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첫 학기를 마치며

만 사십에 입학한 대학원기

by 월하랑

책을 출간하고, 전시 기획을 하면서 대학원 1학기 차 생활을 한다는 것은 (여기에 두 아이를 기르는 엄마와 학원 강사라는 정체성까지 더해서)

스스로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겸손해진다는 것이었다.


한 번씩 상상해 봤다. 책 출간하고 대학원 생활 없이 지냈다면 책을 낸 저자라는 생각에 우쭐해있진 않았을까? 처참할 정도로 무지함을 느낀 대학원 생활이었다.

조경학과로 진학했지만, 조경학과에서는 조경사학과 관련된 수업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전멸했을까 싶다. 그래서 지난 10년간 대학원에 진학하지 못하고 혼자서 공부해 왔다. 미학과의 한국예술사상, 건축과의 동양건축사연구 수업을 들으며, 앞으로 어떤 공부를 더 해야 하는지, 얼마나 뒤처진 사고방식으로 생각해 왔는지 알게 됐다. 학기 중에는 미처 따라가지 못한 공부들을 방학동안 차근차근 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과 과연 내 마음속에 생겨난 여러 의문들을 해결할 수 있을지, 그 의문에 대한 대답을 구하는데는 또 얼마나 오랜 시간이 소요될지 두렵기도 하다.


질문을 정리해 보자면,

'왜 서양과 달리 동양에서는 높은 건축물을 짓지 않았는가?'

(이것의 답은 종교건축의 경우 높아졌다는 사실, 영주들 간의 끝없는 전쟁 상황으로 인해 높은 성을 쌓아야 하는 상황일 경우는 일본의 경우 역시 건축이 높아졌다는 것, 하나의 건축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방식과 여러 건축물을 회랑과 마당으로 연결하는 방식이 서양의 단일한 높은 건축물 조성과의 차이이지 않나? 종교와 권력구조가 건축물에 미치는 영향을 설득력있게 정리해보고 싶다.)

'중국의 언어가 인간 간의 소통을 위해 만들어진 다른 언어와 달리 신과의 대화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사실, 이후 주나라 시대 때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사실, 신이 아닌 문자 만이 구원의 길이라는 사고방식과 높이가 아닌 넓이로 건축 공간을 구성한 것에 대한 연관성'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 건축 구조가 고대에서 근대 이전까지 큰 변화 없이 그대로였던 이유'

'야나기 무네요시와 고유섭 시대에서 멈춘 우리의 미학사'

'한국 미학사의 자연미에 대한 재정립 과제는 과연 자연미로 신화화되는 한국조경사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이번 한 학기 동안 들었던 질문을 대략 정리해 보면 건축사는 끝없이 과거와 넓은 영토로 인도했고, 미학사는 정신적 가치와 미래로 이끌었다. 건축사 수업을 들으며 중국의 영토들을 모두 직접 가서 아시아의 건축문명에 대해 알고 싶어졌고, 미학사 수업을 들으며 한국조경을 찬양하는 기존의 전통문화 수용 방식이 얼마나 시대에 뒤떨어진 것인지 경종을 울리고 싶어졌다.


동시에, 학자로서의 역량 부족은 기존에도 알고 있던 것이지만 나 자신의 달란트는 연구된 논문과 생각을 흥미롭고 쉽게 정리해 재미있게 전달하는 데 있다는 것 또한 처절하게 느꼈다.


얼마 전 도서관 강의를 다녀왔다.

강의를 하면서 청중의 눈빛을 느끼며 끝나고 모두 가지 않고 여운을 가지고 이런저런 말씀을 해주시는 것이

나의 학자로서의 부족함을 위로해 주시는 것 같아 마음의 큰 위안이 되었다.

그런 순간들, 정말 좋다며 감동을 받으시는 순간들, 그런 순간이 쉬운 것은 아니다.

에너지가 부족해 사람들을 이끌어가지 못할 때가 있다.

스스로를 배우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항상 같은 내용, 같은 대사이지만

나의 에너지와 상태에 따라서 달라진다.

대부분은 평타의 실력을 보이지만, 그런 날의 마음은 아쉬움으로 가득하다.

그 마음을 달래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과제해야 한다.

책도, 전시도, 대학원 1학기도 끝냈다.

아직 학원 강의, 아이들 방학은 남았지만..

절실히 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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