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원을 공부한다는 것은 수많은 한자들을 익히는 일이기도 했다. 바위에 새겨진 글자와 현판에 새겨진 글씨, 건물의 이름들을 외우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단순 암기는 오래가지 못했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름의 뜻을 알려고 노력했다. 한자를 찾는 것만으로 쉽게 이해되는 이름도 있었지만 많은 경우 오래된 고사를 찾아봐야 한다거나 성리학을 조금은 공부해야 했다. 동화같기도 한 오래된 이야기 역시 읽는 것 만으로 이해가 되기도 했지만 중국의 역사적 사실을 알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거나, 어떤 인물에 대해 모르면 안 된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건물 이름 하나 외우기 위해 시작한 일이 수많은 논문과 책을 참고해야 겨우 가닥이 잡히곤 했다. 그렇게 한자의 뜻을 하나하나 찾아 나서고 이해하는 과정은 어느새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로 이어지게 했다. 옛사람들이 붙인 이름에는 유머를 곁들인 웃음 뒤에 겸손함을 불러일으키거나, 살면서 떠올려 본 적도 없는 가치를 오래 곱씹어 보게끔 하는 힘이 있었다.
도산서당의 방과 마루의 이름은 미소 짓게 만든다. 건축 구조만큼이나 위트 있는 작명 센스에서 그의 내면 가득한 여유를 느낄 수 있어서 그렇다. 자다 일어나 이불을 개고 작은 책상을 펼쳐 책을 읽어나가는 것 말고는 다른 사람과 함께 앉아 대화하기에도 벅차 보이는 작은 방의 이름을 평생토록 여기서 즐기는 것이 싫지 않다고 지은 것은 방의 한쪽 구석을 모조리 차지한 천 여권의 책이 흡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장난친다’, ‘논다’는 뜻의 완玩과 즐길 락樂을 써 완락재라 이름 붙인 방에 앉아 물리적 공간에 한정되지 않고 책과 함께 큰 세계를 여행했을 그를 상상해 본다. 바로 옆 마루의 이름이 암서헌인 것이 서재의 이름과 대비된다. 작은 방일지라도 든든한 책들을 보며 평생을 만족한 대학자가 오래도록 학문에 자신이 없어 절박한 마음에 바위의 효험이라도 바라본다는 것이 헛웃음을 짓게 한다. 바위 암巖과 깃들일 서棲의 암서헌은 전 세계가 인정하는 대학자의 겸손한 마음과 탐구해야 할 것에 끝이 없는 학문의 세계에서 느꼈을 즐거움과 막막함을 전한다.
도산서당의 방과 마루의 이름에서 겸손함을 배웠다면 구례의 운조루는 힘들어도 괜찮다며 위로해 주는 곳이었다. 구름과 새의 집이라는 단순한 이름으로 알고 있었던 운조루는 도연명의 귀거래사의 구절을 축약해 놓은 것이었다. ‘무심히 피어오르는 구름들 사이로 날다 지친 새가 둥지로 돌아온다.’는 시구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공포감에 휩싸인 새가 날개를 쉴 새 없이 퍼덕이는 모습이 그려졌다. 새를 힘겹게 하는 것은 실제 하는 고난이 아닌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막막한 기분을 느끼며 어떻게든 쉼 없이 일하려 애쓰는 나를 보는 듯했다. 그런 내게 필요한 것은 엄습해 오는 불안감을 무심히 피어오르는 구름을 보듯이 보내줄 수 있는 의연함이었다. 나를 짓누르고 억누르다가 결국 지쳐 나가떨어지게 만드는 것은 조바심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생각보다 오래 걸리더라도 포기하지 않으면 되었다. 힘들 땐 쉬어가며 계속 살아내면 된다는 위로를 운조루를 알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에게 해줄 수 있게 됐다. 도연명의 시를 읽은 뒤로 힘들 때면 무심히 피어오르는 구름을 떠올리게 되었다. 허상과 같은 고통을 구름이라 생각하면 짓눌렸던 무게가 좀 가벼워졌다. 구름처럼 언젠가 지나갈 일이라는 믿음으로 견뎠다. 그게 언제라는 보장은 없더라도 결국 지나간다는 믿음은 큰 힘을 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구름이 걷히길 바라며 매일 열심히 날아오르는 것이라는 사실이 삶을 명료하게 했다. 무리하지 않으면서 최선을 다해 날고, 지치면 둥지로 돌아와서 쉬는 것이 삶이라는 가르침은 매일의 날갯짓에 두려움을 덜어 때론 높이, 오래 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주렴계를 알게 된 것은 향원지를 공부하면 서다. 