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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네 Sep 07. 2022

IV. 자신이 사랑한 모든 것을
오선보에 담다.

안나 본 디 베네치아 | 제4편

Anna Bon di Venezia | Six Flute Sonata Op. 1: Sonata No. 1 in C Major, I. Adagio


제가 '실내악의 거장'이라는 반열에 합류해주신 영광, 그리고 폐하께서 플루트를 위한 저의 작품을 기뻐해 주신 점. 제가 용기 있게 이 6개의 디베르티멘티를 출판하게 된 이유입니다. (...) 그러나 플루트에 불편한 악절을 발견했다면, 폐하께서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의 악기는 하프시코드이기에 플루트에 대한 그 미묘함과 편안한 주법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제력과 깊은 존경심으로 가득 찬 당신의 손에 입 맞추기를 허락합니다. 

안나 본 디 베네치아. 프리드리히 3세를 위해 작곡한 플루트 소나타의 헌정사 중



당시 프리드리히 3세의 플루트에 대한 남다른 애정은, 자신의 아내의 남동생인 프리드리히 대왕의 스승이자 베를린 왕실의 악장이었던 요한 요하임 크반츠는 물론, 여러 세대에 걸쳐 걸출한 음악가들을 키워낸 클라인크네흐트 가의 일원 중 뛰어난 플루트 연주자 중 한 명인 야코프 프리드리히 클라인크네흐트 Jakob Friedrich Kleinknecht가 바이로이트 궁정 오케스트라의 플루트 연주자로 자처한 점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당대 플루트의 거장들이 모여들어 어느 순간 그의 궁정은 플루트라는 악기의 거점이 되었으니 안나 본의 첫 번째 작품으로 이 악기 선택하는 것은 당연한 순리가 아녔을까 생각한다. 


1760년에 출판된 안나 본의 '6개의 플루트를 위한 소나타' 표지와 '제1번'의 악보


그렇게 탄생한 6개의 플루트 소나타는 한 대의 플루트와 한 대의 건반 악기를 위해 작곡의 포부를 알리는 안나 본의 첫 번째 작품이 되었다. 베네치아의 평화로운 아침을 닮은 이 작품은 모든 조성 중 가장 순수하고 맑은 C장조를 채택하여 플루트의 투명한 음색을 한 층 더 선명하게 드러내 준다. 플루트에 대한 미묘한 음색과 주법에 익숙지 않다는 안나 본의 언급과 다르게 20살도 안된 이 천재적인 여성은 플루트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오직 플루트만이 연주할 수 있는 작품을 탄생시켰다. 프리드리히 후작은 당연히 기쁘게 이 곡을 받아들였다. 이 곡을 헌정하기 오래전부터 이 어린 여성의 천재성을 엿본 후작 부부는 이 어린아이에게 '실내악의 거장'이라는 칭호를 내리지 않았던가. 프리드리히 후작은 빌헬미네 후작의 반주에 따라 플루트의 중심지인 자신의 궁정에 베네치아의 반짝이는 물결과 햇살을 닮은 맑은 음색의 플루트 소나타로 가득 채우며 다른 도시에서 온 음악가들 앞에 종종 연주하여 모두의 놀라움을 이끌어내었다.


가장 정확하고 훌륭한 음악 공연이 시작되었을 때 누가 알았겠는가,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고 음악이라는 예술이 내가 두려워할 만큼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을. 


당시 베를린 궁정에서 프리드리히 2세를 섬긴 카를 필립 에마누엘 바흐 Carl Philipp Emanuel Bach는 주군의 누이가 이끄는 궁정에서 탄생한 플루트 소나타를 접한 후 훗날 자서전에 남긴 평가였다. 




프리드리히 3세를 위한 플루트 작품을 발표한 후, 안나의 음악 재능은 프리드리히 3세와 빌헬미네 후작이라는 양 날개를 달고 더 높이 도약할 준비를 마쳤다. 당시 독일에서 여성이 음악을 작곡한다는 자체가 매우 눈살을 찌푸릴 일이었지만 바이로이트의 가장 높으신 두 분이 곁에서 자신의 지지해주는 데다 '실내악의 거장'이라는 호칭까지 수여받은 안나에게 그 사실은 대수롭지 않은 일일 뿐이었다. 자신을 닮은 투명하고 맑은 첫 번째 작품을 고스란히 자신을 지지해 준 두 분을 위해 작곡했다면, 두 번째 작품은 온전히 자신을 위해 작곡하기로 안나는 마음먹었다. 프리드리히 3세의 악기가 플루트라면 이제 음악의 주인인 자신의 악기인 하프시코드를 위한 작품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안나는 준비된 오선보를 펼치고 하프시코드 앞에 앉아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그려나가기 시작하였다. 


