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히 서양음악사를 이끈 한 여성의 에튀드
-제롬 도리발 Jérôme Dorival, 음악학자이자 엘렌 드 몽주루의 전기작가
엘렌 드 몽주루가 평생에 걸쳐 피아노라는 악기에 자신의 인생을 바쳐 탄생한 에튀드, 『포르테피아노를 위한 종합 과정 Cours complet pour l'enseignement du forte-piano』이라는 작품은 마치 그가 미래에 살짝 시간 여행을 다녀온 뒤에 작곡한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엘렌 드 몽주루라는 인물을 위해 많은 시간을 헌신한 프랑스의 음악학자, 제롬 도리발로 인해 드러난 그의 업적과 에튀드 속에 숨겨진 놀라운 사실들을 나열하려면 사실 이 한 편의 글로 풀어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만큼 서양음악사의 이면에 숨겨진 이 여성의 에튀드는 가히 음악사를 뒤흔들만한 커다란 힘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엘렌 드 몽주루가 작곡한 '포르테피아노를 위한 종합 과정'은 그가 20대 시절에 그의 제자 중 한 명이었던 요한 요한 밥티스트 크라머 Johann Baptist Cramer의 요청으로 시작하여 20여 년에 걸쳐 40대가 되어야 작곡을 마친 작품이다. 그 말인즉슨 긴 세월을 통해 피아노라는 악기를 연구하다 보니 그 어떤 에튀드보다 거대한 분량 속에 심오하고 세밀한 분석이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20년을 바친 이 여성의 에튀드의 분량만 하더라도 700쪽이 넘어 3권으로 분권 되어 출판되었으며, 음악을 아예 모르는 학생들을 위해 악보에 등장하는 모든 용어들을 정리한 데다 각 연습곡마다 지향해야 할 도움말이 세세하게 기입되어 있어 학생들은 헤매지 않으며 이 여성이 지향하는 목적을 따라 거장의 길에 도달할 수 있게 정도를 제시하고 있다.
엘렌 드 몽주루가 출판한 피아노 에튀드집은 처음 음악을 접하는 사람들을 위해 음악의 빠르기표, 나타냄말과 같은 기본 용어(좌)를 제시하며 , 각 연습곡을 시작하기에 앞서 최소 한 문단에서 최대 3페이지 이상의 세밀한 도움말(우)을 기재하여 학생들에게 올바른 가르침을 전달하고 있다.
엘렌 드 몽주루가 이 방대한 에튀드를 작곡하기 위해 얻은 영감은 당시 이 여성의 주변에 자리 잡은 수많은 극장에서 울려 퍼졌을 다양한 작품에서 시작된다. 프랑스인인 엘렌은 그 누구보다 독일의 거장의 손에서 탄생한 작품들을 사랑하였다. 특히 오랜 전, 라이프치히에서 활동한 음악의 거장, 위대한 작곡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Johann Sebastian Bach를 사랑한 엘렌은 현재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시대에는 잊혀 가는 이 작곡가의 신봉자나 다름없었다. 바흐가 건실하게 쌓아 올리는 선율의 향연은 엘렌에게 큰 영감을 안겨주었고 그는 이제 책장 한편에서 잊힌 신실한 칸토르의 악보를 발굴하여 그가 만들어간 아름다운 건반 악기 작품들에 자기만의 색채를 입혀가게 되었다.
상단에 위치한 악보는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제1권 중 '전주곡과 푸가 C장조 BWV 846'이며 하단에 위치한 악보는 엘렌 드 몽주루의 에튀드 19번이다. 엘렌 드 몽주루는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작품에 영감을 받아 왼손과 오른손이 한 몸처럼 움직이는 주법을 담은 에튀드를 작곡하였다.
이뿐만이 아니라 엘렌은 당시 파리의 극장을 가득 채웠을 모차르트의 작품을 차용하기도 하였다. 모차르트가 파리에서 작곡하였고 흔히 어머니의 죽음에 작곡된 몇 안 되는 단조 소나타라고 알려진 '피아노 소나타 제8번, A단조 K. 310/300d'의 3악장을 차용한 에튀드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만큼 엘렌은 과거에서 현재의 모든 음악을 사랑하였을 것이라 이렇게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엘렌 드 몽주루는 현재에 머무르지 않았다. 과거 및 현재 활동하는 작곡가들의 작품에 영감을 얻어 지어진 이 에튀드는 방대한 분량, 세심한 가르침만으로도 놀라움을 불러일으키지만 진정한 놀라움은 바로 이 여성이 제시하는 피아노 연주법이다. 엘렌은 자신의 에튀드 서문에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기록해 두었다.
