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피부터 시작해서...
딸내미라서 그런지 그렇게 힘들지도 않았고 어렵지도 않았던 것 같던 지난 10달.
어느샌가 우주는 우리 품속에 안길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예정일이었던 2024년 2월 27일 저녁. 기본적인 고통은 간격이 좁아드는 듯 계속 반복되었는데, 신기하게도 큰 고통은 없고 잔잔한 미동만 느껴지는지 걱정되기도 했다. 그러다 2024년 2월 28일 새벽 12시가 되니 갑자기 양수가 터지기 시작했고, 양수의 색깔은 기대 이하로 이상해서 담당 미드 와이프에게 급하게 전화를 해서 물어봤다. 아기는 나오고 싶은데 쉽지 않은 상황인 것 같으니, 바로 병원으로 이동하라고 통보를 받게 된다.
준비해 둔 준비물들과 이것저것 급하게 챙기곤 택시를 불러서 자기랑 엄마랑 같이 택시에 몸을 싣고 달렸다. 양수가 터지는 바람에 양수는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고, 기사분께 너무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는 큰 수건 위에 앉아서 병원으로 돌진.
신기하게도 그 야밤중에 하얀 눈이 우리를 향해 기도를 해주는 듯, 가로등에 비치는 뽀얀 눈들의 모습에 반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견디기 어려울 정도는 아니다 보니, 다행히 그 시간도 딸내미를 안고서 아름다운 감상을 할 수 있었다. 시커멓고 아무것도 안 보이는 새벽녘에 맞이하는 하얀 눈이 왜 그렇게 눈부시던지. 지금도 그 풍경은 잊을 수가 없다. 하늘도 우리에게 축하한다고 미리 인사를 보내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정된 병원과 좀 거리가 있다 보니 20분 정도 지나서야 도착할 수 있었고, ‘BC Women's Hospital’을 만나고서야 마음이 조금은 더 가라앉았다.
응급상황이다 보니 간호사 분들이 친절하게 병실로 안내를 해주셨고, 나와 아가의 맥박과 혈압 등 체크하기 위해 여기저기 무엇인가 붙이기 시작한다. 나의 맥박 소리뿐만 아니라 딸내미의 맥박소리도 같이 듣게 되는데, 어찌나 신비롭던지. 맥박의 빠르기도 훨씬 더 빨랐고 그녀의 떨림도 나에게 같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3시간.. 4시간.. 어느 정도 진통의 강도도 세지기 시작하고 진통의 간격도 좁아지면서 서서히 나는 제정신이 아닌 엄마가 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진통이 느껴지면서, 간호사 분들께 척추에 무통주사를 부탁드렸고, 태어나서 처음 맞아 보는 무통주사라서 겁이 났다. 그 진통을 참을 수 있을 정도의 도움을 주는 질소 가스를 들이마시며 허리를 구부린 채 주사 주입을 기다렸다.
아무 생각도 없이 해롱해롱 술에 취한 듯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척추에 무통주사가 들어가고 있는 상황. 옆에서 엄마랑 자기의 손을 잡아가면서 눈이 떠졌다가 감겼다가 하면서 완전 혼이 나가게 되었다. 그리곤 잠시 누워있었는데 정말 아무런 진통도 느낄 수가 없었고, 몸에 부착된 기계가 몸의 진통을 감지하는 숫자를 확인한 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온 힘을 다해 딸내미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힘은 딸리고 지쳐있는 듯했지만, 엄마라서 그런지 끝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떻게 그렇게 시간이 흘렀는지 2024년 2월 28일 오전 11시 19분, 12시간 정도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지나고 나서야 딸내미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감격도 잠시, 그녀의 목에는 탯줄이 4번이나 감겨 있었고 담당 미드와이프가 빠르게 탯줄을 빼주고 딸내미의 숨통을 트이게 해 주었다.
그것을 확인한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미드와이프 분들이 하시는 말은, 양수가 터졌을 때 색깔이 안 좋았던 이유도 많은 움직임으로 인해 목에 탯줄이 조금씩 감기기 시작하면서 아가도 참고 있던 노폐물들이 같이 흘러나오게 되었던 것 같다고 전해 들었다.
그래도 얼마나 감사한 일이던지… 크게 사고가 난 게 아니라서 너무 감사했고, 숨을 쉴 수 있고 눈을 뜰 수 있었으며, 엄마의 품에 안겨서 같이 살결을 느끼는 순간 나는 눈물이 와르르 흐르기 시작했다. 아직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는 딸내미의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감동했던지… 옆에 친정엄마를 보면서 낳아주셔서 감사하다고, 엄마도 나를 낳으면서 너무 고생했다는 걸 잘 알기에, 더 잘해드리겠다고 말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나는 태어날 때 자연분만으로 시작했다가 엄마가 힘이 약하신 분이라 아무리 힘을 줘도 안 나오는 상황인데도 그때 당시 의사의 취지가 너무도 어리숙하고 미흡했는지, 50시간 기다린 끝에 수술실로 가서 병원에서 기다린 52시간 만에 태어났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정말 다양한 일화들이 많을 것 같은 출산. 건강하게 잘 태어나줘서 고마웠고 함께 견뎌준 남편과 힘을 주신 엄마 아빠께 너무도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고통이 따른 뒤에는 행운이 따른다고 했던가! 출산 뒤 3일 동안은 정말 움직이기 조차 어려울 정도로 아파서 계속 진통약을 먹어가면서 버텼고, 3시간에 한 번씩 나와 딸내미의 몸 상태를 체크받아야 했으며, 그 시간이 너무도 싫었는지 딸내미는 계속 울고 그걸 보는 나도 함께 지쳐서 울어버리고 말았다. 한국과는 다른 스타일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으며, 그 시간이 너무도 힘들었던 게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다행히 병원에서 2박 하고 3일 만에 집으로 복귀가 가능하다는 승낙을 받을 수 있었고, 시아버지의 차에 카시트를 장착한 뒤 우주를 안고 천천히 집으로 돌아간다.
‘시아’
이제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하루하루를 즐겁게 잘 보내고 있는데, 매일매일 너무 빠르게 자라는 것 같은 그녀의 성장 속도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조그맣던 아기는 어디로 갔는지, 걷고 뛰고 엉덩방아에 까르르 웃는 소리까지, 우리를 행복의 나라로 인도하는 천사가 되었다.
그 힘든 시간을 잘 이겨내 준 시아랑 남편 그리고 가족들에게 모두 너무 감사할 따름이다.
다시 뒤돌아 봐도 내 인생 역사 속에서 이렇게 희한 찬란했던 적은 없었다. 소중한 추억을 함께 만들고 있는 딸내미에게 항상 고맙고 든든하게 옆에서 잘 지켜주고 있는 남편에게도 오늘에서야 더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
모든 엄마 아빠들께 응원할게요!
정말 힘들지만 더 행복한 순간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잘 이겨내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