불교의 꽃으로 유명한 연꽃을 군자의 꽃으로 둔갑시킨 사람. ‘내가 연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라고 다시 제목을 지어보는 주돈이의 애련설은 한국 정원 곳곳을 연꽃으로 물들게 했다. 물이 고여있는 것을 흔히 연못이라 부르지만 실은 연꽃이 핀 못을 그리 부른다는 것을 보통은 모른다. 연꽃 향기를 취한다는 이름의 다리, 취향교와 정자의 모양을 연꽃으로 만들어버린 부용정, 그냥 애련정도 있다. 주렴계가 한국 정원에 미친 영향력은 단순히 정원을 연꽃으로 뒤덮은 것뿐 아니라 사람 자체가 정원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소수서원 입구의 경렴정은 볕 경에 주렴계의 렴자를 써서 주렴계의 뜻을 밝게 비췄고 소쇄원의 제월당과 광풍각 역시 주렴계의 별명을 따와 지었다. 주희가 스승으로 삼을 만큼 뛰어난 성리학자이자 시도 잘 짓는 난사람 정도로 생각했던 주렴계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은 친한 친구 황정견의 시 때문이었다. 게으르게도 비 개인 후 밝게 뜬 달과 부는 바람이라는 뜻의 ‘제월’과 ‘광풍’이 있는 시의 첫 구절만 알고 있다가 어느 날 시 전체를 읽어보았다. 뒷 내용은 훌륭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내용이었는데 마지막 구절을 읽고는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참 드물게 볼품없었으나, 오히려 벗들은 오랫동안 그를 가까이하였다.’
루어희세이상우천고 陋於希世而尙友千古
(출처: 송서宋書 주돈이전편周敦頤傳篇, 황정견黃庭堅, 작가 재해석)
스스럼없이 볼품없다고 할 정도로 두터운 친분이 느껴지는 표현 뒤로 애정과 존경이 가득하다. 볼품없더라도 오랫동안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이라는 표현은 두고두고 생각해도 누군가를 향한 최고의 찬사인 것 같다. 가진 것이 많아서, 얻을 것이 있어서 가까이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있으면 그저 좋아서 오랫동안 가까이 있고 싶은 사람이란 나와 가장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지적하기 좋아하고, 남의 말이라고 하면 귀를 닫고, 자기 잘못은 죽어도 인정하지 않았던 내 옆에 있어준 가족과 친구들이 고마웠다. 그들에게 주렴계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니 그런 찬사를 듣고 싶었다. 오래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이라는 것은 그만큼 부럽고, 욕심나고, 결코 가질 수 없는 품성이었다.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그래도 주렴계를 닮으려 애써보며 살자는 생각 정도는 품을 수 있었다. 정원에서 배운 단어들을 하나씩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유독 한 단어만큼은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거부감이 컸다. 읊을 영詠과 돌아갈 귀歸는 독락당, 무기연당, 소수서원, 서석지, 양동마을 등 한국 정원에서 자주 등장하며 인기 있었다. ‘영귀’는 공자와 제자들의 에피소드 중 하나이다.
공자의 제자들은 세상에 새로운 해답을 찾고자 그를 따르고 있었다. 글러먹은 세상과 달리 정의로운 나라를 꿈꾸는 이들에게 공자는 많은 깨우침을 주었다. 아마도 제자들은 평소 공자에게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향한 울분을 많이도 토로했던 것 같다. 어느 날 공자가 질문을 한다. 만약 너희에게 꿈꾸는 리더가 나타나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테니 실현하고자 하는 바를 맘껏 펼쳐보라고 한다면 뭐라 답할 것인지. 평소에 뜨거운 꿈을 꾸고 있던 제자들은 서슴없이 대답했다. 군사를 강화해 강인한 나라를 만들겠다거나 백성들이 모두 풍요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등 가장 큰 포부를 쏟아낸다. 모두 훌륭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칭찬하며 거문고를 켜며 딴청 피우고 있는 제자 증점에게도 대답을 해보라고 한다. 그의 대답에서 영귀란 말이 탄생했다.
