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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공이 Apr 22. 2019

고풍스러운 서점에서 산 수상한 포르투갈 책

언어 몇 마디가 가진 ‘빵 터지는’ 힘

 포르투갈의 인기 여행지 ‘포르토’. 책을 사는 사람보다 책을 구경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렐루 서점’에 방문했다. 서점 내부는 바깥에서 빼꼼 들여다볼 때보다 훨씬 멋졌다(입장권을 5유로 냈다는 사실이 렐루 서점의 아름다움을 배가시켜 주었을지도 모른다). 다소 삐걱이지만 중후하고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나선형 계단과 끝도 없이 놓여 있는 책들, 고개가 아픈 걸 기꺼이 감수할 만한 예쁜 스테인드 글라스.

 한없이 내부 구경을 하다 책에 시선을 돌렸다. 책을 사게 된다면 5유로 입장권은 바우처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기필코 뭔가 사 가겠다는 마음도 조금 있었다. 몇 가지 마음에 들었던 책 중에 유독 인상 깊었던 책은 포르투갈어 ‘슬랭귀지(슬랭+랭귀지)’.

표지 보며 그린 그림.

표지의 빗과 소 그림만 봐도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지 않은가? 포르투갈에 왔는데 여태 ‘올라(안녕하세요)’, ‘오브리가-다(감사합니다)’만 말하고 있다는 게 좀 아쉬워서 책을 집어 들고 계산대로 갔다.

 계산대의 직원은 나와 책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말했다.

 “그 책이 진짜 쓸모가 있는지 그동안 내내 궁금했는데. 거기에 있는 말 좀 해 줄 수 있어?”

 더 이상 행복할 수 없었다. 나 또한 매우 바라던 바였으니.

- 꼬무스타(인사): 성공. 점원이 옆 점원을 부른다.

- 떼념분디아(좋은 하루 보내세요): 세 명 모두 웃음이 터졌다.

 더 하고 싶었지만 민폐일까 싶어 그만하려고 했었는데, 나보다 더 신이 난 듯한 점원이 계속 더 말해보라고 해서 세네 개의 표현을 더 연습하고선 기분 좋게 서점을 나왔다(점원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영어 부분뿐 아니라 포르투갈어로 쓰여 있는 부분도 열심히 참고했다. 어떤 건 영어로 바꿔 놓은 게 더 어려웠다!).


 누군가와 포르투갈어로 이야기를 해 보겠다며 이 책을 들고 호스텔 로비에 앉아 있기도 했지만 꼭, 포기하고 책을 놓고 나왔을 때만 포르투갈어 하는 사람이 나타나서 책을 통해 대화하는 건 결국 실패. 하지만 서점에서 봤던 두 문장을 익힌 덕분에 포르토에서의 4일이 더 풍성해졌다. ‘오브리가-다’ 뒤에 수줍게 덧붙인 ‘떼념분디아’에 많은 사람들이 환한 미소와 인사로 화답해 주었다. 낯선 이방인의 노력과 서툰 모습에 약간은 ‘무장 해제’를 한 느낌이었다.


 방 책꽂이 한 구석에 무심하게 던져져 있던 책을 꺼내 보니 포르투갈에서의 따뜻한 기억이 되살아난다. 솔직히 이 책으로 회화 공부를 하는 게 쉬워 보이진 않지만, 현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며 폭소하기에는 이만한 책이 없는 것 같기도. 혹시 제작의도가 그런 건데 나만 이제 안 건가? 이 책 시리즈 아직 한국판 안 나왔던데.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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