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조루 대문 앞 평상에 허리 구부정한 어르신이 앉아계셨다. 대문 옆으로 ‘입장료 500원’이라는 팻말이 보였다. 카드로 모든 계산을 하며 기를 쓰고 현금을 만들지 않으려 한지 오래된 내게 500원이라는 동전과 하루 종일 앉아 있을 무료한 시간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국가유산법상 입장료는 소유자의 권한이다. 해외 다른 나라 고택이나 정원의 입장료를 떠올리며 말문이 막히게 하는 500원과 구부정한 허리가 속상했다. 1000원이면 1000원이지 500원이 뭐냐며, 당장 올리시라 하고 5천 원을 쥐어 드렸다. 그러자 노상에서 밤을 팔고 있는 할머니들께 잔돈을 얻어 돌아오셨다. 그 후로도 운조루에 갈 일이 많았다. 소쇄원을 갔다가 방문하기 적당한 거리에 있어서 1박 이상의 일정이 잡히면 소쇄원 다음은 운조루였다. 우리나라 최고의 정원답게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아 잘 관리되고 있는 소쇄원과 달리 운조루의 모습은 갈수록 쇄약 해져가더니 이제는 집의 절반이 잡초밭으로 변했다.
오래전 한국 정원의 가치를 알리겠다는 취지로 행사를 기획했었다.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는 게 우선이었다. 서울에 있거나 대중교통으로 어렵지 않게 닿을 수 있는 장소여야 했다. 그래야 많은 사람이 신청하고 행사를 준비하기에도 용이했다. 서울에 있는 좋은 정원들은 소유주가 개방을 원치 않거나 기업이나 지자체 소속이어서 불가능했다. 경기권으로 영역을 확대해 유명하지는 않더라도 원래의 모습을 잘 유지한 곳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군포에 있는 동래정씨종택을 만났다. 대문 밖으로 나와 있는 사랑채 누마루는 연못을 향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마당엔 화분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안주인의 손길이 느껴졌다. 안채 뒤 사당과 화계까지 민가의 기본 구성에 충실하고 사람이 살고 있어 잘 관리되고 있는 좋은 곳이었다. 마당에서 나누던 대화는 안채로 이어졌다. 얼마 전 고택을 문화유산국민신탁에 기증하시게 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본인들은 이 집에서 나고 자라 애착이 있지만 후대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걱정이 있으셨던 와중에 군포시의 도시개발사업이 진행되었다고 했다. 고택 인근에 부는 부동산 바람에 욕심이 들어 고택을 팔기로 마음먹는다면 100억 원대의 이익이 발생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고민을 본인대에서 끊어내기로 형제들이 마음을 모아 신탁에 기증했다고 하셨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보이던 수리산 동쪽의 산세와 갈치저수지에서부터 빼앗겼던 마음은 어르신의 말씀을 들으며 간절해졌다. 따뜻한 차를 얻어마시며 행사의 취지를 말씀드렸다. 고요한 삶이 시끄러워지는 것에 대한 우려, 많은 사람의 방문에 귀찮아질 일들을 걱정하시면서도 화장실이 신식이라 좋을 거라며 고택을 지켜온 자긍심과 예상되는 불편함 사이에서 고민하셨다. 긴 설득의 과정 끝에 고택 전체적으로 손봐야 할 곳들을 다듬고 안마당에 작은 정원을 조성하는 것을 조건으로 행사를 허락받았다. 그렇게 ‘고택정원 낭만산책’이라는 이름으로 갈치저수지를 한 바퀴 돌며 고택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고, 티타임과 음악회 및 시낭독회로 구성된 행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행사는 성공적이었지만 수익성 사업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당시에 국가에서 지원받은 사업비로 진행한 행사여서 가능했지 지원비 없이 상품으로 개발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사실 수익성이 없다는 것은 이미 짐작했었지만, 한국 정원에서 이뤄질 수 있는 프로그램의 가능성을 검증해보고 싶었다.
후에 연구차 방문한 일본의 무린안無鄰菴에서 이상적인 모델을 발견했다. 우에야가토 조원주식회사(植彌加藤造園株式会社)는 우리나라로 치면 국가유산 조경수리업체이다. 우에야가토는 무린안을 교토시로부터 위탁받아 운영 및 관리하고 있었다. 수시로 관리를 해주지 않으면 금세 변해버리는 정원의 특성상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아 관리가 어려워진 정원 유산을 문화유산 수리 전문 업체가 상주 관리하며 정원문화를 알리는 활용 프로그램까지 운영하고 있었다. 무린안에 졸졸 흐르는 냇물 소리를 들으며 전국에 쇄락하는 고택들과 아무도 관리하지 않아 방치하다시피 버려진 한국 정원들이 떠올랐다. 여름이면 연꽃이 번식하다 못해 뒤덮고, 연꽃이 지고 나면 흐르지 않아 녹조 낀 더러운 물, 그마저도 없이 메말라 있는 수공간들은 무린안과 너무나 비교되었다. 우에야가토 조원주식회사의 대표인 가토 도모키(加藤友規)씨는 무린안의 옛 사진을 가져와 하나도 바뀌지 않은 정원의 모습을 설명했다. 일본이 정원에 들이는 정성과 문화적 자긍심을 느끼며 부러움이 가시처럼 가슴을 따갑게 후볐다.
오랜만에 인사드릴 겸, 행사하며 미처 다 가져가지 못한 짐을 찾으러 군포로 향했다. 오랜만에 방문한 종택의 연못 모습이 이상했다. 민가에서 보통 방형의 못을 만드는데, 원형의 못은 누가 봐도 복원이 아니라 새로 만든 어색한 형태였다. 자초지종을 물으니 자신도 어려서 본 연못의 형태는 방형이라 하였고, 공사 시작하며 땅을 파니 방형의 못이 나왔는데도 설계 도면이 원형이니 어쩔 수 없다며 그대로 진행되었다고 하셨다. 안채의 화계를 공사할 때도 고즈넉한 옛 돌은 온대 간대 없이 사라지고 거칠게 가공된 저렴한 돌을 쌓아 원래의 모습을 잃은 것도 억울한데 사랑채 누마루 열고 보이는 못의 모습까지 저지경이 되었으니 고택을 지키고자 했던 어르신의 마음에 상처가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언론에 이 사실을 알려 기사 하나 작성하는 것 정도였다.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한동안 마음이 아팠다. 이후 소쇄원 담장 부실 공사 사실을 접했을 때도 우울감에 시달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한국 정원의 가치를 많은 이들에게 알리는 것 밖에 없었다. 언젠가 그런 날, 정원을 설명하며 문화적 자긍심을 느끼고, 전문적으로 유지관리 되며, 제대로 복원된 정원유산에서 많은 이들이 우리 문화를 향유하는 그런 날이 오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