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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판 부동산 거물 윤선도, 그의 초호화 정원

by 월하랑

루이 14세는 자신보다 더 화려한 정원을 소유한 재무장관 니콜라 푸케를 괘씸하게 여긴다. 후에 ‘베르사유 궁전’을 만드는 계기가 된 니콜라 푸케의 ‘보르 비 콩트 Vaux-le-Vicomte'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왕보다 더 사치스러운 정원을 소유하는 것은 권위의 도전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이다. 조선시대의 정원은 전 세계의 여타 정원과 비교해 보았을 때 사치스럽지 않다는 것이 특징이다. 좋게 말하면 절제의 미덕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다르게 말하면 가난한 나라의 정원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특히 유교를 바탕으로 건설된 나라이기에 예법을 중요하게 여겼고, 이러한 예법은 위계를 분명히 하는 도구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그 누구도 화려한 정원을 소유하여 자신의 부를 과시하려는 도전을 하지 않았다. 단 한 사람, 윤선도를 제외하고 말이다.


원래부터 해남에서 대단한 영향력을 가진 윤 씨 가문이었지만, 윤선도의 감각은 남달랐다. 그는 강진에서 간척사업으로 땅을 넓히고, 미역 양식업으로 부를 축적하는 등 대단한 사업 수완을 보여주었다. 효종의 스승이자, 그 유명한 '어부사시사'의 작가로 널리 알려진 윤선도는 탁월한 사업가, 그리고 과학자 등의 타이틀을 붙일 수 있을 만큼 다재다능한 사람이었다. 부유하고 다방면으로 뛰어났지만, 그는 정치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없는 남인이었다. 그의 나이 만 50에 일어난 병자호란은 한양에서의 삶에 미련을 버리게 만들었다. 보길도는 병자호란의 패전에 상심한 윤선도가 제주도로 가던 중 풍랑을 만나 자리 잡게 된 섬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더 이상 중앙정치 무대의 주인공 자리를 탐내며 인내하지 않고, 스스로 제작, 기획, 연출, 각본, 그리고 관객이 되어 세상의 주인이 되고자 했던, 그의 꿈을 실현하는 무대였다.


윤선도가 보길도에 들어가 섬을 장악했다는 소문이 병자호란 이후로 안정을 되찾은 조정에 다다른다. 보길도는 일반적인 섬이 아닌, 당시 금보다도 비싼 동백기름을 채취하고, 건축자재인 소나무를 수급할 수 있는 나라에서 관리하는 '자원섬'이었다. 보길도가 제주도로 향하던 길에 우연히 자리 잡게 된 섬이라는 것에 신빙성을 떨어트리는 결정적인 증거는 윤선도의 본가인 해남 녹우당에서 보길도까지는 45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며, 특히 윤 씨 가문이 관리하고 있는 여러 간척지와 섬들로 이동하기 좋은 중간 정착지로 최적의 위치에 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부동산에 탁월했던 그에게 눈앞에 보이는 보길도는 무척이나 탐나는 '물건'이었을 것이다. 전략가 윤선도는 병자호란으로 나라가 어수선해지자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보길도에 들어가 전망대, 거처지, 그리고 유흥지를 만들었다. 조정에 전해진 윤선도의 보길도 장악설은 '처녀를 겁탈하여 섬으로 데리고 들어가 음란과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겼다.'라고 전해진다. 아무리 왕의 스승이라 하더라도 나라의 자원섬을 무단점거한 후 음란과 사치를 즐겼다는 소문은 그를 위태롭게 한다. 하지만 그는 범상치 않은 인물, 탁월한 협상가 다운 대처로 위기를 극복한다. 보길도에 머문 이유를 나라가 혼란한 틈을 타 섬의 나무들을 훔쳐가려는 무리들로부터 지키기 위함이었다며, 실제로 그가 머문 이후로 섬이 도적으로부터 안전했다며 보길도 사유화를 정당화시킨다.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일만한 명분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조선에서 가장 화려한 정원을 만들게 된다.


