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 어떤 위로

결론은 똑같다

by 민섬

추석을 맞아 경희는 남편과 장을 보러 코스트코로 향했다.

“갈비는 선물 받은 거 있으니까 냉동 전이랑 과일 좀 사야겠어.”

“그래.” 남편은 수긍했다.

코스트코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 경희는 입을 떡 벌렸다.

코스트코에 들어가려는 차들의 행렬이 길어도 너무 긴 것이다.

“한참 기다려야 할 것 같은데. 이따 저녁에 갈까?”

경희의 말에 남편 석훈도 기다리기 힘들다며 그냥 카페나 가자고 했다.

장을 보고 나서 카페에 가기로 했는데, 순서를 바꿔 가게 된 것이다.

바로 근처에 대형 베이커리 카페가 있어 그곳으로 향했다.

이층으로 되어 있는 150평 규모의 큰 카페였다. 1층 베란다와 2층 발코니가 있어 야외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데다 맛있는 빵, 아늑한 분위기까지 경희는 만족스러웠다. 주변을 둘러보니 추석이라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함께 차를 마시고 빵을 먹고 있었다. 아이들과 할머니, 할아버지, 중년의 남녀들... 경희는 사람들을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2015년 5월에 어머니가, 2024년 4월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일까.

50대에 들어선 경희는 이래저래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아들만 둘인 경희는 아이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 사춘기라서? 엄마로서 잔소리가 너무 많아서? 그동안 잘해주지 못하고 엄하게 대했어서? 경희는 여러 이유를 떠올렸다. 후회스러운 마음도 들었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는 법. 딸이 아니라서 그럴까? 그것도 하나마나한 생각이긴 마찬가지였다.

야외 2층 발코니에서 나무를 바라보고 바람을 느끼며 마음을 가라앉히던 그때였다.

옆 테이블에서 중년 여성으로 보이는 네 명이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 요새 외로워." 하늘색 니트를 입은 빨간 립스틱의 여성이 말을 꺼냈다.

"왜?"

"우리 딸이 주말마다 나랑만 놀았는데... 맛집도 다니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다 해줬는데, 남자친구가 생기더니 아무 이야기도 안 하고 나랑 놀지도 않아. 눈물 날 거 같아."

"야 나도 마찬가지야. 우리 아들 나랑 브런치도 먹고 전시도 다녔거든. 걔랑 나랑 단짝이었는데. 여자친구 생기더니 나랑 밥을 안 먹어." 빨간 립스틱 여성의 앞에 앉은 긴 갈색머리 여성이 받아친다.

"야. 너랑 밥을 왜 먹냐? 당연히 여자친구랑 먹어야지." 야구모자를 쓴 씩씩해 보이는 다른 여성이 말했다.


경희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친하게 지내다가도 애인이 생기면 멀어지는구나.

나는 그런 상실감은 느끼지 않아도 되겠네.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네. 좋았다가도 나빠지고 나빠졌다가도 좋아질 수 있고.

둘 다 여자친구가 생겨도 난 최소한 상실감은 없겠네.

경희는 우연히 듣게 된 여성들의 대화에서 왠지 모를 위로를 받았다.

가깝거나 멀거나 결국 고민은 비슷비슷 한 건가?

위이잉.

그때 테이블 위의 핸드폰이 울렸다.

큰아들이었다. 경희는 얼른 전화를 받았다.

"엄마. 생각나서 전화했어요."

경희는 자신도 모르게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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