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본 디 베네치아 | 제3편
오늘날 독일의 바이로이트에 세워진 모든 바로크 건축물들은 이 여성으로 인해 세워졌다. 프리데리케 조피 빌헬미네 폰 프로이센 Friederike Sophie Wilhelmine von Preußen. 브란덴부르크 바이로이트의 왕자와 결혼 후 빌헬미네 폰 브란덴부르크 바이로이트 Wilhelmine von Brandenburg-Bayreuth로 불린 이 후작은 정치, 문학, 그리고 건축물과 음악까지 예상을 뛰어넘은 다양한 재능으로 모두를 놀라게 한 비범한 여성이었다.
이 공주의 아버지는 군사력을 확보하여 프로이센을 유럽에서 4번째로 강력한 군사 강국으로 성장시킨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Friedrich Wilhelm I, 그리고 어머니는 영국의 조지 1세의 외동딸인 하노버의 선제후, 조피 도로테아 Sophie Dorothea von Hannover였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왕자는 일찍부터 소피 도로테아 공주에게 호감을 느꼈지만 정작 공주는 왕자에게 호감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아마 이들의 가치관이 서로 달라서 그랬을 것이다. 공주는 예술과 문학, 그리고 패션과 과학을 사랑했지만 왕자는 오직 군사력과 무력만을 사랑하며 공주가 사랑하는 것들을 하찮게 여겼다고 한다.
정치적인 이유로 결혼한 두 사람은 이내 서로 다른 가치관에 큰 불행을 맞이하게 된다. 그가 아무리 노력해도 아내의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긴 아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하찮게 여기는 남편에게 어떤 아내가 자신의 마음을 건네주겠는가. 자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내주지 않는 아내를 바라보며 남편은 점점 자신의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대외적으로 자비로운 군주였다. 경제를 개선하고 국력을 키우는 것은 물론, 당시 박해받는 개신교 망명자들을 자신의 영토에 정착시키며 도시 발전에 큰 역할을 기여하였다. 또한 자신의 영지에서 사는 모든 아이들은 귀천을 막론하고 의무적으로 교육을 제공했으며 과학을 장려하며 청결과 위생을 강조하며 백성들의 건강 증진을 꾀했다고 한다. 이렇게 백성들의 신임을 얻은 자애로운 군주는 어느덧 아이를 하나둘 가지게 되며 자신의 가족을 키워나갔지만 자신의 사랑하는 가족들을 향해선 그 누구보다도 무자비한 폭군이 되었다.
어린 빌헬미네와 자신의 사랑하는 동생이자 왕위 계승자인 프리드리히는 어머니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함께 사랑하였다. 아버지는 그러한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강대한 자신의 나라를 물려받아야 할 유약한 아들이 아내가 사랑하는 아무짝에 쓸모도 없는 예술에 빠지는 모습은 그야말로 쳐다보기 싫은 광경이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아들에게 본성을 드러낸 때는 그때부터였다. 1728년 당대의 플루트 연주자였던 요한 요하임 크반츠 Johann Joachim Quantz의 밑에서 플루트의 오묘한 소리의 질감을 익힌 왕자의 비밀스러운 수업을 아버지는 알아차리게 된 것이다. 그 이후 아버지의 분노는 폭발하여 그 분노는 오롯이 왕자를 향하게 되었다. 궁정 내에서 왕자의 학대는 이제 일상이 되어 그 누구도 말릴 수가 없게 되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빌헬미네는 질색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어린 시절, 이미 자신의 가정교사에게 끊임없는 학대에 시달려 담석 산통을 겪은 그 고통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자신의 아버지가 평화로운 가정에 직접 일으킨 폭력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얼마 안돼 아버지가 일으킨 폭력의 범위는 점차 확장하기 시작하였다. 단지 예술을 사랑하는 남동생에게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학대하는 것도 모자라 남동생과 사이좋은 누이인 자신에게까지 그 영향이 미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두 어린아이는 아버지가 아끼는 지팡이로 끊임없이 맞으며 아버지의 억센 손에 머리를 쥐어잡힌 채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끌려다니는 고통의 나날이 시작된 것이다. 어린 공주와 왕자는 쓰라린 육체와 무너져가는 영혼을 어머니가 사랑한 음악에서 위안을 찾아내었다. 이미 6살부터 하프시코드에 큰 재능에 눈을 뜬 빌헬미네와 플루트를 사랑한 프리드리히는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는 어머니와 함께 서로의 음악으로 하모니를 이루어나가며 고통을 삭혀 나갔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음악으로 위안을 얻을 수 있다한들 지속되는 폭력 앞에서 이들의 영혼은 버틸 재간이나 있겠는가. 결국 가장 많은 폭력에 시달린 사랑하는 남동생 프리드리히는 아버지의 폭력에 이기지 못해 자신과는 물론, 빌헬미네와도 오래된 벗이었던 프로이센 군대의 중위인 한스 헤르만 폰 카테 Hans Hermann von Katte와 함께 프랑스로 탈출할 계획을 세웠지만 결국 실패한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다. 국가를 버리지 말아야 할 황태자가 국가를 뒤로한 채 외국으로 도피하다니. 가족보다 국가를 더 사랑한 아버지의 눈이 당연히 뒤집힐만한 사건이었다. 아버지는 당장 억센 손으로 불순한 계획을 실행한 황태자를 감금시켰다. 그리고 아버지는 이번 일로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이 강한 프로이센을 황태자를 유약하게 만든 장본인은 자신의 아내도, 빌헬미네 공주도 아닌 바로 저 중위였다는 것을. 오랜 시절 함께 한 저 중위가 황태자를 유혹하여 세간의 소문이 흘러나왔지만 정작 그는 그 사실을 중하게 여지기 않았는데 그 둘이 이런 무모한 계획을 세워 자신을 농락하다니. 그 소문은 사실인지 아닌진 모르지만 눈이 뒤집힌 아버지의 모든 분노는 이미 그 중위를 향해있었다.
