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시작

전 세계를 방황하겠다는 무모한 계획

by 월하랑

한국 정원에 대한 교육 콘텐츠를 만드는 의뢰를 받고 교육 전문 영상 제작 업체와 소쇄원, 남간정사, 명재고택을 다녀왔다. 정원의 표면적인 내용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 사이의 간극은 학술적인 것과 개인 감상의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예술과 학문 사이의 간극, 주관과 객관의 간극을 어떻게 매울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미학과 고고학 분야를 기웃거려 본다. 미술 분야 비평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고고학에서는 아주 작은 단서를 가지고 어떻게 역사적 사실을 규명해 내는지 그에 대해 학계 전반의 합의는 어떻게 도출되는지 그것이 궁금하다. 정원 역사의 영역은 여전히 사실 나열 그다음 단계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직접 정원에 가서 힘들게 영상을 촬영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았다. 사실 나열 그 이상은 불가능했다.


이런 답답함에서 벗어나고 싶다. 학계에 몸담고 있어 본 적도 없지만, 앞으로도 몸담지 않는다면 나는 공공의 영역에서 자유롭게 내 감상을 기술하면 된다. 하지만 같은 업계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허탈함 역시 감당해야 할 몫이다. 그렇게 책을 출판했고, 내게 책 출판은 한국 정원과의 안녕을 의미했다. 이제 그만 놓아주고 싶은 마음, 10년 가까이를 끌어안고 고민해 온 한국 정원을 제대로 정리해서 보내주고 싶은 마음으로 책을 출판했던 것이다. 그다음으로 나가기 전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예의를 갖춰 보내주려던 마음..


이다음은 무엇일까? 이제 홀가분하게 한국 정원을 놓아줄 수 있다. 책을 쓰고 있을 때는 한국 정원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 해외에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 정원의 의미들을 전하며 살고 싶었다. 전 세계 각국에 있는 한국문화원에서 정원 문화를 소개한다던가 하는 방식으로.. 그런데 한국 정원을 알리는 의미가 무엇이지? 괜찮은 엔터테인? 개인으로써 한국 정원의 위상을 높인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위상을 높인 이후의 결과에도 자신이 없다. 중국처럼 활성화된 관광지가 된다면 위상이 낮은 것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 일본처럼 여유와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문화유산을 대한다면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행정에서 관심을 갖게 되면 왜곡되고, 관심을 갖지 않으면 방치되고 두 가지 외에 다른 방법론을 본 적이 없어 회의적이다. 내가 너무 부정적일 수도 있지만..


정부차원의 변화를 기다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 시간에 나는 내 인생을 살고 싶다. 결국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한국 정원을 공부하는 방법은 다양했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내면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글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나만의 방식으로 정원을 감상했고, 다행히 공감을 얻어 책으로까지 나왔다.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방식이 어쩌면 글로 써서 누군가 읽을 만한 일이라는 자신감을 이번 책을 쓰며 깨달았다. 정원은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방식을 내게 안겨주었다. 공간에 담긴 여러 뼈들을 느끼며 골똘히 바라보고 글로 쓰는 삶. 그것을 하고 싶다. 내 시각은 무척 한정적이다. 한국 정원에 한정해서 날카롭게 발전했다. 하지만 한 가지 대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연습은 하나의 무술을 익히거나 언어를 익히듯 다른 무술과 언어를 익힐 때 도움을 준다. 이제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 그렇게 다시 마지막으로 한국을 바라보았을 때, 또 다른 생각을 제안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 본다.


동양과 인도를 지나 중동을 거쳐 터키까지 이어지는 대륙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예술은 하나의 흐름에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발전했다. 서양의 고귀한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도 알고 싶다. 왜 인지 모르겠지만 어째서 이런 차이가 발생한 것인지 꼭 밝혀보고 싶다. 세상의 수많은 훌륭한 학자들도 모두 이런 생각을 했겠지만 누구 하나 속 시원한 대답을 하지 않은 것은 왜일까? 내가 잘 알아보지 않은 것일 가능성이 높다. 혹은 아무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영역일 수도 있다. 혹은 답을 할 수 없는 영역이라거나.


전 세계의 공간 문화를 이해해 보겠다는 마음, 동서양의 예술관의 차이의 원인 등, 너무 허무맹랑하고 뜬 구름 잡는 꿈같다. 세상을 이해해보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 그 시작과 근원에 대해 알고 싶다는 갈급함, 그 중심에 있는 개인의 삶에서의 다정함이라는 과제, 어떻게든 살아야 하는 인생이라면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 속에서의 수련들이다. 내 마음을 꽉 쥐고 긴장감을 놓지 못한 채 사는 이 삶은 책을 쓰면, 혹은 무엇을 이루면 놓아줄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결국은 인류를 이해하지 않으면 놓아줄 수 없다는 것으로까지 확장해 버렸다.

해방은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