사람이 만들어내는 노래에서 표현되는 억양과 소리를 만들 수 없는 건반 악기에서는 어떻게 무수한 음형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환상은 바로 현실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멜로디를 연주하는 오른손은 가수의 호흡을 통해, 반주하는 왼손은 오케스트라를 통해 비교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포르테피아노를 위한 종합 과정 서문' 중에서
현대에서는 서문에 등장한 이 문구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아차리기 힘들다. 연주자들은 이 서문에 등장한 말 그대로 사람의 호흡을 통해 프레이징을 구분하고 반주에서 오케스트라의 악기를 상상하며 연주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 여성이 활동한 시대를 생각하면 이 문구가 얼마나 대담하고 혁신적인 견해였는지 알게 된다. 이 여성이 활동한 시기는 18세기말이었다. 즉 모차르트가 억지로라도 당시 모든 음악이 흘러들어오는 파리에 어떻게든 정착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베토벤은 본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던 시기였던 것이다.
즉, 엘렌은 고전적인 양식이 지배하는 고전 시대의 한복판에 서있었던 것이다. 이 시기의 음악은 하나의 짧은 음악 동기가 일관된 리듬 속에서 대조와 균형을 적절하게 유지하며 발전하는 형식적인 아름다움이 최고였던 시기였던 것이다. 그런데 형식이 중요한 이 시대에 한 대의 악기로 서정적인 노래를 추구하다니. 이 여성이 추구하는 주법은 마치 현시대의 음악이 아닌 50여 년 후에 도래할 낭만 시대의 음악 주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이 여성이 추구하는 이상은, 음악을 형식이 아닌 감정이 시간을 따라 흐르는 슈베르트와 일맥상통하며, 건반 위에 한 편의 아리아를 들려주는 쇼팽과 일맥상통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슈베르트는 1795년에 태어난 엘렌의 아들이 두 살이 되어서야 세상에 태어났고, 쇼팽은 엘렌이 이 에튀드를 완성한 지 2년 후에 태어났음을 생각하면 이 여성이 피아노라는 악기에 얼마나 진보적인 이상을 가졌는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현재 음악 교육자로 활동하며 다수의 음악 교재를 집필한 프레데릭 플라처 Frédéric Platzer는 이 여성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한 마디의 말을 언급하였다. 엘렌 드 몽주루는 '최초의 낭만주의 음악가 중 한 명'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이다.
당시 파리를 뒤흔든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 엘렌 드 몽주르는 그의 사후, 그의 음악과 함께 그의 존재는 빠르게 세상에 잊혔다. 하지만 피아노가 발전하기 시작한 고전 시대에 남다른 통찰력으로 피아노를 해부한 이 에튀드는 낭만 시대를 이끌어 간 거장들을 통해 조용히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자신의 딸을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키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당대 가장 유명한 피아노 교사, 프리드리히 비크 Friedrich Wieck는 일찍부터 몽주루의 에튀드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실제로 낭만 시대에 부합하는 이 체계적인 에튀드를 크라머의 피아노 에튀드와 함께 그의 딸 클라라 비크 Clara Wieck에게 적용시켰다고 한다.
클라라 비크가 누구인가. 데뷔 이후 전유럽을 넘어 러시아까지 발칵 뒤집은 전문 여성 콘서트 피아니스트가 아니던가. 클라라는 특히 당시 피아니스트들의 수도, 파리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서양음악사를 이끄는 수많은 인맥을 형성하게 되었다. 당시 이 피아니스트가 사랑했던 음악가, 로베르트 슈만 Robert Schumann은 물론 프레데릭 쇼팽에 피아노의 역사를 바꾼 프란츠 리스트 Franz Liszt와 훗날 클라라의 좋은 친구가 되어줄 요하네스 브람스 Johannes Brahms까지 이 모든 거장이 클라라 비크의 놀라운 연주에 경의를 표하며 수많은 음악적 대화를 나누지 않았겠는가. 클라라 비크를 통해 엘렌 드 몽주루의 에튀드는 이들에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당시 클라라가 인정한 피아니스트, 지그문트 탈베르크 Sigismund Thalberg가 직접 적어 내려 간 저서, '피아노에 적용된 노래의 예술 Art of Singing Applied to the Piano'에서는 엘렌이 자신의 에튀드 서문에 남긴 글을 인용하였다고 한다. 또한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의 거장 피아니스트, 마리아 시마노프스카 Maria Szymanowska는 엘렌 드 몽주루가 남긴 이 에튀드를 자신의 레슨 시간에 공식적으로 이 교재를 사용하였으며 베토벤이 인정한 피아니스트 마리 비고 Marie Bigot 또한 자신의 제자를 가르칠 때마다 엘렌이 남긴 이 주옥같은 에튀드를 자신의 교재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마리아 시마노프스카가 훗날 쇼팽에게 큰 영향을 끼치며, 마리 비고는 어린 펠릭스 멘델스존 Felix Mendelssohn과 파니 멘델스존 Fanny Mendelssohn에게 직접 가르침을 선사했다. 그래서 클라라 비크가 아니라도 이들은 이미 엘렌 드 몽주루의 에튀드를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파리에서 만난 클라라와 멘델스존은 특히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이 에튀드에 담긴 추억을 서로 공유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 걸까. 엘렌 드 몽주르의 에튀드에는 후대 음악가들의 작품과 닮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마치 후대 음악가들이 이 여성의 작품을 차용한듯한 모습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슈만의 순수하고 서정적인 음악은 엘렌의 에튀드에 함께 수록된 환상곡에 담긴 순수함과 일맥상통하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으며 어떤 에튀드는 멘델스존이 그토록 사랑한 달콤한 슬픔이 담긴 드라마와 일맥상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엘렌의 에튀드 104번에서는 훗날 브람스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교향곡 4번 1악장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에튀드 제 107번에서는 끊임없이 질주하는 왼손의 반주 위에 펼쳐지는 급박하고 고통에 찬 멜로디는 쇼팽이 조국에 대한 걱정으로 써 내려간 에튀드 Op.10 No.12, '혁명'과 일맥상통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엘렌 드 몽주루의 에튀드 제107번은 질주하는 패시지가 난무하는 왼손 위에 격정적으로 노래하는 오른손이 함께 어우러지는 작품이다. 이는 훗날 쇼팽의 에튀드 '혁명'에서 유사한 진행을 찾아볼 수 있다.