보길도는 윤선도 월드이다. 섬의 가장 높은 두 봉우리인 격자봉과 안산 아래에, 각각 전망대 동천석실과 거처지 낙서재와 곡수당을 조성했다. 섬의 북쪽 물이 빠져나가는 곳에 둑을 쌓고, 유흥지인 세연정을 만들었다. 당시에 개인이 둑을 만들어 물을 가둔다는 발상은 윤선도이기에 가능했다. 아마도 세연정의 둑인 판석보는 수많은 개간사업을 하면서 습득한 기술을 응용한 것으로 보인다. 판석으로 보를 만들어 판석보라 이름 붙여진 구조물은 개인의 것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판석은 단순히 돌을 다듬어 조형물을 만든 것이 아니다. 얇게 켜지는 특별한 화강석을 구하는 것부터 쉽지 않다. 놀라운 것은 지금까지 본 판석 가운데 돌의 크기가 그 어느 곳보다 크다는 것이다. 궁과 종묘에서 봤던 크기의 몇 배에 해당할 것 같은 대형 판석은 윤선도가 어떤 마음으로 이곳을 만든 것인지 짐작하게 한다. 대형 판석의 가장자리에는 구멍이 있다. 구멍 안에는 돌로 만든 못을 집어넣어 옆면의 판석과 연결을 시켜 놓았다. '凹'를 뒤집어 넣은 구조인 판석보의 내부에는 강회를 2/3 채워 넣었다. 모두 채우지 않고 1/3을 남겨 둔 것은 구조상 더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어렵게 판석보로 물을 막은 이유는 자연 계류 옆에 인공 지당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때 인공지당으로 물이 효과적으로 유입될 수 있도록 물구멍의 크기와 개수를 조절해 수압을 높였다고 알려져 있다. 판석보와 수압의 조절, 세연정 곳곳에서 보이는 윤선도의 과학자적 면모는 천재적이라고 불릴만하다.


누군가 정원에 섬을 만든다면, 나무는 심을 수 있어도 정자는 만들 수 없다. 섬에 정자를 둘 수 있는 것은 오직 왕뿐이다. 윤선도는 왕이 되고 싶었다. 중앙 정계에서 남인 출신이라는 이유로 인정받지 못하는 울분을 세연정에서 풀고 싶었다. 섬의 정자를 만들 수 있는 게 왕뿐이라면, 정자가 있는 곳을 섬처럼 만들면 됐다. 자연 계류에 붙여서 정자를 짓고 뒤에 빠른 수압으로 물이 유입되는 인공 방지를 만들었다. 자연스럽게 정자 앞뒤로 자연계류와 인공지당이 둘러싸여 정자는 마치 섬처럼 보였다. 섬 위에 정자를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엄연히 따지고 보면 정자 주변에 물이 흐르게 한 것뿐이었다. 누군가 이것을 두고 문제를 삼는다면 물이 유입되는 구멍만 막으면 그만이었다. 법도에 어긋나지 않고도 원하는 바를 이루는 발상의 전환이 자유로운 데다가 실행력도 좋은 사람이었다.


'어부사시사'는 바로 보길도 세연정에서의 유희를 위해 만들어졌다. 계류에 작은 배를 띄우고 화려한 옷을 입은 남자아이가 노래를 부른다. 정자 주변에는 관현악단이 풍악을 연주하고, 정자 북쪽의 무대에서는 무희가 춤을 추고 있다. 제작, 연출, 기획, 모두 윤선도의 작품이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런 유희를 즐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뛰어난 예술가였고, 왕보다 사치스러운 정원을 만들 수 있을 만큼 부유했지만, 그의 정원에는 나를 알아봐 주지 않는 세상을 향한 화가 느껴진다. 최고의 기술을 동원하여 정원을 만들고, 매일 엄청난 돈을 쓰며 공연을 벌였지만 그의 공허한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다. 모든 것을 가졌고, 모든 면에서 뛰어났지만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윤선도는 견디기 힘들었다. 정원 한가운데 앉아 세상의 중심이 된 듯한 경험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해야지만 비로소 잠이 들었던 윤선도의 삶은, 부유하고 화려했지만, 섬에 울려 퍼지는 공허한 메아리였다.



참고논문: 조선조 토지제도와 인식을 통해 본 보길도 윤선도 원림 조영 배경 연구/이태겸, 김한배/한국전통조경학회지 37 (2), 1-1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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