“저의 꿈은 소박합니다. 어느 저물어가는 늦봄, 깨끗한 봄옷 갈아입고, 좋아하는 친구 대여섯 명과 어린아이 예닐곱 명과 손잡고 물가에서 멱 감고, 정자에서 바람에 몸 말리고, 저녁에 시 한 수 읊으면서(읊을 영詠) 집으로 돌아가는(돌아갈 귀歸) 것입니다.”
[p75, 고전의 대문, 박재희, 김영사 인용]
생소한 대답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데 공자는 나도 같은 생각이라며 동조하고 이야기가 끝이나 충격에 빠졌었다. 봄, 친구 대여섯, 어린아이 예닐곱, 시를 읊는 것, 손잡고 돌아오다는 것이 무엇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공자를 비롯한 제자들이 그토록 학문에 정진했던 것은 오직 큰 이상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는데 지극히 개인적으로 느껴지는 꿈이 맞다며 스승의 동의를 얻으니 어처구니없었다. 뭐 대충 대단히 무엇을 이루는 것보다 소중한 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제일이다 정도로 해석되었다. 단순한 인생의 진리처럼 보이지만 굳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게 해 준다는 좋은 기회를 그렇게 날려버린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더구나 이상적인 세상을 만들고자 긴 시간 떠돌아다닌 공자의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 더욱 그렇게 만들었다.
성취중독, 인정중독자이기에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에 특히 어려움을 느꼈다고 생각한다. 매일 조금이라도 발전하지 못하면 나 자신을 좋게 봐줄 수 없었다. 장기 플랜에서는 더 심각했다. 거의 이루지 못할 법한 목표를 세우고 자신을 혹사시켰다. 긴 터널을 지나 마침내 이루었을 때의 기쁨은 잠시 뿐, 또다시 이루지 못할 목표를 찾아 나섰다.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괴로워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혹사하느라, 혹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는 목표를 찾느라 괴로웠다. 과거형으로 성취중독자였다고 하지만 현재형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적어도 이제는 스스로 성취중독, 인정중독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됐다. 오래전부터 뭔가 잘못됐다는 것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이 길의 끝은 대단히 성취를 한 후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깔보거나, 막대한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원하는 성취를 이루지 못한 울분을 세상을 향해 쏟아내는 고약한 사람이 되던지 둘 중 하나였다. ‘영귀’에 대한 의문을 오랫동안 끌어안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결국은 그렇게 됐을 것이다. 한국 정원을 공부하지 않았어도 이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을지 자신 없다.
누군가 내게도 같은 질문을 한다면 무슨 대답을 할지도 생각해 보았다. 나 역시 우리나라 문화유산 복원관리 실태에 울분을 터트려왔었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청사진을 내놓으라고 한다면 자신 있게 나가서 말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무엇이 부족하고, 채워야 하는 것인지 깨달았다. 친구 대여섯은 어떤 일이든 혼자 이룰 수 없다는 것, 함께 부를 노래는 같은 이상향을 추구하는 것, 깨끗한 봄 옷은 제대로 된 보상이 필요하다는 것, 어린아이 예닐곱 명은 우리 때에 다 해내지 못한 일을 이어나갈 뒷 세대를 키우는 것을 뜻이라고 해석해 본다. 나의 때에 모든 것을 이루어야 한다는 욕심 없이, 함께 걸어가는 것으로 만족해하며, 돌아갈 집이 있음에 감사하며 사는 것을 다시 한번 정원을 공부하지 않았어도 깨달을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겸손과 위로,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따뜻함과 방향성을 정원을 공부하며 배웠다. 그렇게 정원에서 인생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