통주저음은 베이스 파트에 쌓아 올릴 화음을 숫자로 표기한 연주법으로 바로크 음악의 근간을 이룬다.


안나는 그 누구보다도 통주저음 Basso continuo을 사랑하였다. 가장 낮은 곳에서 뿌리내린 단단한 소리, 그 단단한 베이스는 안나가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여기는 음악 철학 중 하나였다. 튼튼하게 다듬어 반듯한 기초 위에 쌓아 올린 아름다운 음의 하모니는 어떻게든 올곧고 울림 깊은 소리를 만들어 나갈 수밖에 없었다. 한 편 안나는 자신의 진정한 고향이라 할 수 있는 베네치아의 풍경을 사랑하였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닥이 비치는 얕은 수면 위에 찰랑거리는 눈부신 햇살 조각들을 잊을 수 없는 안나는 이 모든 빛을 고스란히 오선보에 담아내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음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안나는 두터운 질감이 아닌, 얇고 선명한 질감을 위해 최소한의 음을 나열하여 가벼운 질감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또한 안나는 극명한 서사가 존재하는 이탈리아의 음악을 사랑하였다. 사랑하는 어머니의 노래에서 발견할 수 있는 풍부한 감정의 선율은 항상 안나의 마음을 각양각색의 감정으로 인도해내는데 모자람이 없었다. 


안나 본이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만들어주는 모든 것을 애정으로 오선보에 듬뿍 담아낸 두 번째 작품, 하프시코드를 위한 6개의 소나타 Six Sonatas for Harpsichord, Op.2는 독일에서 탄생하기 힘든 이탈리아의 정서로 가득 찬 새로운 작품으로 바이로이트 궁정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풍부한 통주저음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화음을 한 번에 뭉쳐 두텁게 만든 것이 아닌, 화음을 잘게 나누거나 최소한의 요소만 사용하여 최대한 가벼운 질감을 지향했을 뿐만 아니라 빠르고 느린 속도를 극명하게 나눠 기악 음악에 새로운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무엇보다도 멜로디에서 넘쳐나는 인간의 감정은 지금까지 독일을 지배한 음악과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으레 기존의 음악이라면 감정을 억누르는데 초점을 맞췄다면, 안나의 음악은 말 그대로 멜로디가 슬픔의 고통을 못 이겨 절룩거리거나 기쁨에 못 이겨 폴짝거리곤 하였다. 안나의 작품은 그야말로 솔직한 안나 본 그 자체를 닮아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보기 힘들었던 이 새로운 기악 작품은 이제 막 접어든 고전 시대를 알리는 길잡이가 되었다. 한 마디로 안나의 하프시코드 소나타는 서양 고전음악에서 가장 참신한 발명품으로 일컫는 '소나타 형식'에 근접하게 다가선 것이다.  