동시에 빌헬름 1세는 저 가증스러운 중위와 절친한 친구인 빌헬미네에게 눈을 돌렸다. 자신이 내려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으로 공주를 훈육하였지만 공주는 그런 자신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그래서 빌헬미네는 황태자와 함께 감금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가장 소중한 친구는 잔혹하게도 참수형을 선고받아 자신들의 불행을 함께 짊어지고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이 와중에도 왕은 황태자가 인생의 큰 교훈을 얻길 바라는 마음에 사랑하는 친구의 처형장이 곧바로 보이는 퀴스트린 요새에 감금시켜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게 한 잔혹한 명령을 내렸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해지지만 말이다. 황태자의 극악무도한 반역에 대한 처벌은 이렇게 끝을 맺게 되었다.
공주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버지는 공주가 괘씸했다. 감히 저런 불순한 친구와 사귀어 황태자를 몰락시키다니. 아버지는 당장 이 공주를 자신의 눈앞에서 치우기로 결정하였다. 원래라면 영국의 왕위 계승자와의 국혼을 맺기로 계획된 공주였지만 그 계획은 거품처럼 허무하게 무산되었다. 대신 변방의 후작과의 국혼을 성사시키기로 하였다. 당장 이 결혼을 수긍하지 않으면 매춘부로 팔아버리겠다는 협박과 함께 말이다. 그렇게 공주의 인생은 한순간에 무너져버렸다. 아니, 무너졌다고 생각했다. 한 순간에 바뀐 자신의 처지에 공주는 절망하였지만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상받은 듯 의외로 자신 인생 전반에 있어 깊은 위안은 안겨주었다.
프리드리히 폰 브란덴부르크 바이로이트 Friedrich von Brandenburg-Bayreuth와의 만남은 이 공주의 인생에 큰 위안을 가져다주었다. 큰 키와 잘생긴 외모, 그리고 관대하고 자비롭고 예의 바르며 활기찬 남편은 무엇보다도 음악을 사랑하였다. 자신의 남동생과 마찬가지로 플루트를 사랑한 남편과 함께라면 구멍이 가득한 안락의자와 너무나 오래되어 잡기만 하여도 찢어질 것 같은 침구 커튼, 그리고 거미줄로 가득 찬 궁정이라고 해도 그 어느 곳보다 행복한 곳은 없을 것이라. 브란덴부르크 바이로이트 궁정의 금욕적인 삶은 빌헬미네에게 새로운 인생을 안겨주었다.
