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다시, 우리
초등학교 1학년이던 아이의 손을 잡고 우리는 제주도로 향했었다.
친정 아빠의 칠순을 기념하는 여행이었다. 그때의 나는 그 시간이 오래도록 따뜻하게 남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여행의 마지막 날, 제주공항에서 나는 감정을 터뜨렸다. 그건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엄마의 말투가 조금 날카로워졌고, 나는 그 감정을 그대로 받아냈다. 여유 있게 넘기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넘기고 싶지 않았던 것 같기도 했다.
그날의 나는 엄마의 이유보다 내 감정에 더 머물러 있었다. 서운했고, 실망스러웠다.
남편과 아이 앞에서 엄마의 모습이 조금은 부끄럽게 느껴졌었다.
그 마음을 인정하는 데 오래 걸렸다.
나는 엄마가 왜 화를 냈는지 보지 못했다. 그저 내가 느낀 감정에만 깊이 잠겨 있었다.
결국 그날의 우리는 서로의 감정이 부딪힌 채 한 걸음도 물러서지 못했던 사람들이었다.
엄마도, 나도 그때는 아직 서툴렀다.
그 뒤로 우리는 꽤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다. 가까운 사이라서 더 쉽게 침묵하게 되는 시간이 있다. 말을 꺼내면 다시 아플 것 같아서.
6개월쯤 지났을 때, 내가 먼저 전화를 걸었다.
"엄마, 어떻게 지냈어?"
"그냥... 그렇게 지냈지..."
그 말 한마디에 그 시간들이 다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어색했고, 조심스러웠다. 그런데도 대화는 다시 흘러갔다.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는 서로의 일상을 묻고 답했다.
그게 더 마음이 아팠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가버리는 관계라는 게.
그날 이후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었다. 다시는 엄마와 여행을 가지 않겠다고. 그 결심은 생각보다 오래갔다.
시간은 조용히 흘러 7년이 지났다. 초등학교 1학년이던 아이는 중학생이 되었고, 그 사이에서 아빠는 우리 곁을 떠나셨다.
이별은 사람을 조금 바꾸어 놓았다. 붙잡고 있던 감정들은 힘을 잃었고, 단단히 닫아두었던 마음은 조금씩 느슨해졌다.
어쩌면 나는 엄마를 원망했던 것이 아니라, 그 시절의 나를 붙잡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몇 달 전, 부산에서 친척 결혼식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문득 엄마와 둘이 KTX를 타는 장면이 떠올랐다.
잠깐 스쳤다가, 나는 그 생각을 접어버렸다.
그런데 얼마 전, 남편이 먼저 말을 꺼냈다. 장모님과 부산에서 하루 자고 오는 게 어떻겠냐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 한쪽이 풀리는 걸 느꼈다. 내가 붙잡고 있던 결심이 조용히 힘을 잃고 있었다.
나는 생각보다 쉽게 예약 버튼을 눌렀다.
이번 여행은 엄마를 위한 여행을 해보고 싶다. 엄마가 보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을 그대로 따라가 보는 시간. 그리고 무엇보다 끊기지 않는 대화를 나누고 싶다.
이제는 안다. 모든 관계에는 설명되지 않는 시간들이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그대로 흘러가야 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나는 이제 엄마에게 사과를 받고 싶지도, 섭섭함을 꺼내고 싶지도 않다. 그저 엄마가 편안하게 웃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싶다.
내일이면 엄마와 짧은 여행을 떠난다. 어쩌면 어색한 순간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이제는 서로를 바꾸려 하기보다 그대로 두는 법을 조금은 알게 되었으니까. 이번 여행에서는 엄마의 속도를 따라 걸어보고 싶다.
그리고,
멈춰 있던 우리 사이의 계절을
조용히 다시 이어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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