그렇게 엘렌 드 몽주루의 에튀드는 조용하고 은밀하게 자신을 알아주는 음악가들을 통해 낭만주의 시대를 이끌어 나갔다. 그리고 잊히기엔 너무나 아까운 이 에튀드는 더 먼 미래로 나아가기로 한다. 바로 훗날 19세기와 20세기의 프랑스 음악을 이끌 음악가들을 키운 교육자를 통해 말이다.
앙투안 프랑수아 마르몽텔 Antoine-François Marmontel은 엘렌이 이 에튀드를 완성한 이후 살롱에서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활동한 시기에 태어났다. 일찍부터 음악과 함께 인생을 살아가겠다고 결심한 이 어린 소년은 파리음악원에 입학한 이래 평생을 파리음악원을 위해 살아가기로 마음먹으며 어느새 프랑스 내의 최고의 교육자로 자리 잡게 된다. 이 교수는 자신이 음악에 전통하게 된 이유를 엘렌 드 몽주루의 에튀드에서 찾곤 하였다.
내가 50여 년 전, 피아노에 건반을 처음 올렸을 때 함께한 교수법은 바로 몽주루 부인의 교수법이었다. 작곡된 날짜만 본다면 이론적으로나 미적으로나 완전히 구식이라 믿을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몇천 가지 중 하나의 예를 인용하자면, 우리는 저자가 교재의 서문에 제공한 조언의 단 몇 줄을 필사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을 것이다.
-앙투안 프랑수아 마르몽텔 저서, '초상과 원형 장식 : 유명한 피아니스트들 Silhouettes et Médaillons : Les Pianistes célèbres' 중에서
마르몽텔은 엘렌이 남긴 이 심오한 교육법을 맹신하며 제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해 주었다. 이 교수의 제자들은 누구인가. 조르주 비제 Georges Bizet, 뱅상 당디 Vincent d' Indy, 테오도르 뒤부아 Théodore Dubois, 헨리크 비에니아프스키 Józef Wieniawski, 클로드 드뷔시 Claude Debussy와 이사크 알베니즈 Isaac Albéniz. 그 외에도 존재하는 수많은 제자들. 모두가 프랑스의 음악을 이끌어나간 거장들이다. 20세기까지 이끌어나간 이들의 마음엔 마르몽텔의 가르침이, 그리고 그 근원엔 엘렌 드 몽주루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렌 드 몽주루는 종전 이후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 여성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건 21세기였다. 불과 몇십 년 전에 주목받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2000년대가 되어서야 이 여성과 이 여성이 이룩한 에튀드의 중요성을 파악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그의 작품들을 무대에 올리기 시작하였다. 이제는 음악학자들로 인해 더 많은 사실들이 발견되고 연주자들로 인해 그의 작품은 무대 위에 점점 자주 올라 많은 이들의 기억에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흔히 최초의 피아노 에튀드는 요한 밥티스트 크라머의 에튀드라고, 그리고 가장 유명한 에튀드라면 쇼팽 에튀드를 손에 꼽는다. 하지만 요한 밥티스트 크라머의 요청에 따라 이전부터 일생을 바쳐 작곡한 엘렌 드 몽주루의 에튀드가 존재하였고, 피아니즘의 새로운 역사를 쓴 쇼팽의 에튀드 이전에 이미 많은 업적을 쌓은 엘렌 드 몽주루의 에튀드 또한 가장 유명한 에튀드의 반열에 오를 자격이 있다. 부디 당대 파리를 흔든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남다른 통찰력으로 남긴 이 에튀드들이 다시 한번 조명받아 더 많은 이들에게 닿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