쾌활하고 학문을 사랑하는 남편은 사랑하는 아내에게 항상 꼬투리를 잡은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간 직후 왕위에 올라 자신의 사랑하는 도시, 바이로이트를 부흥시키기 위한 계획을 본격적으로 세우기 시작한다. 빌헬미네는 시아버지의 자그마한 꼬투리를 잡아 자신을 닦달할 때마다 자신의 편이 되어준 남편을 진심으로 헌신하였다. 평소 아버지와 그의 측근으로 인해 궁정의 모든 업무에서 제외당해 정치 경험이 부족한 프리드리히에게 빌헬미네의 정치력은 그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빌헬미네는 가장 먼저 재정을 살펴보았다. 사랑하는 남편이 자신의 뜻을 펼치려면 자본은 꼭 필수적으로 필요한 요소가 아니겠는가. 아내는 자신의 젊은 비서와 함께 국고의 재정 상태를 확인하기 시작하였다. 예상했던 대로 재정의 구멍은 존재했었다. 신하들의 부정부패와 오래전에 잊힌 부채는 국고를 다시 채울 수 있는 중요한 열쇠였다. 빌헬미네의 노력으로 재정 상태는 이내 안정되었고 남편은 이에 감사한 마음으로 아내에게 바이로이트 근처에 위치한 에르미타주 Hermitage 지역을 선물하였다. 물론 아내는 자신의 예술 감각을 드러내어 아름다운 건물과 정원을 겸비한 보석으로 세공하여 오늘날에도 감탄을 자아내는 도시로 성장시키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1756년 5월, 프랑스 남부와 이탈리아를 두루 다니며 선진 예술을 접한 후작 부부가 자신들의 도시, 바이로이트 부흥을 위해 세운 '바이로이트 순수 예술 및 과학 아카데미'의 원근법 및 건축학 교수로 지롤라모 본이 임명되며 안나 본은 자연스럽게 브란덴부르크 바이로이트 궁정에 자신의 자리를 함께 일궈나가기 시작하였다. 건축학 교수가 된 지롤라모 본은 그 자리를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어떤 직업을 가졌어도 본질은 음악가가 아니던가. 이탈리아 오페라를 그 누구보다도 정통한 이 남성은 아카데미 내에서 최고의 이탈리아 가수들을 모집하여 음악 애호가들을 위한 비공식적인 음악 아카데미를 설립하여 다 함께 음악을 향유하였다고 한다. 음악을 사랑한 빌헬미네는 바이로이트 아카데미에 음악 아카데미가 설립된 소식을 듣자마자 비공식적인 지도자로 자원하여 이들의 활동을 진심으로 지원하였다고 한다.
한편 부모님과 함께 브란덴부르크 바이로이트 궁정에서 음악인으로 종사하게 된 안나는 얼마 되지 않아 깊고 온화한 푸른 눈을 지닌 후작 부인을 진심으로 존경하게 되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음악 중 오페라를 사랑하는 빌헬미네 후작은 당연히 바이로이트 궁정의 오페라 감독을 맡으며 이탈리아 카스트라토의 음악, 이탈리아의 선진적인 오페라를 수입해오는 것은 물론, 직접 이탈리아어 및 프랑스어로 대본을 작성하여 자신만의 오페라를 작곡까지 하는 기염까지 토해내었다. 이제 막 성인이 되었지만 아직 천진난만한 마음을 가진 안나의 눈에 빌헬미네 후작은 여성이 음악을 배우는 것은 불결하다는 세간의 편견을 마음에 담지 않은 채 오직 음악만을 바라보는 진정한 영웅으로 비쳤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안나는 빌헬미네의 부름으로 그가 부른 방으로 찾아가는 길이었다. 후작 부부가 매주 수요일마다 개최하는 음악 아카데미가 열리는 방으로 찾아간 안나는 이내 빌헬미네가 자신을 부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 방에 놓인 아담한 악기. 마치 성당의 오르간을 축소해놓은 듯한 자그마한 하프시코드를 빌헬미네 후작이 연주하고 있었다. 빌헬미네 후작은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전문적인 음악 교습을 받은 어린 안나를 매우 아꼈다.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이 아이에게 하프시코드는 더 멀리 뻗어나갈 수 있는 날개가 되어줄 수 있음을 빌헬미네는 직감하였을 것이다. 안나 본은 빌헬미네의 권유로 베네치아에서는 오르간보다 접하기 힘들었던 하프시코드에 직접 손을 올리게 되었다.
마치 음악이라는 거대한 우주를 이 조그마한 나무 상자에 넣은 듯한 느낌이었다. 비올라도, 바이올린도, 그리고 다른 악기도 표현하지 못하는 베네치아의 고풍스러운 다성음악을 이 악기는 너무나도 쉽게 두 손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멜로디뿐만 아니라 바소 콘티누오와 같은 화음을 동시에 낼 수 있는 이 악기에 안나는 빌헬미네의 직감대로 그대로 빠지게 되었다. 말 그대로 이 악기 한 대만 있으면 그 어떤 음악도 두 손 그대로 재현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안나는 자신의 인생에서 단 한 대의 악기만 선택할 수 있다면 그건 바로 하프시코드라고 장담하게 되었다. 드디어 자신의 인생 악기를 만나게 된 것이다. 빌헬미네는 하프시코드 앞에서 순수한 기쁨을 발산하는 이 아이의 기쁨에 공감하며 자신이 소유한 가장 최신 악기 중 하나인 이 악기를 기꺼이 내어주었다.
안나는 하프시코드를 만난 이래 자신의 창의력이 샘솟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결심하였다. 자신에게 큰 은혜를 내린 후작 부부에게 자신의 음악을 바치기로. 곧 18살을 맞이하게 될 이 여성은 처음으로 고마운 후작 부부를 위한 음악을 구상하기 시작하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