서로에게 작은 위로와 격려가 되는 글을 쓰고 싶다. 글을 읽는 누군가가 잠시라도 숨을 고르고, 마음을 기대며, 자기 자신을 조금 더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그 마음이 또 다른 글로 이어져 누군가에게 작은 빛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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