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솥 칸막이는 엄마 줄게.
내 딸이 이유식 할 때가 되면 난 무조건 이유식은 사먹이겠다고 다짐했었다.
맘까페나 블로그에서 이유식 만들때 필요한 재료들이며 하는 방법 이것 저것 찾아보다가 제 풀에 지쳤기 때문이다.
수십가지인 것 같은 준비물에 식재료 하나하나 유기농 따져야 하고 그램수 다 재가며 다듬고
큐브로 만들어 얼리고, 육수는 또 육수대로 야채 육수부터 소고기 육수까지 내야 하다니 뭐가 그리 복잡하던지.
'어휴, 난 못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도 그래도 아예 손을 놓으면 나쁜 엄마인 것 같은 불편함에
이유식 냄비와 실리콘 주걱, 이유식 용기는 울며 겨자먹기로 사다놓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자신이 없어 엄마에게 난 그냥 이유식 사먹이겠다고 했다가
이유식 만들기가 그리 간단한데 뭐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냐고 오만 잔소리를 들었다.
'이유식 만들기가 쉽다고?'
그런데 정말, 엄마의 이유식 만들기는 쉬워보였다. 초기 이유식이라서인지는 몰라도
그냥 쌀가루 미음 만들고 거기에 각종 채소 푹 익혀서 믹서기에 달달 갈아 넣으면 끝이었다.
저울도, 육수도 필요없었다. 그냥 눈과 손대중으로 뚝딱 한그릇이 완성되었다.
엄마표 옛날식 <대애~충 이유식 비법>은 지레 겁먹어 떨고 있는 나에게 문화충격을 안겨주었다.
엄마 따라 '그래, 그냥 쉽게 쉽게 가자' 하면서 한 두끼 만들어 먹이던 것이 어느덧 이유식 만 3개월차가 되었다.
여차저차 중기 이유식을 내손으로 만들어 끝내는 보람을 느끼며 하루 3끼의 이유식을 챙겨야 하는 후기 이유식 단계에 접어들었다.
나는 당연히 후기 이유식도 만들어 먹이겠다는 야심찬 다짐으로 밥솥 이유식을 하겠다며
밥솥 칸막이부터 구입을 했다.
밥솥으로 이유식을 하면 그렇게 간단하다고, 야채 큐브만 하루 반나절 고생해서 만들어놓으면 몇주가 편하다고들 하여 수동 야채 다지기까기 사서 각종 야채 다지고 얼려 큐브 만들어 놓고 했건만
이게 왠일? 중기 이유식까지는 입벌리며 잘 받아먹던 녀석이 후기 이유식 들어가자마자
입 꾹 닫고 먹지를 않는다.
중기때는 안하던 야채 육수까지 내었는데? 내 손 찧어가며 야채 다지기 팡팡 눌러 7종 야채 다 다져놨는데?
내가 먹이는 스킬이 부족해서 그런가 싶어 육아 만랩 울 엄마까지 불러 이유식을 먹여보았지만 역시
대실패로 돌아갔다.
할머니의 손도 뿌리치고 안먹겠다고 울며 인상을 찌푸리는 녀석을 얼굴을 보는데
어이없게 눈물이 조금 나더니 갑자기 감정이 격해져 울어버렸다. 진짜 너무 억울했다.
난 아직 철이 덜 들었는지 이유식 만든다고 공들인 내 정성과 노력과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밥솥 칸막이를 사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 와중에 전동 다지기 안사고 그나마 값이 싼 수동 다지기 사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같이 들었다.
옆에 있던 남편이 우는 나에게 좀 쉬라며 침대로 데려다 주었는데,
나는 눕자마자 시판 이유식 업체를 폭풍 검색하여 이유식을 바로 주문했다.
그리고 큰 소리로 엄마한테 나는 앞으로 이유식 사먹일 거라고 공표했다.
엄마 미안해. 엄마 딸의 인내심은 여기까지야.
밥솥 칸막이는 쌀밥과 잡곡밥을 따로따로 짓는 엄마에게 줄게.
이걸로 쌀밥하고 잡곡밥 동시에 지을 수 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