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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공이 Jul 25. 2023

정당하고 안전하게 가르치고 배울 권리를 위하여

지켜주지 못한 막내를 추모하며

나의 직장을 밖에서 만난 사람들한테 가급적 알리지 않는 편이었다.


나의 개인적 특성을 ‘역시 선생님이라’ 그렇다고 쉽게 단정해 버리는 사람, 뭐 얘기만 하면 ‘선생님이 그러면 안 되지~‘란 말을 남발 하는 사람, 힘듦을 토로해도 ‘그래도 방학 있잖아~’, ‘그래도 애들 가르치는 거라 좋겠다, 부러워.’, ‘그래도 연금 받잖아.’, 와 같이 반응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사랑해야지, 그래도 메리트가 있다잖아, 회사가 훨씬 더 힘들다잖아,


내가 마음을 굳게 먹어야 되는 거야, 신경 안 쓰고 해야 하는 거야, 애들도 학부모도 다 사람 봐 가면서 하는 거야,


와 같은 생각으로 나의 분노와 아픔을 차단하면서

어느새 11년 차가 됐다.



그동안 겪은 말, 말, 말(중 꽤 일부)



- 선생님, 이거 해서 얼마 벌어요?(나는 진눈깨비 속에서 문경까지 가서 스카우트 지도를 하고 있었다)


- 우리 엄마가 선생님 돈은 별로 못 번댔는데.


- (20분간의 다정한 생활지도 이후) 쉬는 시간이 날아갔어요. (학교에 장난감 칼이 안 된다고 하자) 학교가 개 같네.


- 선생님, 우리 애가 제가 경시대회 준비 숙제 검사를 하니까 잘 안 하네요. 선생님이 문제집 좀 매일 검사해 주세요. (어벙한 신규, 해 줬다.)


- 우리 남편은 서울대 나와서요. (비록 지역 균형 전형이었지만 나도 서울대 썼는데. 수시 서울대랑 연대만 썼는데. 괜히 재수 안 하고 정시로 교대 갔나.)


- (오후 6시 30분, 따끈한 밥 한 숟갈 뜨려고 할 때) 선생님, 우리 애가 다른 애들한테 좀 치이는 것 같아서요. ~ 30분 ~. (아이는 치이지 않았고 내 밥은 식었다.)


- (오후 8시) 선생님, 우리 애가 열이 나네요. 어떡하죠?(ㅠㅠ저보단 학부모님께서 도와주실 수 있는 게 많을 것 같아요)


- 선생님이 애를 잘 안 보셔서 그런 거잖아요!!

(본인들 자리에서 갑자기 친구한테 달려들어서 손톱으로 할퀴는 그 찰나를 제가 어떻게 막을 수 있었나요)

.

.




 아닌 사람들이 훨씬 많지만,

어떤 학생과 학부모에게는 나의 전문성이나 인권(나에 대한 예의, 나의 휴식시간은 존중과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11년 차인 지금도 오후 늦게나 주말에 날 선 메시지나 민원(우리 애가 쓴 글에 다른 애가 나오는데 그게 ~~~~, 우리 애 그림은 왜 없나요~~, 주말에 우리 애랑 다른 애랑 싸웠는데 이건 아닌 것 같아 연락드립니다, ~~ 등등)을 받고 있고, 올해는 처음으로 학부모가 나의 말 서두를 오해 해 나에게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며 관리자에게 나의 치부를 낱낱이 고하는 경험까지 하였다.


 지금도 밖이나 우리 집에서 만나는 제자들이 있고 결혼식에까지 와 준 학부모님과 학생이 있는, 나름 학생 학부모와의 관계에 자신이 있어온 나였는데, 그렇게 학부모와 날 선 상황이 생기자 그 상황 자체로 인해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았다. 그동안 자만했던 거다. 생각보다 남에게 공격당하는 건 신체적이지 않아도 엄청 아픈 거였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신체적인 것보다 더 내상이 컸다. 결국 다시 한 통화에서 누그러지며 진작 그렇게 말해주셨으면 오해를 안 했을 거라며, 고생하신다며 전화를 마무리했지만, 한동안 나는 교직 자체에 대한 회의와 학생에 대한 불신(내가 잘못한 걸 그렇게 하나하나 기억하고 누군가에게 험담을 했구나) 등이 겹쳐져 의욕 없는 생활을 했다.


되돌아보면, 초임 때부터 대학원을 간다 대학교를 다시 간다 마카롱을 만들겠다 정신과의사가 되고 싶다 등등 많은 방황을 했던 이유 중에 하나는


내가 여기서 운이 한 번 안 좋으면


한 번 삐끗하면 이 직장에서 불명예스럽게 퇴직하거나


내가 아파서 직장을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난 서이초에서의 비극 이후, 그 범생이 같고 순하고 순응적인 교사 집단에서 심상치 않은 바람이 불고 있다. 적극적인 추모 행렬과 시위에 이어(예전엔 시위라는 것 자체에 대해 걱정과 두려움이 사람들이 많았음) 파업까지 준비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다행히 그 정도까지의 악성 민원은 들어보지 않았지만 그 상황에 대해 텍스트로 접하기만 해도 내가 겪은 자괴감과 낙담, 분노와 억울함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선생님의 비탄과 고통이 심했을 거라는 걸 안다.


 그리고 비단 서이초 선생님뿐만이 아니라, 생을 달리 한 선생님, 심심찮게 정신과 진료를 받고 휴직을 하고 있는 지인들, 하루에도 몇십 번씩 같은 지도를 반복하지만 그것이 통하지 않는 답답함과 분노를 견뎌내는 우리 모두가 이 상황을 인내하고 인내하다 터져버린 것 같다.


선생님이 이렇게까지 고통받으실 수 있다는 걸 생각했다면

우리가 그저 참고 그저 힘내라고 서로를 위로하지 말았어야 했다.

하라면 그저, 그것도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지들 말았어야 했다.

.

.


아무튼

우리의 목소리가 정치 이념이나 특정 집단에 이용되지 않고, 침소봉대 대책으로 묻히지 않을 수 있도록 이번엔 나도 힘을 열심히 보태고자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상황을 알아주었으면 해서 포스터(?)를 만들어 보았다. 부족한 솜씨지만 우리의 메시지가 잘 전달되면 바랄 것이 없겠다.


누구든 자유롭게 활용하고 수정하고 배포해도 좋다.

(아마... 나만 쓸지도 모른다)


이번 비극 이후에 교사들은

작은 일부터 큰 일까지 자발적으로 열심히 해내고 있다.


지난주 토요일 시위도 노조가 아닌 한 교사가,

이번 주 토요일 시위도 다른 한 교사가 신청했다.


이주호 장관께서 약속하신 대로 8월에 나올 종합 대책들에 우리 교사들의 목소리가 꼭 반영되었으면 좋겠다.


더 이상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시끄러운 교실에서 귀가 아파하고, 누군가와 짝이 되어 하루에 두 번씩 울고, 매일 매 교시마다 귀중한 수업시간을 빼앗기는 우리 학생들을 생각해서라도


나는 어설프고 내가 하는 행동은 약간 멋이 없는 그리고 게으른 사람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별로든 괜찮든

열심히 하기로 마음먹었다.


서툰 솜씨로 만든 포스터.

누구든 널리 활용하고 배포하고 수정하고 가공해 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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