전쟁은 그 누구의 예상보다 오래 진행되었다. 빌헬미네 후작은 자신이 아끼는 남동생과, 자신이 존경하는 오스트리아의 여제가 일으킨 전쟁 사이에서 갈등하였다. 사랑하는 자신의 조국, 프로이센의 입장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조차 하지 않은 채 오스트리아의 국경을 넘어 유럽을 전쟁으로 몰고 간 남동생의 행동은 납득할 수가 없었다.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의 전쟁을 중재시키기 위해 이전부터 많은 힘을 쏟아부은 빌헬미네 후작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발발된 전쟁 앞에 브란덴부르크 바이로이트조차 전쟁 속에 휘말리게 되었다. 전쟁을 싫어하는 빌헬미네 후작은 브란덴부르크 바이로이트를 전쟁의 소용돌이 가운데 전락시키지 않기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반프로이센 연합군은 바이로이트를 끊임없이 넘보았다. 그때마다 프리드리히 3세와 빌헬미네 후작은 프리드리히 2세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 요청은 항상 침묵이라는 답으로 돌아왔다. 아마도 프로이센에 속박되었던 브란덴부르크 바이로이트를 자신이 도우면 오스트리아가 단번에 응징할 것이라고 예상한 그의 생각은 침묵이라는 답이 정답이라는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그런 심란한 시기의 한가운데 결국 빌헬미네 후작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음악을 사랑하고 미술과 문학, 그리고 예술을 사랑한 이 후작의 바람대로 평화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린 시절 폭력에 노출된 공주는 전쟁이라는 또 다른 폭력 속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평소 문학의 사랑하는 고인의 생전에 원하던 대로 프랑스어로 이루어진 몇천 권의 도서들은 에를랑겐 대학이라는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동하게 되었다. 책으로 가득한 도서관이 점점 비어질 때마다 궁정 안에 몰아치는 쌀쌀한 늦가을의 바람은 더 싸늘해졌고, 자신의 마음 한편도 점점 쓸쓸해짐을 안나 본은 느꼈다. 유럽 음악계에 발을 붙일 수 없는 어린 여자인 자신의 작곡을 응원한 후작의 공백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거대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그 자애로운 푸른 눈동자를, 음악에 대한 깊은 열정을 가지고 오페라를 작곡하는 그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오직 자신의 손에 남겨진 한 대의 하프시코드, 그 악기를 연주할 때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음악 소리에 자애로운 미소를 짓는 후작의 모습을 상상해볼 수밖에 없었다.  


플루트 협주곡을 연주하는 프리드리히 대왕. 하프시코드에 앉아있는 인물은 C.P.E. 바흐이며 오케스트라는 하프시코드의 통주저음을 길잡이로 삼아 음악을 이끌어 나간다. 


당시 하프시코드는 관중들이 들었을 때엔 도드라지지 않는 악기 었지만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악기 중 하나였다. 안나 본이 사랑한 통주저음. 이 통주저음을 연주하는 하프시코드는 비록 거대한 관현악의 소리에 묻히게 되지만 관현악 연주자는 이 통주저음을 길잡이 삼아 음악을 연주하게 된다. 즉, 하프시코드는 일종의 지휘자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이런 중요한 악기를 연주해 궁정의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이끈 이는 바로 빌헬미네 후작이었다. 지금 그의 자리가 공석이 됨에 따라 오케스트라는 길잡이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평소 빌헬미네 후작의 총애를 받아 여러 건반악기의 독주자로 활동한 안나 본은 후작이 사랑한 오케스트라가 길 잃은 어린아이가 된 것을 방치할 수 없었다. 자신은 '실내악의 거장 Virtuosa di musica di Camera'이라는 칭호를 받은 거장이 아니던가. 그래서 안나 본은 직접 하프시코드 앞에 서서 길을 잃은 오케스트라에게 새로운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안나 본의 이야기는 여기서 한 번 멈추게 된다. 너무나 희박한 자료로 인해 아직 20살이 넘지 않은 이 여성의 인생이 끊기게 된 것이다. '안나 본'이라는 인생의 공백기가 발생하기 전 안나가 직접 남긴 단 하나의 단서는 빌헬미네 후작의 죽은 다음 해, 안나는 바이로이트 궁정을 대표하는 플루트라는 악기의 가능성을 확장시키기 위해 2대의 플루트와 바소 콘티누오를 위한 6개의 디베르티멘티 Six Divertimenti, Op.3을 작곡한 사건 하나 뿐이다. 이 외에 간접적으로 하나 더 남겨진 기록은 작곡가의 아버지의 행적을 통해서 남겨져 있었다. 안나 본이 6개의 디베르티멘티를 작곡한 이후로도 이들은 빌헬미네 후작의 손을 탄 궁정에서 제법 활동했을 것이라 추정한다. 아버지인 지롤라모 본이 '바이로이트 순수 예술 및 과학 아카데미'의 교수로 활동한 기간이 궁정의 연도 일정에 기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안나 본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에 등장한 공백기는 어디서 끝을 맺고 다시 시작하게 되는 걸까. 음악의 신이 내린 신동으로 불린 이 여성과 그의 가족의 기록은 공백 이후 전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엉뚱한 다른 나라에서 발견이 된다. 바로 오스트리아의 아이젠슈타트에 위치한 한 궁정에서 그 기록이 잠들어 있었다. 그것도 그 궁정의 악장으로 활동한 음악가이자 서양 고전음악의 중축이 될 고전 시대를 연 작곡가로 평가받는 카펠 마이스터, 요제프 하이든 Joseph Haydn이 남긴 한 기록 속에서 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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