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흘려보내고서야 아는 소중함
'중간고사, 기말고사 다 공부를 안 하고 시험을 보는데, 하물며 쪽지 시험이라고 책을 열어봤겠니?'라고 덤덤하게 이야기했지만 사실 그 시기에 대해서는 후회가 많다. 정말 시험날인 줄 모르고 커피 들고 출석해서 같이 수업 듣던 후배에게 사실을 듣게 된 4학년 2학기의 나는 아주 얼이 빠져있었다.
그때 난 병원 응급실 아르바이트, 영어 과외로 푼돈을 벌고 있었다. 학업 중에 아르바이트로 바쁜 게 아니라, 아르바이트 중에 학교를 가느라 바빴다. 수업시간엔 보상심리인지 학업에 대한 기만인지 모를 잡생각으로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다. 바쁜 척 일하고 수업시간엔 한숨 돌리는 생활이 이어졌다. (교수님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그 당시의 내게 진짜 세상은 대학 밖에 있는 것 같았고, 빨리 벗어나고만 싶은 공간이었다. 그래서 학기 중의 강의실은 바쁜 몸과 마음을 쉬는 공간 정도로만 여겼다. 교수님이 보기엔 나의 태도도 아주 불량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 수업 때문에 제때 졸업을 못했다.)
여느 아침과 같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손에 들고 들어간 강의실에서의 중간고사 날이 생각난다.
‘누나 시험 준비 많이 하셨어요?’
‘...... 시험? 오늘?’
후배의 표정이 잊히질 않는다.
어차피 어린 20대 초반 두 살 차이라고 누가 얼마나 더 철이 들었겠냐마는 그래도 이건 내가 생각해도 좀 심했다. 다신 돌아가고 싶지도, 반복하고 싶지도 않은데 머릿속엔 여전히 그 장면만 선명하게 남아있다.
수업은 대충 들어놓고 대외활동도 마지막엔 내팽개치고 또 그 여름 방학엔 중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난 25살의 나를 보니 이렇게 부끄러울 수가. 이젠 다 지난 일이라고는 하지만 나에게 반추란 것이 없었다.
그래, 인생의 한 해 한 해를 돌아보질 않는데 하물며 오늘 하루를 정리하는 습관이 생길 리가 있나.
아주 나중에야 진짜 세상이 대학 밖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생존을 위한 도구도, 훈련도 모두 대학 안에서 준비하는 것이 안전함을 깨달았다. 성실도, 노력도 재능의 일부이며 모자란 사람은 대학에서라도 배워야 했음을 깨우치고 통탄의 눈물을 흘린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어언 8년 뒤의 일이었다. (그리고 진짜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그 시간도 사실은 내 인생이고 진짜임을 더 나중에 깨달았다. 이디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