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나무들이 흐드러지게 꽃 피울 준비를 하는 계절. 대망의 출산 예정일은 3월 말일이었다.
호돌이는 뱃속에서부터 순한 아이였다. 입덧기간에 있었던 약간의 메슥거림은 냉면정도로 해결이 되는, 남들에 비하면 티도 안날 정도로 얌전한 것이었고 한번쯤 있을법한 특이한 증상도 없었다. 한가지, 초음파에서 평균보다 몸집이 야악간... 아주 약간 크다고 한 것이 30주쯤 이었나.
하지만 예정일이 돼도 아기는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초산모 출산일이 며칠 늦어지는거야 흔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아기가 큰 편이라 불안한 마음이 앞섰다. 자연분만을 하고 싶었던 나와 자연분만을 적극 응원하는 의사선생님은(성향에 따라 제왕절개를 푸시하는 의사/병원들도 있다) 차주에 유도분만을 일정을 잡으며 그 사이에 자연진통이 걸리길 기대하기로 했다.
그런데 역시나. 사람 일이 그렇게 마음대로 되면 재미없어 빙고. 유도분만일 전날까지도 아기는 아무 소식이 없었다. 기한을 너무 넘기면 아기가 잘못될까, 자연분만이 어려워질까 하는 걱정에 마지막 날에는 속상해 울면서도 개구리 자세 등 순산 요가동작을 열심히 따라했던 것이다. 아이와 관련된 일에서는 절대 초연해질 수 없을거란 걸 이때 어렴풋이나마 느꼈다.
그러던 중 덜컥 기침과 미열 증상이 시작됐다. 컨디션도 좋지 않고 코로나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어 당장 분만은 무리라고 판단, 하루 더 유도분만일자를 늦췄다. 결국 분만예정일로부터 꼭 일주일 뒤인 목요일로 날이 잡혔다. 이와중에 아기의 새 사주가 마음에 들어 안심한 to be 초보엄마.
유도분만일에는 미리 PCR 검사 음성 결과지를 준비해서 점심 즈음에 입원을 해야한다. 한편 이 검사를 당일 오전에 병원에서 받을 심산이었던 나는 검사결과를 받기까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걸 간밤에 깨달아 버린 것이다. 어쩔수 없이 다음날 아침 최대한 이른 시간에 병원에와서 빠르게 검사를 한 후, 집에 돌아가 쉬다가 두 시경에는 병원으로 다시 돌아왔다.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는 머릿속에 불안감이 스쳤다. 혹시 지금 증상이 오미크론이면 어쩌지?
PCR 검사 시행 후 약 7시간만인 오후 4시 경에 문자를 받았다.
결과는 양성..!
이를 어쩌나. 미리 알아본 바에 의하면 진통이 시작되거나 양수가 터지는 등 산모의 출산이 임박한 긴급상황의 경우 일단 병원으로 달려오면 된다. 코로나 검사는 그 다음 문제다. 하지만 입원"예정"인 환자가 코로나 양성이 뜨면 관할 보건소에서 지정해주는 격리시설이 있는 병원으로 출산을 하러 가야한다. 이제껏 담당해온 주치의가 없는 엄한 곳에서 아기를 낳아야하는 것이다. 아니... 그게 문소리에요?
물론 세상의 모든 병원에는 훌륭한 의사선생님들이 많겠지만 갑자기 수술 당일날 의사와 병원을 바꾸라고 하다니 아니 이게 될 말인가!
불행중 다행으로 내가 다니는 서울대병원은 코로나 지정 병원이었다. 10분 진료에 두시간 기다림은 디폴트로 환상적으로 긴 대기라인을 자랑하는 곳이었지만 큰 병원인 점이 이럴땐 다행인 셈이었다. 병원에서는 격리 병동에 현재 자리가 여유가 있고 담당 교수님이 내 출산을 담당해줄 수 있으니 관할 보건소에 사정을 말하고 이곳으로 병상을 배정받는 절차는 내가 직접 진행해야한다고 했다. 한마디로 우리동네 보건소에 연락해 나를 서울대병원으로 오늘 입원할 수 있도록 직접 부탁해야하는 것이다.
아니 이게 문소리인지.. 보건소에 연락이 닿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거지? 내가 만약 무슨 일이생겨서 오늘 연락을 못하면? 내가 한국말을 못하면?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아리송한 행정이지만 당시에는 그런걸 따질 정신이 없었다.
온 가족이 동원되어 병원이 위치한 종로구 관할 보건소, 지금 사는 강남구 보건소, 주소지 이전하기 전인 분당구 보건소에 연락을 취했다. 시부모님은 강남구 보건소가 문 닫기전에 직접 가서 처리하신다며 한걸음에 달려가셨고 남편은 직접 병원에서 종로구 보건소로 향했다. 나는 함께 병원에 온 엄마에겐 상황을 설명할 시간도 없이 정신없이 이곳 저곳에 전화를 돌렸다. 하지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쩜 이렇게 전화를 연결하기도 어렵고 안내도 안되어있는지.. 코로나가 긴급상황이라 시스템이 미비한건 이해하지만 아예 연락처 자체가 먹통인 분당구 보건소는 내 기억하리다.. 어쨌든 가장 먼저 간신히 담당자 선에까지 닿을 수 있었던 건 나였다.
전화안내시스템이 형편없다는 점을 제외하면 분당구 보건소의 서비스 자체는 훌륭했다. 관계자는 늦은 시간까지 전화로 열심히 나와 서울대병원을 연결해줬다. 결국 입원이 허락됐고 격리병동에 입실하도록 지정된 시간은 밤 9시 경. 격리병동에는 별도의 안내를 받아 정해진 시간에만 들어갈 수 있었고 본인 이외에는 그 어떤 보호자도 들어갈 수 없었다. 몇 주 동안 함께 유튜브 동영상을 보며 출산과정을 준비해온 남편은 황망하게 서있는 나를 안아주며 위로했다.
앞으로 일주일간 격리병동에서 자가격리를 해야한다고 하니 입원 전 병원 지하에 있는 편의점에서 간식과 음료수 등 필요한 물건을 샀다. 산모용 안심깔개, 티슈도 샀다. 보통 편의점 쇼핑은 꽤나 행복한 것인데, 그렇게 울적한 편의점 쇼핑이 또 있을까? 나는 이제 혼자 모든 것을 해내야하는 것이다. 아침까지만 해도 입원이라는 것 자체가 처음이라 떨린다고 했었는데 그건 배부른 고민이었다. 난생처음 아기를 낳으러 왔는데, 아기가 커서 자연분만을 할 수 있을지가 걱정인 와중에, 코로나에 걸렸다니. 한밤중에 나홀로 산부인과가 아닌 격리병동에 들어가야한다니.
낮시간동안에는 늘 북적이던 대학병원의 지하 아케이드도 문을 닫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해진 병원 캠퍼스에는 가로등 불빛이 처연했다. 건물 정면에서는 보이지 않는 작은 쪽문이 격리병동 입구였다. 그 앞으로 가자 정장을 입은 안전요원 둘과 진료실에서 내려온듯한 의료진이 나를 안내했다. 자동차로 옮겨온 짐을 남편에게서 건네 받아 이리 저리 맸다. 홀로 남은 나는 눈앞이 깜깜했지만 이제 병실로 들어가 환자복으로 갈아입는 수 밖에 없었다. 캐리어를 끌며 걷는 한걸음 한걸음이 서글프고, 외로워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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