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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아 Oct 09. 2020

내가 외면했던 것들

 나는 내가 많이 지쳐있다는 사실을 모른 체했다. 어떻게든 사람들 속에 섞여 살기 위한 발악이었을까. 나는 남들보다 혼자만의 시간을 더 필요로 하는 사람이며, 현재는 진정한 나의 시간을 하나도 누리고 있지 않다는 것. 나는 그 모든 것들을 어쩌면 알면서도 몰랐다. 내가 죽어가는 이유는 단지 미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꿈이, 바람이 없어서. 그래서 살아가려는 희망이 없어서라고. 나의 우울은 나에게 철저히 외면당했다. 얼마나 외롭고 억울했을까.


 우연히 나만의 시간을 갖게 되면서 나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깨달았다. 지극히 혼자가 편했던 내가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는 것. 물레처럼 끊임없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내가 숨쉴 수 있는 구멍 하나 없었다. 지쳐버렸다. 대한민국에서 고등학생으로 살면서 요구받는 일상은 개인적인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새벽같이 일어나 등교해 다시 새벽에 들어오면 눈을 붙일 시간도 부족했다. 학교에는 수많은 친구가 함께였으며, 집엔 언제나 가족들이 있었다. 나는 온종일 사람들과 함께였고 그래서 언제나 긴장했고 불편했다. 항상 누군가가 날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그 어떤 사람 앞에서도 난 오롯이 편하지 못했다. 비밀스럽게, 나 혼자 조용히 하고 싶었던 것들을 아끼고 또 아끼다 결국 포기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혼자 남지 못했으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다들 그렇게 살고 있고, 누군들 벗어나고 싶지 않을까. 그만큼 피하기 힘든 삶의 굴레이니 다들 그렇게 피곤에 찌들어 사는 것이 아닌가.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건 진정한 우울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세상에 얼마나 깊은 우물이 많은데, 고작 이 정도로 힘들다며 징징댈 순 없다고. 나는 나에게 학대당했다.


 우물이 얼마나 깊은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썩은 물은 악취를 풍기고, 본디 그 자리가 얕았든 깊었든 메워 없애야 하는 것은 똑같은 것. 나는 나의 우울을 과소평가했으며 애써 눌러 뭉쳐두었다. 최악의 경우를 바라보며 나는 저 정도가 아니니 엄살 부리지 말아야 한다고 여겼다. 최악 바로 아래 있으면서도. 내가 나를 죽인 거지. 헛웃음이 나올 정도의 어리석음이었다. 그때 나는 나를 몰랐다. 아니, 알면서도 이를 꽉 물고 모른 척했다. 알아봤자 달라지는 게 없었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저 언젠가 다가올 죽음을 기다렸다. 무기력했고 무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과거의 나를 후회하지 않는다. 그때로 수백, 수천 번 돌아간다 해도 나는 여전해 같은 선택을 하고, 같은 행동을 했을 테니까. 나에게 중요한 건 앞으로의 나이니까. 나는 여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필요로 하며 사람과 만나는 것을 꺼린다. 하지만 이제 나는 내가 무엇이 필요한지 알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안다. 내가 겪어야 할 시간과 나에게 필요한 시간, 이제 나는 둘을 철저히 분리해서 나에게 휴식을 줄 줄 안다. 그 과정에서 다소 무모한 선택과 남들과는 다른 길을 향한 용기가 필요했지만, 나는 충분히 잘 이겨냈고 또 이겨내고 있다. 하고 싶었지만 미루다 포기했던, 과거의 바람에 하나둘씩 도전하고 있고 그 과정을 즐기고 있다. 누군가는 나에게 다양한 것을 하며 시간을 알차게 보낸다고 부러워하고, 누군가는 자극을 받아 더 열심히 하게 되었다고 감사해한다. 어느 순간 이것들이 내가 부러워하던 사람들의 모습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이렇게 살아야겠구나. 하고 싶은, 할 수 있는 것들에 당장 도전하면서.


 우울이라는 감정은 뿌리를 너무 깊게 내리고 있어 완전히 파내기가 쉽지 않다. 줄기를 겨우 뽑아냈으나 여전히 내 심장 어딘가 박혀있는 게 분명하다. 나는 아직 완전히 이겨내지 못했으며, 완벽하게 행복한 삶을 살고 있지도 않다. 하지만 이제 나는 내 심장에 어떤 감정들이 어떠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지 안다. 몸부림치는 감정을 애써 무시하고 누르면 결국 더 큰 덩어리가 되어 치고 올라오기 마련이다. 내가 나를 외면한다면, 내 감정은 도대체 누가 알아줄까. 상처는 곪아 썩어 문드러지면 더 심한 악취를 낼 뿐. 나를 힘들게 만드는 것들을 뽑아내려면, 내 마음을 이해하는 게 우선이다. 나를 달래고 위로해주는 것엔 나만 한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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