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대안학교에 발을 들여놓은 10여년 전 만해도 대안학교의 이미지는 공교육 부적응 학생들이 다니는 곳 이었다. 요즘은 공교육에서 벗어나 대안교육을 찾는 부모들이 많기에 대안학교에 대한 이미지가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내가 근무하는 대안학교는 시골에 위치한 기독대안학교이다. 28살의 파릇파릇한 나이에 시골 기숙대안학교에 들어와 나의 젊음을 바쳤다. 학생들과 함께 성장해 나가는 기쁨이 있었기에 그리 힘들지 않았다. 이 곳 대안학교에서 나는 지금의 반려자인 아내를 만났다. 동갑내기 였고 같은 신앙과 교육관을 가지고 있었기에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그렇게 우리는 약 15개월간의 연애기간을 거쳐 결혼을 했다.
우리 부부는 결혼하자마자 곧 아이가 생겼고 그렇게 나는 아빠가 되었다. 첫째 아이가 태어나고 30개월이 되던해 둘째 아이가 태어났다. 그 아이들이 현재 6살, 4살이 되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초보아빠를 벗어나 성장중이다.
-리얼쌤 어려움에 봉착하다
아빠가 된다는 기쁨은 무척이나 컸지만 우리 가정은 큰 어려움에 봉착했다. 환경적인 어려움이었다. 기숙학교 특성상 야간에도 학생들을 케어하고 학교 기숙사에서 지내야 하는데 어린 신생아를 두고 그럴 수는 없었다. 우리 가정은 병원에서부터 산후조리원까지 모자동실을 하며 24시간 늘 함께 지냈다. 산후조리원 퇴소 후 몸조리하러 아내가 친정으로 간 이후로 우리 가정은 주말 부부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약 50일 동안 주말부부로 지내는데 주말에 청주 친정집에 가서 아내와 어린 아들을 보고 학교로 돌아오는 월요일 새벽이면 늘 헤어짐의 눈물을 흘렸다. 낮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공강 시간이면 영상통화를 했다. 영상 통화후면 아내는 떨어져 있는게 힘든지 늘 울었다.
-가정은 함께 있을 때 건강하다
결국 우리 가정은 힘들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 바로 첫째 아들 지음이를 데리고 학교 교사 기숙사에서 함께 사는 것이다. 교장 선생님께서는 우리 가정이 학교 기숙사에 아이를 데리고 오는 것에 대해 허락하셨다. 하지만 교사 기숙사는 원룸사이즈였기에 신생아와 함께 지내기엔 너무 좁았다. 혹시나 아이가 밤에 울어 주변 동료교사들에게 피해를 주진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떨어져 있는 순간도 힘들었지만 좁은 기숙사에서 100일도 안된 첫째 아이와 함께 지낸다는 것 또한 너무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 가정은 그렇게 24시간 함께 동행했다. 왜냐하면 아무리 힘들더라도 함께 있는 것이 가정의 행복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 가정은 학교 기숙사가 있는 논산과 신혼집이 있는 청주를 주말마다 왔다 갔다 했다. 둘째 딸이 태어났을 때도 첫째 때와 다를 바 없는 시간을 겪었다. 몸조리하는 동안 청주 집에서 잠깐 떨어져 지냈지만 곧 학교기숙사에서 함께 지냈다. 아이가 둘이 되니 정말 2배 힘든게 아니라 4배, 8배는 더 힘들었다. 하지만 첫째와 2년 남짓 지내며 익힌 기숙사 생활은 둘째 역시 금방 적응하게 만들었다. 지금도 우리 가정은 학교 기숙사와 본가가 있는 청주를 왔다갔다 한다. 아이들은 "아빠 우리는 학교집도 있고 청주집도 있고 집이 2개야?"라고 묻곤 했다.
최근에는 아이들과 많은 추억을 만들며 여행다니기 위해 카라반을 구입했다. 그러자 이제는 아이들이 "아빠 우리 집은 학교집에 청주집에 바퀴달린 집까지 3개나 되요"하고 얘기한다.