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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욕월매 May 21. 2022

코로나 격리병동에서 아기를 낳다 (2)

4인실 병상안에서 출산하기 꿀팁

4. 천신만고 끝의 코로나병동 입성


나보다 며칠 먼저 아기를 가진 친한 언니 S가 있다. 생전 처음 겪는 몸의 변화들을 함께하며 임신 기간 내내 든든한 동지가 돼준 S는 며칠 전 출산해 산후조리원에 막 들어간 참이었다. 인생의 꿀팁들을 아낌없이 풀어주는 귀인인 그녀는 가능하면 1인실이 좋다며 남은 병실이 없으면 부인과 등 다른 과에 남는 1인실이라도 들어갈 수 있을거라고 귀뜸해줬다. 덕분에 나도 설레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1인실 자리가 있을까 가격은 얼마일까 등 이런 저런 고민을 하며 기분좋게 김칫국을 마셨던 것이다.


보건소 직원은 조심스런 목소리로 나에게 현재 병실이 4인실 뿐인데 괜찮겠냐며 물었다. (제가 안괜찮으면.. 어쩌겠어요..ㅎ) 선택의 여지도 없이, 남산만한 배를 눕힐 곳이 정해진 것에 감사하며 나는 하릴없이 배정된 병실로 들어갔다. 혼자남은 서글픔에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병실에 도착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변은 생각보다 쾌적했다. 복도에도 나갈수 없는 신세이긴 하지만 좁게나마 샤워를 할수 있는 화장실도 있었고 맨 끝 자리에 배정을 받은 덕에 간이침대와 개인 사물함을 여유있게 쓸 수 있었다. 대학병원인지라 고급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깨끗한 공간과 프로패셔널한 의료진들의 도움으로 지친 나는 조금씩 진정할 수 있었다.


그래도 나름 챙겨온 출산가방을 풀어 세팅을 마쳤다


내가 입원한 곳은 코로나환자들을 위해 마련된 음압격리병동. 병실의 출입문은 유리로 된 자동문으로, 환자들의 출입은 당연히 금지돼있고 의료진들이 드나들때에도 출입증을 찍어야 문이 열린다. 통유리 너머로 밖에서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공간이었지만 그래도 환자들 사이에는 가림막을 쳐 주었다. 신생아실의 아기가 이런 기분일까?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나는 바로 초음파를 통해 아기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 초음파 이후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그 며칠동안 얼마나 많은 생각이 들었던지! 다행히 아기는 건강했다. 엄마, 그런 걱정 하덜 마소! 라는 듯 무던하게 잘 크고 있던 호돌이.. 하지만 한가지 복병이 있었으니, 무려 4키로정도로 보인다는 진단이었다. 전부터 평균보다 조금 큰 아이여서 예상은 했지만 자연분만을 시도하려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걱정되는 크기가 아니겠는가? 이녀석.. 참 잘먹고 잘 자랐네..



5. 자연분만을 하지 말라고요?


곧 이어 회진을 하던 의사가 왔다. 선생님한테야 내가 수백명의 산모중 한명이었겠지만 밤 열두시에 낯선 곳에서 아는 얼굴을 보니 오래전 헤어진 친구를 만난 듯한 감격의 물결이 밀려왔다. 담당의는 다태아분야의 권위자로, 웬만한 쌍둥이는 자연분만으로 받아내는 자분계의 능력자이자 산모의 의견과 안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따뜻한 의사다. 그런데, 그분이 무거운 목소리로 운을 뗐다.


"수술을 해야할것 같아요."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나는 당연히 자연분만을 할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유인 즉, 자연분만중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면 긴급 제왕절개를 하기 위해 수술실로 이동해야하는데 격리병동에서는 물리적으로 그럴수가 없다는 거였다. 특히 호돌이처럼 큰 아기의 경우 자연분만시 긴급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 차라리 안전하게 처음부터 수술실을 잡자는 의견이었다. 마스크에 페이스실드까지 껴서 눈 밖에 안보이는 의사선생님의 표정은 평소와는 달리 근심이 가득해보였다.


코로나 격리병동이 아니었으면 자연분만을 시도해봤을텐데. 하필 임신 40주중에 지금 딱 코로나에 걸려서 이 지경이 됐다는 게 기가 찼다. 몸 안에 평생 지고 갈 출산방식을 내 희망대로 결정할 수 없다니. 스스로가 한심했고, 알 수 없는 이 나라의 방역지침이 원망스러워지기까지 했다. 이제는 건물 출입할때 열도 안재고, 항원검사도 필수가 아니라며 비급여로 바꿔놓더니, 내 코로나만 이렇게 중병으로 취급되는 거요?


평소 네고의 제왕으로 알려진 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번더 간청했다.


"제발.. 자연분만으로 시도할수는 없을까요?"


제발이라는 단어가 간절해보였는지 다행히 의사선생님은 "그렇다면 내일까지 기다렸다가 상황보고 결정하자"며 절반쯤의 여지를 줬다.


그렇게 당장의 수술결정은 보류할 수 있었다. 모두가 떠나고 잘 준비를 하고 침대에 눕자 하루동안 쌓인 피로가 몰려왔다. 메신저로 가족들에게 상황을 전하고 안부인사를 하다보니 어느덧 새벽 한 시.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런데.. 몇분마다 얕은 욱신거림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까부터 잠깐씩 아프다 살며시 사라져버리던 알싸한 느낌이 조금 더 강하게, 주기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잠이 슬몃 깨버렸다.



'이게 뭐지... 졸린데 너무 아파... 이게 진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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